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이 되는 사전 개표 문제, 그렇다면 그 슬기로운 해결책은 과연 무언가

 수천명이 넘는 조합원 서면결의 확인만 12시간 총회장서 하는 것이 맞나

#1. 지난 5월 새로운 조합장 선출을 위한 총회 개최 직전의 경기도의 한 재개발추진위원회 사무실. 갑자기 들이닥친 사람들로 사무실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흥분한 사람들은 추진위원장 사무실까지 들어서 손가락질을 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창립총회를 앞두고 추진위원회에서 서면결의서 사전 개표를 했다는 말이다. 마침 조합장 후보로 나선 현 추진위원장과 창립총회 때 경선을 벌일 상대편 지지자들이 이를 문제 삼으면서 추진위원회 사무실에 들이닥친 것. 사전개표를 통해 서면결의서가 조작됐다는 것이 바로 상대편 지지자들의 주장이다. 추진위원회 측에서는 사전개표를 인정했지만 조합원 수가 많기 때문에 창립총회에서 개표를 하면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우려돼, 이와 같은 결정을 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미 사업지에서 조합원들은 서면결의서가 조작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누구누구가 몇 표로 당선이 확실하다는 등 구체적인 숫자까지 공개돼, 추진위원회에 대한 불신이 점차 높아졌다. 조합장 후보로 나섰던 상대방 후보도 총회금지가처분 소송을 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오랫동안 힘들게 준비한 창립총회가 무산될 위기다.

#2. 서울 서대문의 한 재개발사업구역은 아직 추위가 풀리지 않은 2009년 3월 새벽 주민 십 수 명이 옹기종기 모여 불을 쬐고 있다. 이유 인즉, 조합원이 제출한 서면결의서를 지키기 위함이란다. 조합 측에 의해 사전에 서면결의서가 개표되면 조작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3. 서면결의서는 조합의 반대파에게 불리한 투표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조합에 의해 징구된 서면결의서는 걷는 사람의 말에 따라 찬반이 엇갈리게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반대파는 서면결의서를 절대 내면 안 된다고 선전한다. 직접 참석해 투표해야한다고 한다. 직접 참석하면 반대파는 조합 총회를 아수라장을 만들 심산이다.

최근 각 사업지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서면결의서 사전개표. 주민들의 동의와 투표를 통해 사업이 진행되는 도시정비사업 특성상 서면결의서 문제는 언제나 예민하다. 특히 서면결의서에 의해 의사결정결과가 총회 개최 전 이미 노출되는 경우가 많아 조합장 선거나 시공사 선정 시에 서면결의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일쑤다.

이른바 서면결의서 조작 의혹이 제기되면서 총회의 의사결정에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현재 일고 있는 사전개표 논란의 핵심은 사전개표를 통해 서면결의서 조작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추진위원회나 정비업체의 입장에서는 사전개표를 통해 총회 개·투표의 시간을 줄여 진행을 원활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전개표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논란이 되고 있는 사전개표, 도시정비사업 전문 변호사들에게 슬기로운 대처방안을 물었다.

문제의 핵심 ‘사전 개표’ 아닌 ‘조작여부’

맹신균 법무법인동인 변호사

실제로 서면결의서 개표는 총회 안 건 상정 후 또는 총회에서 투표가 진행될 때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 전에 서면결의서 개표를 했다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사전개표를 통해 불리한 서면결의서를 은닉하거나 폐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황이 포착되면 총회개최금지가처분 소송이나 총회결의무효확인소송 등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소송을 통해 이를 입증하는 것은 만만치 않다. 조작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없는 한, 법원이 서면결의서의 조작을 단지 의혹만으로 판단하진 않는다. 서면결의서의 의혹들이 계속 제기되고 있지만 소송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던 것도 이에 대한 입증이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작여부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없는 한은 소송을 통해 총회결의를 무효화시키는 것은 어렵다고 볼 수 있다.

“공정성 확보하면 사전개표 문제없다”

남기송 천지인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

사전개표 논란은 결국 공정성이 확보될 수 있느냐 없느냐다. 숫자조작이나 바꿔치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효가 될 수 있는 개연성을 가질 수 있다면 충분히 사전개표를 통해 총회결의 무효가 가능할 것이다. 4~5년 전 서울의 한 재개발현장에서 사전개표의 문제 지적으로 새로 투표를 하라는 사법권의 판결이 난 적이 있는데 결국 새로 투표하면서 기존의 선출됐던 조합장이 바뀌게 된 경우가 있다. 이렇게 사전개표의 문제가 지적되는 것은 결국 서면결의서 조작이 가능할 것이라는 의혹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전개표 시에 반대파 조합원도 함께 참석하고 VCR 촬영을 통해 개표의 신뢰성을 높인다면, 문제화될 소지는 상당부분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선거도 사전개표한다”

함준표 함준표변호사사무실 변호사

사전투표 자체가 문제가 될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대통령 선거 때도 군인들 부재자 투표할 때 사전개표를 하지 않는가? 만약 사전개표가 서면결의서 조작의 의혹이 전혀 없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문제될 소지는 전혀 없다.

하지만 사전개표를 통해 서면결의서 조작이 문제화될 수 있는 소지가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결국 사전개표를 한 이유에 대해 초점이 맞춰질 수 있다.

명확한 이유가 없다면 문제화될 수 있다. 그리고 향후 조합 집행부의 정당성을 의심받을 여지도 있다. 결국 사전개표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만약 한다고 해도 분명한 이유와 사전개표가 공개된 상황에서 진행돼야 문제의 소지가 없을 것이다. 상식적인 범위에서 생각한다면 소송을 통해 결의무효가 될 가능성은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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