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여름, 서울시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있는 다세대 주택이 감정가 1억원 짜리가 2회나 유찰되어 64%까지 떨어져 6,400만 원에 나왔었다.

건물도 지은지 얼마안된 새 건물이라서 관심을 가지고 시세파악을 했더니 주변 시세는 1억 전후였고 전세가는 7000만원정도였다.

입찰에 들어가기 전 동사무소에서 전입자를 확인해 보니 소유주만 사는 것으로 확인되었고, 내부 구조를 보려고 수차례 방문을 했지만 결국 낙찰 받을 때까지 아무도 만날 수가 없어 조금은 불안한 마음으로 입찰에 들어가서 3명의 입찰자 중 내가 6,889만 원을 써서 낙찰을 받았다. 보름정도 뒤에 잔금 통지서가 나왔기에 잔금을 내지 않은 상태에서 먼저 조심스레 방문을 하였더니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학생이 문을 열어 준다.

집에는 아무도 없고 여학생과 나 혼자라서 잠시 인사만 나눴지만. 이 직업병은 어찌할 수 없는지 그 짧은 시간에도 내부 구조와 싱크대 교체 여부, 방 크기, 욕실을 보면서 나중에 입주한 후 수리 여부를 파악했다. 그래도 집을 깨끗하게 썼고 가구도 새것으로 채워져 있는 걸 보고 신혼부부 살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깔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여학생과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명함을 주고 나오면서 아버님이 오시면 연락을 달라고 해놓았건만 잔금을 치르고 며칠이 지나도 연락이 없다.

하는 수 없이 또다시 찾아갔다. 밤 10시가 넘어도 집에는 아무도 없는지 불이 켜지질 않는다. 그러다 11시 정도 되었나? 멀리서 힘겹게 걸어오는 사람을 보니 직감적으로 그분이 채무자 겸 소유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집에 들어가려는 그분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드렸더니 한숨을 깊게 들이 쉬면서 힘없는 목소리로 집에 같이 들어가자고 한다.

그런데, 그동안 몇 번을 저녁에 찾아왔을 때마다 불이 켜 있지 않아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그 집에 그분의 딸이 있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전기세 낼 돈이 없어서 전기가 끊어졌단다. 그래서 전기도 안 들어오는 집에 촛불을 켜 놓고 마주앉아 그동안 그 집이 경매로 넘어간 이야기를 나는 한 시간이 넘도록 들어야만 했다.

채무자겸 전(前)소유자는 6년 전 상처를 하고 2년 전 어느 여자를 만나 새 살림을 차렸단다. 집에 있던 새 가구들은 그때 마련한 것이었고 새 사람으로 들어온 여자는 이곳저곳에 빚이 많아서 그 빚을 갚아주느라 자신의 집을 담보로 해서 융자를 받았는데, 그사이 여자가 바람이 나 도망갔단다.

그렇게 도망간 여자를 찾느라 1년간 헤매고 다니다 보니 융자금 이자를 갚지 못해 결국 경매를 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을 흘린다.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주제넘게 힘들어 하지 마시라고, 잘되실 거라고 격려하고는 조심스레 언제 이사하실 거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분은 이사할 돈도 없고 월세 보증금 한 푼도 없다면서 불쌍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월세 방을 마련해드리려고 다음 날부터 이 동네 저 동네를 다니면서 알아보다가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20만 원짜리 방을 찾았다.

어찌나 기쁘던지 곧바로 전 소유자에게 연락해서 함께 그 집으로 갔다. 그 집을 잠깐 보다가 전 소유자가 하는 말.

“제가 아무리 처지가 이래도 과년한 딸이 있는데 어찌 한 방에 같이 살 수 있겠소?”

월세 보증금 300만 원을 이사비용으로 주는 것도 많다고 주변에서 뭐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정이 너무 딱하여 내 딴에는 큰마음을 썼다고 썼는데도, 이렇게 묻는 것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며칠이 지나 다시 방 2개짜리 월세 방을 찾아 헤매었다. 다행히 방 2개짜리가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으로 나와 있어서 그걸 소개해줬다. 전 소유자는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내가 마음 써 준 일이 고마워서인지 다음 주에 곧바로 이사를 하겠단다.

그러나 나도 이사비용으로 월세보증금 300만 원을 주는 입장이라 따로 이삿짐센터를 부를 수가 없었다. 눈치를 살피니 전 주인은 눈만 말똥거린다. 속에서는 부아가 치밀어 오르지만 그래도 내 형편이 조금 더 낫다고 생각하여 잘 아는 동생에게 연락해 1톤짜리 트럭을 불러 이사를 하게 됐다.

문제는 새로 샀던 가구들이 월세 집에 들어가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자 전 주인은 나에게 이 가구들을 가져가서 쓰든지 중고가구점에 팔아서 보증금 일부라도 충당하라고 한다. 그래서 이사를 마치고 그 가구를 집으로 가져왔다. 지금 우리 집에서 쓰고 있는 가구가 바로 그 ‘파로마 가구’다.

이글을 읽는 여러분은 집에 파로마 가구가 있소?/

 
닉네임 야생화로 더 알려진 배중열 대표는 공주사범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한 후 연세영어학원 강사로 활동하다가 부동산 경매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 후 명지투자연구소 이사, 부경아카데미 부원장, 한국법학권 경매담당 강사, 수원디지털대학, 한성대학 사회교육원 강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주요 저서로는 ‘백배의 축복’, ‘경매천재가된 홍대리’ 등 부동산 재테크분야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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