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공사+높아진 용적률 호재, 사업 활기 띨 것인가?

 단지 여기저기에 쌓여 있는 각종 쓰레기와 집기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강남아파트. 이 아파트에는 쉽게 설명하기 힘든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1995년경부터 추진돼 수년간 끌어온 재건축 사업은 아직도 지지부진하다. 지난 2011년 10월 초 SK건설로 시공사가 선정됐지만 이 또한 아직 주민들에게 화끈한 속풀이를 해 주지 못하고 있다. 현재까지도 다수의 조합원들은 조합임원과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해 입씨름 중이며 이주비와 분담금은 물론 향후 사업 계획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다. 총 876가구 중 대부분의 주민이 떠나고 현재 200여 가구에만 불이 켜진 상태. 이들은 낡고 낡은 아파트를 떠나지도 못하고 아직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지하철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 근처에 위치한 강남아파트는 한눈에 보기에도 깜짝 놀랄 정도로 낙후된 상태였다. 건물 전체의 페인트칠이 벗겨져 손으로 만지기만 해도 부스러기가 우수수 떨어졌다. 여기저기 창문이 깨져 있거나 부서져 있었고 아예 베란 다 외벽 전체가 없어 아파트에 구멍이 난 것처럼 보이는 집도 많

 관악구청은 73년에 짓고 현재까지 재건축되지 않은 강남아파트를 재난위험시설로 작년에 규정했다.
았다. 또한 아파트 외벽이 거의 무너져 안쪽의 벽돌조가 훤히 드러날 만큼 파손된 부분도 있었다. 외면의 심각성은 물론 주민들의 기본적인 안전도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내부로 들어가니 그 모습은 더욱 심각해졌다. 어두컴컴하고 낡은 복도는 퀘퀘한 냄새까지 나 마치 폐가를 연상케 할 만큼 으스스했다. 언젠가는 사람이 살았을 수많은 집들은 아예 밖에서 못질을 해 들어갈 수 없도록 굳게 닫혀 있었다. 또한 마치 몇 년 이상 그대로 방치된 듯한 가정 집기들과 쓰레기, 자전거 등이 계단에 여기저기 먼지가 쌓인 채 흉하게 널려 있었다. 난간과 계단도 일부 파손되거나 닳아 있어 발을 헛디디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아파트에 대한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지 한참 돼 보이는 모습이었다.
아파트 여기저기에 위치해 있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도 망가져 있기는 마찬가지. 여기저기가 녹슬고 바닥에는 모래가 보이지 않 을 정도로 풀이 자라 있는 상태였다. 원래 주차장이었을 곳으로

아파트벽면이 낡고 약해져 무너져 내린 강남아파트 외벽
보이는 공간에는 주민들이 버린 의자, 가구 등 각종 쓰레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아파트 상가 또한 거의 오래 전 문을 닫고 몇몇 집 밖에 영업을 하지 않고 있었다. 또한 아파트 벽면 여기저기에는 붉은색 글씨로 “주민들을 다 죽일 셈입니까”, “조합은 각성하라” 등 조합원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적혀 있었고, 단지 한가운데에는 ‘비상대책위원회’ 라고 작은 간판이 달린 천막도 있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실제로 이 건물은 오래 전부터 재난위험시설(D급)과 중점 관리대상 시설로 고시∙지정돼 있는 상태. 건축물 노후화 및 구조체의 균열 때문이며 ‘통행이나 주차를 하는 주민들은 항상 주의할 것’, ‘재난이 발생하였거나 그 우려가 있을 때는 우선 대피하라’ 는 경고문이 있을 정도로 그 상태는 심각하다.

