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열악한 조건 속 노동자에게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가?

그래픽_황성환 뉴스워커 그래픽1팀 기자
그래픽_황성환 뉴스워커 그래픽1팀 기자

코로나19와 두려움


‘병원’, ‘의사’, ‘환자’, ‘질병’…. 근래 뉴스 키워드는 하나로 귀결된다. 바로 ‘코로나19’다. 지난 3월 22일부터 시작된 사회적 거리두기는 5월 6일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시작됐다. 코로나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는 나날이 커져만 간다.

이러한 상황 속에, 감염병보다 더 두려워할 것이 남은 사람들도 있다. 지난 9월 1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발표한 코로나19 관련 노동자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해 사업장에서 발생한 사건은 경영상황 악화가 1위(60.1%), 작업량 감소가 2위(43.9%), 신규채용 취소 및 축소가 3위(32.8%)로 많은 수를 차지했다.

그에 따라 필요한 정책으로 응답한 것은 안전한 근무환경이 1위(86.5%), 노사고용안정협약이 근소한 차이로 2위(86.4%), 해고금지가 3위(82.3%), 그 외에도 유급병가, 보건의료인력 확대 등에서 노동기본권과 산업안전, 의료보장 등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


노동자들이 위의 정책을 원하는 현실은 분명했다. 추가적인 정책 없이는 ‘안전하지 않고’, ‘고용이 안정적이지 않으며’, ‘만약 감염되면 생계와 직결되는 일을 할 수 없고, 돈 또한 벌 수 없는’ 상황이 바로 그것이다.

위와 같은 상황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택배 노동자 과로사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올 한 해 과로사로 인정된 택배기사가 7명이라는 사실은 많은 사람을 안타깝게 한다. 그러나 언택트로 인해 택배·배달 물량이 현저히 늘어난 이 시기, 택배 노동자와 같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가 보호받기 힘든 것은 예정된 사실이 아니었나.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와중 일이 늘어난 것은 택배 노동자만이 아니다. 게임 시장 또한 때 아닌 호황을 맞고 있다. 그러나 기업의 호황이 곧 노동자에게 호재가 되지는 않는다.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서, 또는 기존 게임을 수정하느라, 노동자들은 밤을 새운다.

법으로 정해진 주 52시간 근무는 허울뿐이라고, 어느 노동자는 말한다. 그 이상 일하고도 ‘법으로 정해진’ 52시간만 보고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일한 급여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억울할 따름이다.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 사례는 금세 하나 더 찾아볼 수 있다. 서울의 신규 확진자가 63명이 되던 날, 그중 16명은 강동구 콜센터의 집단 감염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해당 콜센터는 방역 수칙을 일부 준수하였지만 분명 미흡한 부분이 있었고, 특히 건물 내 환기가 잘 안 되는 구조가 치명적이었던 것으로 보였다.

코로나로 인해 콜센터 전화량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필연적으로 위험한 환경을 개선할 힘이 없었던 노동자들은 일해야만 했다. ‘당장 돈이 필요하니까’, ‘이곳이 아니면 일할 곳이 없으니까’, 그리고. ‘외쳐도 달라지는 것이 없으니까.’


외면당한 사람들


누군가는 집 안에서 택배를 시키고, 게임을 하고, 전화한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누군가는 그 택배를 배달해야 하고, 게임을 제작하느라 집에 돌아갈 수 없으며, 모여 앉아 전화를 받아야만 한다. 그들은 어쩌면, 무관심 속에 외면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택배 주문을, 게임을, 전화를 당장 멈추는 것이 바람직한가? 그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노동자들이 위험을 감수하면서라도 설 곳을 사라지게 하는 일이다. 우리는 다만 귀를 기울여야 한다. 노동자들이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가끔은 시선을 돌려야 한다. 누군가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채 소리칠 힘조차 모자라지 않는지.


불편함을 마주하며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 문제는 코로나 이전에도 심각했다. 게임 개발자들의 업무량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콜센터 노동자들의 근로 환경은 우수했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 문제는 이전부터 지속돼 왔고, 코로나19를 기점으로 간신히 소란을 만들 수 있었던 것뿐이다.

약자를 바라보고, 귀 기울이는 것은 때로 불편하다. 약자는 약자이기 때문에, 화려한 겉치레가 없다. 곳곳에서 들리는 연약한 목소리는, 강자가 공들여 준비한 한마디 말보다 듣기 편치 않다. 그러나 들어야 한다. 보아야 한다.

위에서 언급된 직종의 노동자 외에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분명 존재할 것이다. 아마도 많을 것이다. 대부분 노동자는 때로 약자이기 때문에. 강한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고개 숙여야 하고, 입을 다물어야 하고, 그런데도 버텨야 하므로.

열악한 환경의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다.

“사실 우리는 모두 약해서, 기대어 버텨야 하므로.”

저작권자 © 뉴스워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