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 전 DB그룹 회장, ‘성폭행’ 주홍글씨 지우기 안간힘...피해자들과 합의 정황
김준기 전 DB그룹 회장, ‘성폭행’ 주홍글씨 지우기 안간힘...피해자들과 합의 정황
  • 김지훈 기자
  • 승인 2020.01.17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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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0일 가사도우미와 비서를 성폭행·강제추행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준기(75) 전 DB그룹(옛 동부그룹) 회장이 첫 공판이 서울중앙지법 형사 16단독 김용찬 판사 심리로 열렸다.

이날 헝클어진 백발로 나타난 김 전 회장은 늙고 병약한 노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회색 수의를 입고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법정에 들어선 그는 주민등록번호와 주소를 물어보는 판사의 질문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 한 것으로 전해졌다.

판사가 마이크볼륨을 키워 다시 질문하자 김 전 회장은 그제야 부정확한 발음으로 대답했고, 검사가 공소사실을 낭독할 때는 눈을 감은 채 회한에 잠긴 표정을 짓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은 2016년 2월부터 2017년 1월까지 자신의 별장에서 일한 가사도우미를 성폭행·성추행하고 2017년 2∼7월에는 비서를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공소장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중년의 가사도우미에게 “나는 완숙한 여자가 좋다”면서 치근거렸다. 음담패설을 떠들어대고는 “속옷을 갈아 입혀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가사도우미를 5회 성폭행하고 8회 성추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욕정의 대상은 비서로 바뀌었다. “비서로서 내 기를 세워 줄 테냐”라면서 6개월 동안 화장실 등에서 무려 29회에 걸쳐 성추행했다는 것이 검찰 측 주장이다. 검찰은 피해자들이 김 전 회장의 추행을 거부하기 어려운 지위에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김 전 회장의 변호인은 “피해자의 기억과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으나 공소사실의 사실관계 자체에 대해서는 대체로 인정한다”고 말했다.

다만 “피고인은 피해자들의 동의가 있었던 것으로 믿었고 위력으로 강제 추행할 의사는 없었다”고 부연했다.

특히 이날 변호인은 “합의과정에서 발생했던 피고와 피해자와의 평소 관계를 증거로 채택해 달라”며 피해자와의 합의를 진행했던 A씨와 비서실장 B씨 등 2명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더라도 김 전 회장과 피해자들의 관계는 해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변호인의 설명이었다.

증인 신문은 이로부터 한 달여 후인 오는 21일 속개되는 2차 공판에서 이뤄질 예정이었다. 그런데 지난 13일 성폭행을 당한 가사도우미가 법원에 김 전 회장의 정상참작을 원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는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법조계에서는 김 전 회장 측이 가사도우미와 이미 합의를 끝마쳤다는 것에 무게를 싣는 모습이다. 변호인이 자신 있게 증인 신청을 한 것도 합의 과정에서 김 전 회장과의 성관계에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다는 쪽으로 상황을 반전시켰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한 관계자는 “판사들은 피해자 탄원서의 경우 대부분 호의적으로 받아들인다”며 “선처를 바라는 내용이 담겼다면 양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성범죄는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더라도 무죄 판결은 나올 수 없다”면서 “결국 강간이냐 화간이냐의 여부가 재판의 쟁점이 될 것”이라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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