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구역이 지정되기 전 얻은 동의서를 정비구역 지정 후 구성된 추진위원회 설립에 이용했다면 이는 추진위 설립의 당연 무효 사유가 될까?

지난 2011년 7월 28일 대법원은 배씨를 포함한 10명의 원고들(이하 배씨 등)이 제기한 소에서 “토지등소유자의 동의서에 하자가 있는 추진위원회의 설립승인은 위법하지만 이는 중대∙명백한 하자라고 볼 수 없다” 라고 판결을 내렸다.

2006년 서울시 동대문구청은 일부 구역에 3차 뉴타운지구를 지정, 이에 주민들은 임의로 정비구역이 될 곳을 예상해 재개발추진위원회 결성 준비에 나섰다.

그러나 2007년 정비구역 공람공고를 거쳐 2008년 확정된 정비구역은 예상과는 크게 달랐다. 당초 추진준비위원회가 생각했던 구역은 가,나,다,라(임의 명명)의 4개 지역이었으나 동대문구청이 확정한 구역은 가,마,바 였던 것. 사업면적 또한 207,940제곱미터에서 98,497제곱미터로 절반 이하로 크게 줄었고 소유자의 수도 1,212명에서 769명으로 축소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진준비위원회는 2007년 공람공고 이전에 받은 동의서 중, 이 사건 사업구역에 남아 있게 된 구역(가)의 토지등소유자 387명의 동의서만을 추려내 추진위의 설립승인을 신청했고, 피고 동대문구청은 사업구역 내 토지등 소유자 과반수 이상의 동의서가 첨부돼 있다는 이유로 이를 승인처분했다.

이에 법원은 “추진준비위원회가 당초 예상한 정비구역과 확정된 정비구역은 가 구역만 공통될 뿐 나머지 부분이 모두 달라 동일성이 유지되기 어렵다” 라며 “따라서 공람공고 이전에 가,나,다,라 구역에서 정비사업이 실시될 것을 전제로 받은 나,다,라 구역 347장의 동의서는 추진위의 설립에 대한 동의로 볼 수 없어 위법하다” 고 전했다.

하지만 법원은 행정처분이 당연무효라고 하기 위해서는 처분에 위법사유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하자가 법규의 중대한 부분을 어긴 것이 명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행정처분 대상이 아닌 것을 행정처분대상으로 오인할 만한 객관적인 사정이 있고 그것이 사실관계를 조사해야 밝힐 수 있을 때에는, 비록 이를 오인한 하자가 중대하다고 하더라도 외관상 명백하다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 사건에 적용되는 구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구 도정법)에 따르면 추진위 설립 당시에는 동의의 시기나 사업구역과의 관련성에 따른 유∙무효의 법리가 명백히 밝혀져 있지 않았다고 전했다.

즉 추진위준비위원회는 추진위 설립요건인 해당 정비구역 토지등소유자의 과반수 이상의 동의가 있는지에 대해 판단을 그르치기는 했지만, 추진위 동의의 대상과 설립승인의 대상 사이의 불일치는 이 사건 승인처분이 당연무효라고 볼 정도의 하자가 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뿐만 아니라 법원은 “토지등소유자들이 추진위 명단이 공란인 상태에서 작성한 동의서는 무효다” 라는 배씨 등의 주장에는 “동의서 작성에 동의한 토지등소유자들은 준비기간 당시 위원으로 활동하던 사람들을 그대로 추진위원으로 인정하거나 필요 범위 내에서 선임∙변경할 수 있도록 위임하는 취지가 있었던 것으로 본다” 라며 추진위 명단이 첨부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는 소유자 과반수 이상의 동의가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따라서 법원은 구 도정법에 근거해 당시의 객관적인 상황을 보았을 때 2심의 판결결과인 “동의서에 하자가 있지만 행정처분을 무효로 돌릴 정도는 아니다” 에 영향을 미칠 만한 위법은 없다고 결론지었다. / 김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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