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영화다’는 잘생긴 두 남자(소지섭과 강지환)의 버디무비로, 락고재와 인사동, 인천대교 등 서울과 인천 일대에서 촬영을 했다. 춥다고 방에만 움츠리고 있기엔 답답하고, 길이 많이 밀려 한 주의 시작이 걱정된다면 가까운 영화 촬영지를 둘러보는 것은 어떨까.

강패와 수타의 인천대교
아무래도 이강패(소지섭 분)와 장수타(강지환 분)가 막싸움을 하는 영화의 클라이맥스 부분인 영종도 갯벌 장면부터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강패는 연기가 아니라 진짜 싸움을 한다는 조건으로 수타의 출연제의에 응한다. 봉감동(고창석 분)의 시나리오는 수타가 강패를 때려눕히는 결말. 그러니 영화가 완성되려면 수타가 강패를 무조건 이겨야 한다.
이 때문에 갯벌 위 두 사람의 싸움은 치열하다. 말 그대로 진창이며 막장이다.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진 그들의 일생을 대변한다. 진흙범벅이 된 둘을 뒤로 하고 먼발치에는 완공을 앞둔 인천대교가 보인다.
지금은 완공돼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된 인천대교. ‘영화는 영화다’가 촬영할 당시에는 미완의 상태였다. 잘 알려졌다시피 인천대교는 인천국제공항과 송도국제도시를 잇는 다리로, 총 길이가 18.284km로, 우리나라 최고, 세계 6위의 길이를 자랑하는 다리다.
영화에서 비치는 미완의 인천대교는 바다의 양쪽 끝에서 다가와 대치하듯 마주하고 있는 강패와 수타의 삶을 닮아있다.
영화처럼 갯벌 너머 인천대교를 보려면 물때를 미리 맞춰야 한다. 밀물때는 갯벌이 아니라 바다기 때문이다. 갯벌이던 바다든 풍경만으로도 장대하기 그지없다. 또한 야경만을 탐하기 위해 찾는 이도 많을 만큼 경관조명이 아름다운 곳이다.
인천대교에서 야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한 때는 배우가 꿈이었는데…”라는 강패의 대사가 아련하게 들려온다.

인사동, 별궁길 그리고 가회로
극중에서 영화촬영을 마친 강패는 수타와 함께 박 사장(한기중 분)을 찾아가 충격적 결말을 보여주는 곳은 다름 아닌 인사동 입구 ‘만남의 광장’과 골동품 골목이다.
이 장면이 중요한 것은 인천대교의 이어지지 않은 교량이 암시하듯, 강패와 수타 사이의 간극이 드러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즉 영화 밖 세계가 다름을 보여주며, 영화와 현실의 틈새를 들어내고 있다.
촬영이 이뤄진 골동품 상가는 예촌 옆 골목으로, 예스런 물건들이 진열돼 있으나 채 10m를 넘지 않을 만큼 소박하다. 그 끝에는 ‘아름다운 차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과 갤러리, 찻집을 겸하는 곳으로 고대의 다기나 다구들의 상설 전시하며, 가끔 특별전시회도 연다. 한옥 아래 ‘ㅁ’자 모양의 중정에서 차를 마실 수 있으며, 박물관과 갤러리는 중정의 바깥 쪽 통로로 연결돼 있다.

특히, 이곳은 천장이 유리로 되어 있어 비나 눈이 오는 날 가면 차 한잔의 운치를 더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종류의 차가 구비되어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전통적인 한옥의 공간인 듯 보이지만 낯설다. 현대적이다. 잔인하도록 쓸쓸했던 ‘영화의 거리’를 지나 차 한 잔의 여유, 이 또한 삶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영화에서 박 사장의 집으로 나오는 가회동 ‘락고재’는 초반부 강패가 돈을 들고 찾았다 따귀를 맞는 곳이다.

 
인사동에서 가회동으로 가는 길이 여러갈래가 있지만, 그 중 종로경찰서 맞은편 별궁길을 지나 재동초등학교 방향으로 걸어보길 권한다. 종로경찰서 앞 대로변은 늘 차들로 북적이지만, 별궁길로 접어들면 이래서 별궁이구나 싶을 만큼 한적하다.

별궁길은 실제로 안동별궁에서 유래됐다. 순종의 왕세자 책봉과 혼례를 위해 만들어졌다. 길을 따라 걷다보면 화사한 카페와 고미술 상점, 그리고 한옥들이 즐비하다.

또한 별궁길의 상징인 故윤보선 대통령 고택과 안동교회가 있다.
윤보선 고택은 명성왕후의 민씨 일가가 지은 것으로, 한때 박영효가 살았던 것을 윤보선 전 대통령의 부친이 사들였다.이곳에는 지금도 윤보선 대통령의 후손들이 산다. 외부인 출입을 허락하지 않아 아쉽지만, 고택의 돌담길만으로 별궁길의 멋이 살아난다.

윤보선 고택 바로 맞은편에는 100년의 역사를 간진한 안동교회가 묵묵히 자리하고 있다. 긴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지만 소박하다.

한옥의 정수 ‘락고재’
재동초등학교에서 가회동 쪽으로 오르다보면 가로수들이 플라타너스 나무가 아닌 소나무다. 한옥촌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진다. 곧 재동초등학교를 끼고 오른쪽 작은 골목길을 따라 5분쯤 걷자, 대숲에 쌓인 한옥 대문에 ‘락고재(樂古齎)’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1934년 건립된 이곳은 원래 진단학회 건물이었다. 안영환씨가 구입해 전통문화체험관으로 꾸민 락고재는 인간문화재 대목장 정영진 옹이 개수, 한옥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락고재는 정원을 중심으로 안채와 사랑채, 정자 등으로 나뉜다. 하눈에 집안의 구조 전체를 조망할 수 잇을 만큼 아담한 규모다. 하지만 구석구석 한옥의 아름다움이 세미하게 살아 숨쉰다. 입구를 돌아 마당으로 접어들면 가장 먼저 정면에 자리한 정자마루가 눈에 찬다. 소담한 정원 너머 기세 좋게 들어서 있기 때문.

이곳은 ‘영화는 영화다’에서 강패가 박 사장에게 머리를 조아리던 장면을 찍은 곳으로, 영화장면에서도 보였듯 정자에서 마당 너먼 안채와 사랑채가 있다.
특히, 정자 아래 자그마한 못을 조성해, 석양이 질 무렵 소나무 한 그루의 짙은 그림자를 보고 있노라면 옛 선비의 풍유가 절로 느껴진다. 정자의 건너방은 인기리에 방영됐던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헨리(다니엘 헤니)가 임시거처로 묵었던 장소로, 숙박비가 비싸 평상시에는 묵어가기가 쉽지 않다.
만약 락고재가 탐탁지 않다면 가회동 산책도 좋다. 최근 고미술품 메카로 떠오른 가회동은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영화 못지않게 볼거리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특히 ‘ONE AND J 갤러리’나 ‘소나무갤러리’ 등 한옥갤러리들은 각 방의 경계를 허물고 전시실로 조성, 갤러리를 돌아보는 재미가 이색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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