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회계투명성이 바닥을 헤메고 있다. 갈수록 하락하는 회계투명성, 이것을 재고할 법안이 제기됐는데, 기업 측은 비용 수반을 이유로 거부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투명성 확보는 국가경쟁력 확보에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그래픽: 진우현 기자)

[뉴스워커: 이필우 기자] 감사인지정제가 한시적으로 도입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감사인지정제’는 최근 국내 회계시장의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데에 대한 투명성을 개선하기 위해 이해관계자가 많은 상장회사나 금융회사 등에 9개 사업연도 중 한 차례 연속하는 3개 사업연도에 대해 금융감독당국의 감사인 지정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제도다.

이 제도가 지난 11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의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 등이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이하, 외감법) 개정안을 발이 하면서 이에 대한 법안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채이배 의원은 “9개년도 중 6개년도는 회사 자율로 회계감사인을 지정하고, 그 외 3개 년도인 1회는 금융당국이 지정하는 방법으로 ‘6+3 감사인지정제’(혼합제)를 적용하는 것이 회계감사에 대한 투명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이는 최근 논란이 되는 대우조선해양 사태는 5.5조원의 대규모 손실 인식에서 촉발되었는데, 감사인이 수치 오류를 인정한 2조 원가량이 분식회계로 의심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최근 대우건설, 모뉴엘, STX그룹, 효성 등에서 잇따라 발생한 천문학적 규모의 분식회계 사건은, 분식회계가 단순히 일부 회계감사인 또는 경영진의 도덕성 문제만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하고 있음을 방증하고 있는 사안이기도 하다. 근본적으로 경영진과 독립적이지 못한 감사인선임위원회에 독립적인 감사인 선임을 맡기는 것 자체가 한계 있음이 분명함에도 그동안 정부는 실효성 없는 감사인선임위원회만 손질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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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국내 회계시장에 대한 신뢰는 지속적으로 하락했고, 급기야 작년에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회계투명성 지수 평가에서 60위(전체 61개국)를 기록한데 이어, 올해에는 61개국 중 최하위를 차지하는 수모를 겪게 됐다. 현재 우리나라 회계시장은 불신이 팽배해 있으며, 더 이상 시장의 자정노력에만 의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는 근본적으로 감사인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강력한 조치로 지정감사제도를 확대 적용해 회계시장의 오랜 관행의 틀을 깰 필요가 있다. 현재와 같이 시장에서 회사가 감사인을 선임할 경우 감사인은 기업과 그 의사결정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제대로 된 의견을 내기 어렵고, 설령 분식과 같이 불법사실을 발견하더라도 감사계약을 포기하지 않는 한 묵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로 인해 결국 감사인과 회사와의 유착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관련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따라서 이번 발의된 개정법안은 상장회사와 금융회사 등 대규모의 회사 및 시스템 리스크가 큰 회사들에 대해 회사가 자유롭게 감사인을 선임하는 것을 최대 6년간 허용하되, 이후 3년간은 금융감독당국이 지정하는 감사인을 의무적으로 선임하는 것이 제안된 것이다.

한데, 감사인 지정에 대해 기업들이 비용증가를 이유로 반대하는 상황이므로 이를 한시적으로 9년에 걸쳐 단 1회, 3년간만 적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외에 이번 개정안은 회사가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감사인의 독립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는 규정을 대폭 손질했다. 매 사업연도 1개월 이내에 감사인을 선임하도록 해 감사의견에 회사가 부당한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했다. 또한 회사가 감사인을 변경할 계획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압력 행사의 수단으로 감사인 교체 운운하는 것을 막기 위해 감사인 변경의 경우 공시하도록 하고, 이 경우 반드시 감사인을 교체하도록 명문화했으며, 감사인이 사업연도 종료 2개월 전까지 감사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해 분식 의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자료제출 등 감사인의 요구에 미온적으로 응하는 경우 해당 회사의 감사를 거부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감사인의 독립성 확보와 동시에 시장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회사가 감사인에게 재무제표를 사전에 제출하지 않은 경우 그 사유를 14일 이내에 공시하도록 하고, 이로 인해 제재를 받은 경우에도 공시하도록 했으며, 감사인 지정사유로 정한 재무기준 강화 및 법령 위반으로 처벌받은 이력이 있는 임원이 재직 중인 회사를 추가하는 등 감사인 지정기준도 강화했다.

또한 이번 개정안은 감사인과 회사의 책임 또한 보다 강화할 것을 제안했다. 현재 회계법인에게 적립하도록 한 손해배상공동기금을 경우에 따라 회사도 적립하도록 했으며, 특히 상장회사 및 금융회사의 임원이 고의로 회계기준을 위반해 재무제표를 작성·공시한 경우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여 분식회계에 대해 엄중 제재할 근거를 마련했다.

이번 법안을 대표 발의한 채이배 의원은 “이번 외감법 개정안이 일시적으로 회계시장에 ‘충격’을 줄 수는 있겠으나, 지금까지 관행이라는 이유로 묵인되었던 낡은 회계 관행을 뿌리 뽑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며, “한시적으로 지정감사제 확대 도입을 통해 회계감사인과 회사 모두 건전한 회계처리를 위한 인식 제고에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이번 외감법 개정안에 공동발의한 의원은 김경진, 김삼화, 김종회, 민병두, 박선숙, 신용현, 이용득, 이용주, 조배숙, 채이배, 천정배, 최경환(국) 의원(이상 가나다순)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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