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푼 두푼 모으는 생활의 기쁨 홀연히 사라져

내 집 마련의 꿈은 사라졌다. 한 푼 두 푼 아껴 쓰며 생활하던 이유는 단 하나, 내 집을 꼭 갖겠다는 것이었다.

▲ 그 옛날 내 집을 갖게 되면 이름 석 자 쓰인 문패를 달겠다는 희망이 있었다. 내 집은 그냥 집을 가졌다는 것이 아닌 대한민국에서 당당한 국민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었다.
그 옛날 ‘셋방살이하던 설움을 그 누가 알랴’ 복받쳐 오르는 슬픔을 애써 감추며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고 모으는 것은 내 집 한 칸 가져보리라는 일념 그것 하나였다.

내 집 마련은 얹혀사는 삶에서 당당히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내 집을 갖는 다는 것은 대문 앞에 내 이름 석 자 새겨진 문패를 달 수 있다는 기쁨이 있었다.

또 헐벗고 가난에 지친 삶에서 벗어나 떳떳이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도 있었다.

내 집이라는 의미는 단순히 ‘집을 갖는다’는 의미에서 멈추지 않는 사회구성원으로 인정받는 삶을 살아간다는 의미였다.

그렇게 소중한 가치가 바로 ‘내 집 마련’이었다.

내 집을 마련한다는 의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헤아릴 수 있는 넓은 마음도 지닐 수 있었다. 시골에서 올라 온 친지에게 방 한 칸 내주어 며칠 묵게 할 수 있는 마음이었다. 곁방살이 하는 삶에서는 결코 꿈도 꾸지 못할 멋진 삶이었고, 시골 부모님과 어르신께 인정받는 순간이기도 했다.

내 집의 의미는 그렇게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내 집을 갖는다는 의미는 우리 시대가 발전해 오는 과정에서 결코 빼 놓을 수 없는 커다란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런데…

그 꿈이 사라지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내 집을 갖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한 푼 두 푼 모으면서 달콤한 꿈을 꾸던 시대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추운 겨울 난방기 아낀다고, 돈을 모은다고 나중에, 수년이 지난 후에 해야 할 일이 없다. 삶의 목적이 사라진 것이다. 지금 세상을 살고 있는 세대는 꿈을 잊은 세대이다. 떳떳함을 잊었으며, 내 이름 석 자의 소중함을 잊었다.

가족 건사하며 돈을 모으면 얘들 교육비와 여행비, 외식비 등으로 모두 사라진다. 생산의 시대에서 소비의 시대로 변했다. 내 집이라는 목적이 없는 지금, 돈을 모으는 것은 결코 큰 가치를 가질 수 없다.

과거 재개발지역에 아주 작은 땅 한 칸이라도 마련해 보리라는 꿈도 있었다. 재개발사업에 투자를 하면 ‘황금 알을 낳는다’는 소문도 희망을 부추기는 한 모습이었다.

재개발의 작은 땅 한 칸은 후에 버젓한 아파트로 ‘뚝딱’하고 나타나는 도깨비 방망이와도 같았다.

지금은 어떤가. 재개발사업은 이제 더 이상 꿈의 사업이 아니다. 버젓이 있던 집도 빼앗기고, 정들었던 이웃사촌과도 헤어져야 하는 사업이 되었다.

내 집 마련의 꿈은 켜켜이 쌓인 모래와도 같이 바람에 썰물에 흩어져 사라지고 있다. 내 집 마련의 꿈이 사라진 것은 비단 집을 사지 않겠다는 의미만이 아닌 삶의 가장 값진 의미를 잃어버린 것과 같다.

삶의 의미를 찾아 다시 헤매지만 결코 내 집 마련의 의미만한 소중한 의미를 찾기란 더 이상 어려울지 모른다./

저작권자 © 뉴스워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