그래픽_황성환 그래픽1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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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진단 :최재범 귀뚜라미 신임 대표] 귀뚜라미그룹이 1962년 신생보일러공업사로 창업한 이후 거듭된 성장을 거쳐, 드디어 작년 11월 지주사로 전환하며, 올해 그룹의 제2 도약기를 준비하고 있다. 이에 귀뚜라미그룹은 글로벌 종합 에너지 그룹으로 성장한다는 기치 아래 귀뚜라미보일러 대표로 최재범 전 경동나비엔 부회장을 선임했다. 업계에서는 경쟁사의 임원을 영입할 정도로 혁신적이며 파격적인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일각에서는 다른 분야도 아닌 동종업계 경쟁사의 최고 임원까지 필요하게 된 귀뚜라미그룹의 절박한 상황을 엿볼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에 귀뚜라미그룹의 제2 창업을 위해 그룹이 당면하고 있는 과제와 최재범 신임 대표의 역할에 대해 3편에 걸쳐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2020년은 귀뚜라미가 법인화된 지 51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해에는 50주년을 맞아 지주사 체재 전환에도 성공했다. 이에 귀뚜라미그룹은 2020년을 ‘제2의 창업’의 해로 삼아 글로벌 냉난방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귀뚜라미 측은 이를 담당할 전문경영인으로 최재범 전 경동나비엔 부회장을 선임했다고 밝혔다. 다만, 최 대표가 경동나비엔에서의 경영노하우를 귀뚜라미에 적용하기보다는, 최성환 전무의 경영권 승계를 돕는 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경동나비엔에서 은퇴했던 최재범 대표, 경쟁사 사장으로 재취업 이례적... 최진민 회장이 낙점한 것으로 전해져

최진민 회장은 최 대표가 경동나비엔 사장 시절 해외 시장을 성공적으로 개척한 것에 대해 큰 관심을 보여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최 회장이 은퇴 이후 공백기를 갖고 있던 최 대표를 귀뚜라미가 지주사로 전환하는 시점에 맞춰 귀뚜라미보일러 사장으로 낙점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 대표는 1953년생으로 올해 만67세이다. 일반 사기업에서 승진하거나 연임을 한 경우가 아니라면, 타 회사에 신임 대표로 선임되기에는 비교적 고령이다. 그동안의 경력을 인정하더라도 앞으로 귀뚜라미 측에서의 임기를 고려하면, 최 대표의 선임은 이례적이다. 또한, 최 대표는 신임 대표로 선임되기 전에 이미 경동나비엔에서 은퇴한 지 약 2년이 된 상태였다.

이를 두고, 최진민 회장이 최 대표를 선임함으로써 경영권에 대한 지배력을 놓지 않으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귀뚜라미 측에서는 전문경영인 체재를 강조했지만, 결국 최 회장의 경영지배가 유지되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최재범 대표가 최진민 회장의 지배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렇다면, 최 대표는 기업 구성원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기보다는 사주 일가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경영상 책임은 최재범 대표가 지고, 최 회장은 여전히 배후에서 경영에 개입하며, 각종 논란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이익을 취할 수 있는 구조가 유지되는 것이다.

귀뚜라미 관계자는 “최재범 대표의 선임에는 그동안의 경력과 실적에 따라 적임자로 판단했을 뿐 다른 이유는 없다”라고 밝혔다.

◆최성환 전무, 주요 요직 거치고도 별다른 실적 없어 경영 승계는 이르다는 지적 나와

최진민 회장의 장남인 최성환 전무는 귀뚜라미의 후계자로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지만, 명확한 지분 구조 등 후계 일정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게 없다.

최성환 전무는 1978년생으로 2014년부터 경영기획팀장과 청도공장 관리실장을 거치며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이번 2020년 인사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그러나 최 전무에 대해서는 철학과를 나온 20대 시절부터 보일러·냉방 관련 특허권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는 것과 귀뚜라미 연구진 출신들을 상대로 특허권 분쟁 소송을 하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게 별로 없다.

최진민 회장은 1941년생으로 만78세의 고령이다. 업계에서는 최진민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최성환 전무를 후계자로 세우고 싶어도 아직 귀뚜라미 내에 승계 구도가 마련되지 않은 것 같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성환 전무를 바로 사장 또는 부회장으로 선임하기에는 최 회장도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강승규 전 대표 불명예 퇴진... 최재범 대표 성공 여부도 불투명

강승규 전 대표는 국회의원 출신으로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불렸다. 귀뚜라미는 2015년 4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허위과장 광고 혐의로 시정명령을 받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그룹기획조정본부를 신설했다. 강 전 대표는 전문경영인 출신이 아님에도 초대 본부장을 역임하며 사장으로 선임됐다.

업계에서는 최 회장이 정치권에 귀뚜라미의 입장을 대변해 줄 인사로 정치인 출신인 강 전 대표를 영입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이 각종 범죄 혐의로 재판이 시작되자, 강 전 대표가 이명박 정부 출신이라는 것이 업계에서 불리하게 작용 될 것을 우려해 1년 3개월 만에 중도 퇴임했다. 당시 강 전 대표는 새로운 사업을 위해 물러난다고 밝혔지만, 지금은 다시 정치권에 복귀한 상태이다.

당시 귀뚜라미 측에서는 강 대표의 임기가 정해져 있지 않았으며, 별도의 계획에 의해 퇴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향후 행보를 보면, 자의에 의한 퇴사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었다.

일각에서는 “귀뚜라미 측에서는 강 전 대표가 정치인 출신으로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해주길 바랐지만, 전 정부 인사라는 한계점이 있었다”라며, “전문경영인 출신이 아님에도 해외 시장 개척에 도전했다가 부진을 면치 못해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한편에서는 최재범 대표의 선임을 두고 “최성환 전무가 고위 임원이 되며 본격적인 경영 승계 구도를 다지는 과정에서 최진민 회장이 최재범 대표에게도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게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진민 회장은 표면적으로만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있고, 여전히 편법적 일감 몰아주기를 하며 가족회사를 성장시키고 있다. 또한, 불투명한 과정을 거쳐 사주 일가가 특허권 등록을 독식하고 매년 막대한 특허사용료를 배당받는다는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최재범 대표가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인지 의구심을 제기하는 시각이 많다. 최 대표는 최성환 전무가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한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을 때는 강 전 대표의 사례처럼 언제든지 해임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최 대표가 이러한 업계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최성환 전무의 경영 승계를 돕는 역할 외에 귀뚜라미의 제2 창업을 위해 어떤 경영을 펼칠지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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