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기자의 쓴소리] 스튜어드십 코드를 피하려는 자, 그가 범인이다
[한 기자의 쓴소리] 스튜어드십 코드를 피하려는 자, 그가 범인이다
  • 한주희 기자
  • 승인 2020.01.28 1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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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_황성환 그래픽1팀 기자
그래픽_황성환 그래픽1팀 기자

[한주희 기자의 쓴소리] ‘증거를 숨기려는 자, 그가 바로 범인이다’라는 말이 있다. 범죄영화 속 대사 같기도 하고, 정치드라마의 자극적인 홍보문구 같기도 하다. 일상적으로 쓰이는 표현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진실을 은폐하려는 집단에 대한 경고성 발언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를 스튜어드십 코드에 반대하는 측의 입장을 대입해보면 ‘스튜어드십 코드를 피하려는 자, 그가 범인이다’라고 표현해 볼 수 있겠다.

문 대통령, 취임 초부터 ‘스튜어드십 코드’ 강조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첫 신년사부터 매년 신년사를 통해서 ‘스튜어드십 코드’를 언급해 왔다. 이어서 재계는 강력히 반발하고, 반박 논평을 쏟아낸다. 올해도 대통령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강조하며 공정경제를 주요 국정과제로 꼽았고, 이에 여지없이 재개를 중심으로 보수 경제지들은 ‘연금 사회주의’실현을 위한 술책이니, 중국식 사회주의니 하는 과격한 발언을 쏟아냈다.

이전보다 한층 거친 발언을 하고 있지만, 재계의 속사정은 복잡해 보인다. 아직 이른듯하지만, 곧 3월이 되면 기업별로 정기주주총회 시즌이 돌아온다. 매년 정기 주총이 있더라도 전년도 사업보고를 하기 전에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올해는 사뭇 다른 풍경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앞서 대통령이 강조했듯이 ‘스튜어드십 코드’의 적극적인 행사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반 시민들은 ‘스튜어드십 코드’라는 단어조차 생소한 마당에 이 제도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한국 사회에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라는 말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단어 그대로 직역하면, 관리인 또는 집사(Steward)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규칙이나 규범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전문적 표현을 덧붙이면,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즉, 스튜어드십 코드는 ‘타인을 대리하여 그 자산을 관리하는 이가 지켜야 하는 원칙’을 말한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2010년 7월 영국을 시작으로 캐나다, 네덜란드, 스위스, 이탈리아, 홍콩, 일본 등이 잇따라 기관투자자 책임에 관한 원칙을 제정하며 전파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경우, 2016년 12월,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을 제정한 이후 2018년 7월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선언했다.

(구)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시 조작된 합병비율 찬성한 국민연금...막대한 기금손실 입어

이렇게 우리나라에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된 이후에도 한동안 지지부진하다가 이를 적극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계기가 된 사건이 있다. 바로 (구)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할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도록 산정된 합병비율에 국민연금이 찬성하고, 이로 인해 국민연금이 막대한 손해를 입은 사건이다.

(구)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당시 2015년 7월 17일 (구)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당시 국민연금은 제일모직의 가치가 삼성물산의 무려 3배에 가깝게 평가된 비율로 합병하는 것에 찬성했다. 이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등 국정농단 재판 과정에서 이러한 합병비율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작업에 유리하도록 조작되었다는 것이 대부분 입증되었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의 항소심 재판부는 (구)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청와대의 개입이 있었다고 판결했다. 2019년 8월 대법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재판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현안이 존재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이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했고 그 대가성도 있었다고 인정했다. 이를 위해 국민연금이 국민 노후자금의 성실한 수탁자가 아닌, 재벌 총수의 승계를 위해 도구로 쓰였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이후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제일모직과 (구)삼성물산의 불공정한 합병비율로 인한 이재용 부회장의 부당이득이 3.1~4.1조 원가량이고, 이에 반해 국민연금의 손실은 5200~6750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이 주주의 이익이 아닌 일부 정치 권력과 재벌 총수의 전횡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했을 때 이토록 막대한 손해가 생긴 것이다.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로 기업지배구조 개선되고, 경영권 투명화에 기여 가능하다는 것 입증 돼

이에 대한 반성의 조치로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해 실효성 있는 첫 결과를 본 사례도 있다.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갑질’로 인해 국민적 공분이 계속되던 때에, 2019년 3월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270억 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던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하도록 국민연금이 큰 영향을 미쳤다.

올해도 효성, 대림그룹 등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의 총수 일가의 이사 연임 안건이 올해 주주총회에 상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은 이들 총수 일가가 저지른 횡령·배임, 사익편취 혐의에 대해 이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사내이사나 감사 등의 연임에 반대 의견을 밝혀, 다른 소액주주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국 주식시장의 투자자 중 외국인의 비율은 30%가 넘으며, 이들의 투자 동향에 따라 주식시장이 크게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막대한 자금력을 가진 외국의 연기금 및 기관투자자들은 투자 대상을 결정할 때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 경영 의사결정의 예측 가능성 등을 중요하게 여긴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투자자의 이익을 지키는 방편이 될 뿐만 아니라, 외국 투자자가 국내 주식시장에 안정적으로 투자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되는 것이다.

스튜어드십 코드 피하려는 재벌 총수, 기존 경영상 전횡 일삼던 지배구조 유지하길 원해

한국의 기업지배구조가 불투명하고 전근대적인 것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이사회와 주주총회가 실질적 기능을 하지 못하는 데에서 기인한다. 이는 이사회가 회사 전체의 이익을 위한 결정을 내리기보다 재벌 총수의 뜻이 관철되는 의사결정 구조를 표시하는 기구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이사회가 마치 총수 일가의 거수기처럼 운영되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의 적정한 행사는 기업의 경영권에 개입하기 위한 제도도 아니고,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도 될 수 없다. 또한, 이사회가 총수의 사익편취에 동원되지 않도록 감시하는 것이 경영간섭이 될 수는 없다. 창업자의 후손이고, 최대주주라는 신분을 갖고 있다고 기업과 투자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경영을 한다는 보장이 없다. 우리는 오히려 공정질서 관련법을 탈법적인 방법으로 회피하거나 불법을 감행하여 사주 일가의 이익만을 좇는 사례를 그동안 너무 많이 봐왔다.

회삿돈을 쌈짓돈처럼 여기며, 횡령이나 배임을 저지를 때 기업가적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기업가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 사회주의일까? 날로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는 총수 일가의 전횡과 불투명한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기업 가치 개선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 아닐까? 스튜어드십 코드를 피하고자 하는 자는, 정당한 견제와 감시를 피해 이전의 경영상 전횡을 일삼을 수 있었던 기존 지배구조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것 외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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