그런데 강남 아파트의 진짜 문제점은 이렇게 건물이 낙후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재건축이 빨리 이루어지지 않는 데 있다. 1974년 5월 지어진 강남아파트는 총 6층 17개 동이며 876세대로 이루어져 있다. 이에 1995년부터 벌써 1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재건축이 추진돼 왔지만 그 동안 모든 것이 순탄치 않았다. 초반에는 서울시 조례 등에 따라 용적률 문제도 계속해서 바뀌어 사업이 추진되는 데 마찰이 있었고 ,우여곡절 끝에 2007년 금호건설로 시공사가 선정되고 나서도 잡음은 끊이지 않았다. 조합원의 상당수가 영세 서민인 탓에 시공사가 제시한 1억 5천~3억6천만원대의 분담금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 이에 조합원들은 크게 반발했고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분담금 액수가 알려지며 설상가상으로 집값도 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 단지 한가운데에 위치한 비상대책위원회 천막.
그러나 상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관리처분을 앞두고 조합 측이 분양신청을 받고 이주를 계획하는 중 또다시 문제가 생긴 것. 선(先) 이주 가구에 제공된 이주비가 당초 말했던 무이자 대출이 아니라 실제로는 이자를 다달이 내야하는 개인대출 형식이라는 것.

결국 그 당시 이주한 주민들은 아직까지도 수천만원이나 되는 이자를 부담하고 있어 그 억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강남아파트의 소유자 중 한명인 이모씨는 “당시 금호건설이 계약을 해지하며 계약금 반환 문제를 조합원들과 충분히 소통하지 않아 이 부분에서도 조합원들은 손해를 보게 됐다” 고 하소연했다.

뿐만 아니라 금호건설과의 재건축사업 추진이 무산된 후 2009년 11월 다시 남광토건이 공사를 수주했지만 기업 워크아웃으로 인해 또다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모씨는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며 집값도 떨어지고, 계약금 반환 부분에서도 손해를 보고, 6년 동안 세를 놓지도 못했고, 이자도 계속 부담해야 했다” 며 “이런저런 손해와 마음고생이 말로 다 할 수 없다” 고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최근인 10월 초 SK건설로 다시 시공사가 선정됐다. 또한 관악구청이 55억원에 달하는 기반시설부담금을 취소해 달라고 국토부에 요청하는 희망적인 소식이 들려오며 다시 사업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당초 300% 였던 용적률도 400%로 오르며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의 반응은 반반이다. 그동안 너무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기 때문일까.

 지지부진한 재건축 진행에 주민들의 목소리는 높아져만 가고 있는 상황이다.
H공인 관계자는 “용적률이 올랐다고 하더라도 임대주택과 상가를 더 지어야 하는 것을 고려하면 특별한 메리트가 없다고 생각하는 조합원들이 많다” 며 “따라서 이들은 임대주택, 상가, 근린생활시설 등의 비율을 낮춰 달라고 현재 요구하는 중이다” 라고 말문을 열었다.

기자가 최근 강남아파트의 거래현황을 묻자 “SK건설로 시공사가 새로 선정됐다고 하더라도 아직 가계약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이므로 특별한 가격∙거래의 변화는 없다” 며 “매물도 거의 나오지 않으며 수요자도 적다” 고 일축했다. 이어 “과거 14평의 거래가격이 높게는 2억 3천만원까지도 간 적이 있지만 지금은 평당 1천만원 수준인 1억 2~3천만원 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관악구청 주택과 관계자 또한 시공사가 새로 선정되었다고 하더라도 빠른 진척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2006~2008년도에 받아 놓은 사업시행인가와 관리처분인가가 있지만 이는 이미 과거의 것이고 용적률 300% 당시의 계획이라 변경이 필요하다는 것. 그는 “정비계획이 변경되며 사업계획과 관리처분계획을 모두 다시 손봐야 하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이 앞으로도 많이 소요될 것으로 생각된다” 고 설명했다.

강남아파트의 재건축 사업은 아직 ‘산 넘어 산’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지체되고 많은 어려움을 겪어 온 만큼 이제는 좋은 일들이 있어야 할 것이다. E공인 관계자 또한 “이제는 잘 되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꼭 잘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며 “새로운 시공사가 선정됐으니 좋은 소식 들리길 기다린다” 고 간절한 바람을 전했다. 강남 아파트가 마지막 고비를 넘기고 새로운 모습으로 순조로이 다시 태어날 수 있을지 많은 이들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리웍스리포트 ㅣ 김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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