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최대 규모인 광주 서구 광천동 670번지 일대 재개발 사업이 시행 인가(2019.12.31.)를 받고 본격화될 전망이다. 42만5984㎥ 규모로 아파트 5개 단지 53개동 5천6백여 세대가 넘는 대규모 단지가 들어선다고 한다.  

문제는 정비구역 안에 있는 들불야학 옛터인 ‘시민아파트’ 보존을 놓고 광천동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조합(이하 ‘조합’)과 5월 단체 (사)들불열사기념사업회, 서구청 등이 협의 중이지만 존치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광천동 ‘시민아파트’는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이 모여 살던 천막·판자촌 일대에 지어진 광주 최초의 연립주택이다. 1970년 180여 세대의 3층짜리 아파트로 1가구는 10평쯤 되는 공간에 두 개의 방과 부엌을 겸한 통로가 있을 뿐, 화장실과 세면실은 건물 입구에 공동으로 갖추어졌다.  … (중략)

‘시민아파트’는 어려웠던 살림살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처절한 삶의 모습이 생생하게 배어있는 현존하는 공간이다. 그 자체로서 근대 생활문화의 박물관이자 기억 저장소라고 할만하다. (2019.08.16. 전영호 작가; 광주일보)

여기에 ‘시민아파트’는 1980년대를 전후로 지역 최초의 노동야학인 들불야학의 주된 무대였다. 들불야학은 1978년 8월 광천동 천주교 교리실에서 배움에 목마른 노동자들과 함께 공부하고 세상을 이야기하고자 설립됐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가 1978년부터 시민아파트에 살았으며, 학생 수가 늘어나자 1979년 1월부터 아파트 다동 2층 방을 임대하여 야학을 진행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주역인 박기순,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 시민아파트 지역운동가이자 시민군 기획실장 김영철, 투사회보 필경사 박용준 등이 모였다. 1980년 5월 21일, 들불야학 대학생 강학과 노동자 학생들은 밤낮을 쉬지 않고 수동식 등사기로 각종 시국선언문과 계엄군의 만행을 고발한 ‘투사회보’를 제작했다. 

이처럼 ‘시민아파트’는 근대 생활문화와 5월 민주화운동 흔적이 살아있는 역사문화 공간이지만, 이제는 흉물스럽다고 완전 철거계획까지 나오는 등 광주시민들의 무관심 속에서 소리소문없이 철거될 위기에 놓여있다. 다행히도 서구청과 5월 단체, 조합은 지난해부터 올해 1월까지 시민아파트 존치와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는 중이다.  

조합 측은 시민아파트의 역사적 가치와 존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시간적·경제적 손실을 들어 ‘시민아파트’ 3개 동 전체 존치에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개발방식을 바꾸고 인가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하는 조건으로 시민아파트 외벽 일부를 재개발 구역내 근린공원으로 이전 존치하는 방안이 논의되었고, 현재 시민아파트 3개 동 중 윤상원 열사가 거주했던 1개 동만 남겨놓고 사업을 추진하는 안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고 한다. 

조합원들은 왜 ‘시민아파트’ 3개 동 전체 존치를 바라지 않는 것일까? ‘시민아파트’가 존치하더라도 시민아파트 소유 조합원들은 보상과 더불어 입주권을 받게 된다. 그런데도 조합원들이 ‘시민아파트’ 3개 동 전체 존치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분양가 상승 때문이다.

더불어 건축 심의와 교통, 환경, 교육 평가 심의를 다시 받아야 하고, 설계 변경 등으로 사업 기간도 2년에서 3년 정도 늦춰져 2천4백여 조합원들의 재산권 및 주거권이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조합은 1개 동 존치에 따른 분양가 상승을 막을 방안으로 용적률 상향 조정과 인센티브를 요구하고 있다. 용적률을 올리면 분양단가가 낮아진다는 건설사의 주장이 아주 유혹적이기 때문이다.

서구청과 조합은 ‘시민아파트 보존문제는 주민과 조합원들의 공감대 형성이 무엇보다 선행돼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조합원들의 동의를 받지 않는 한 ‘시민아파트’ 보존은 어렵다는 것이다. 
 
재개발로 조성된 고층 아파트 숲 안에 1개 동만 덩그러니 남게 될 ‘시민 아파트’ 모습을 상상해보자. 얼마나 초라하고 군색한가!

올해 40주년을 맞은 5·18의 역사 공간 중 온전히 남아 있는 곳은 옛 국군통합병원 부지와 옛 505보안대, 광천동 시민아파트 세 곳 정도라고 한다.

상무대 영창은 상무 신도심 개발로 형태만 복원됐고, 광천성당 안 들불야학 터는 도로 개설로 외벽 일부만 남았고, 5·18 최후의 항쟁지였던 옛 전남도청 건물마저 훼손돼 이제야 원형 복원이 논의되고 있다. 

‘시민아파트’와 유사한 논란을 겪은 선례는 또 있다. 최근 시민 복합문화센터로 새롭게 문을 연‘전일빌딩245’도 도심 속 흉물로 전락해, 민선 5기 때 문화전당 개관에 맞춰 건물을 허물고 주차공원화하는 방안이 모색되는 등 수모를 당했다.

하지만 총탄 흔적 245개가 발견돼, 5·18 상징이자 호남언론의 역사를 상징하는 건물이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2017년 8월 15일 5·18사적지 28번째로 지정됐다.  

참여자치21은 철거 위기에 놓인 광천동 ‘시민아파트’ 3개 동 전체를 광주시가‘5·18 사적지 30호’로 지정하여, 시민자원화 방안을 마련할 것을 간곡하게 당부하고 싶다. ‘시민아파트’ 원형보존은 범시민 공감대 형성이 충분히 가능할 수 있고, 옛 전남도청 건물처럼 허물었다 복원하는 우를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참여자치21은 광주공동체 정신이 살아있는‘시민아파트’가 사적지 27호인 들불야학 옛터(광천동 성당)와 연계된 아카이브 기념관과 시민공원 등으로 조성되어 후세대들이 기억하고 찾아오는 역사문화교육장으로 재생하기를 바란다.

40주년을 맞이한 5·18 정신 선양은 바로, ‘시민아파트’ 존치 여부 논란처럼 이해관계로 얽힌 어려운 문제를 범시민 공감대 형성을 통해 풀어나가는 실천에 있음을 거듭 강조하고싶다. 

따라서 광주시는 ‘시민아파트’ 사적지 지정과 이후 보존·관리 계획 수립에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원형보존의 당위성을 중앙정부에 알려 행정과 재정 지원을 끌어내, 시민과 조합 모두가 동의하고 수긍할만한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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