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 올해 들어 잇달아 터진 초대형 게이트의 공통점은 ‘끼리끼리 다 해먹었다’는 것이다. 사익을 위해 국가 시스템을 무너뜨린 셈이다. 제약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바로 리베이트다.

파마킹·유영제약·유유제약·한국노바티스. 올해 리베이트 제공 혐의로 압수수색 또는 기소된 제약업체다.

정부는 리베이트 근절을 위해 제약업체와 향응을 받은 의사를 모두 처벌하는 리베이트 쌍벌제 등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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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부의 이같은 리베이트 근절 의지에도 불구하고 매년 리베이트로 적발되는 제약업체가 나오는 실정이다. 한마디로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다.

금품을 제공하는 제약사와 받는 의사 양쪽 모두 처벌하겠다는 법을 만들어도 왜 리베이트는 근절되지 않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약업체의 영업방식이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다.

대기업 계열사 K 제약사의 한 영업사원이 쓴 제약영업 노하우라는 글에서 리베이트가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 없는 영업사원과 의사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 대기업 계열사 K제약사의 한 영업사원이 쓴 제약영업 노하우

이 영업사원은 제약영업 노하우를 “(의사와)‘무조건’ 친해져야 한다.”라고 알려줬다.

그는 처음 종합병원영업을 시작할 때 착각했던 점이 하나 있다고 했다.

“로컬(의원)은 유대관계가 중요하고 종병(종합병원)은 제품력이 중요하다는 확고한 생각에 종병영업 초반에 방문 때마다 너무 제품 얘기만 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날의 실수를 통해 아무리 제약사가 좋고, 제품력이 좋아도 고객과 친하지 않으면 그 좋은 것들도 빛을 보지 못한다는 제약영업의 현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빨간 약(영화 매트릭스에서 충격적인 현실을 알게 하는 약)을 먹은 그는 일단 ‘무조건’ 고객(종합병원 교수·원장)과 친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초반 친분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매주 제품 디테일을 하는 MR과 초반 친분을 두텁게 쌓은 다음 그 후 매주 제품 디테일을 하는 MR 중 결국 후자가 매출 상승률도 높을 것이고 장기전으로도 유리할 수 있다.”

고객과 친해지고 나서 제품 설명을 매주 반복해도 늦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상적인 제약영업 방식은 학술로 다가가는 것이지만 매출을 극대화 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고객과 ‘무조건’ 친해지는 것이 제약영업 현실이라고 그는 말했다.

고객과 ‘무조건’ 친해지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 유영제약과 한국노바티스의 사례를 통해 알아보자.

▲ 유영제약

유영제약이 영업 사원에게 시킨 노예 수준의 ‘감성영업’을 무조건 친해지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꼽아 본다.

유영제약 영업사원들은 담당 의사의 출퇴근 픽업은 물론이고 자녀들의 등하교 동반, 개인차량 정비, 조식 배달, 병원 시설물 관리 등 개인적인 용무까지 해결하는 감성영업을 했다. 안 친해지려야 안 친해질 수 없는 영업방식이다.

무조건 친해지기 위해서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수법도 사용했다. 유영제약은 지난 6월 45억원 상당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임직원이 경찰에 검거된 바 있다.

유영제약은 법인카드로 지인이 운영하는 상점이나 온라인 쇼핑몰에서 상품권을 구매한 뒤 이를 되팔아 현금을 마련하는 등의 방법으로 리베이트 자금을 마련했다.

모 조사 대행업체와 짜고 실제 행해지지 않은 의약품 관련 조사에 대한 비용을 사례금 명목으로 의사 등에게 지급하는 수법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했다.

고객과 무조건 친해지기 위해서는 다국적제약사도 다를 바 없다.

▲ 한국노바티스 브라이언 글라드스덴 대표

한국노바티스는 지난 2011년 1월부터 올해 1월까지 6년간 의약전문지 등에 광고비 명목으로 약 180억원을 지급, 이를 받은 의약전문지가 개최하는 좌담회 참가비와 자문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대학 종합병원 의사들에게 25억9000만원 상당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노바티스는 전문지 취재 명목으로 서로 친분이 있는 5~10명의 의사를 호텔 등 고급식당에 초대해 1인당 30~50만원 상당의 참가비를 지급했다.

노바티스가 참석 대상으로 선정한 의사들은 서로 사제지간이나 대학 동문으로 각 의료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일명 ‘키닥터’들이었다.

전문지는 노바티스에서 선정한 의사들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한 달에 100만원 상당의 자문료를 주거나, 학술지 발행업체의 번역 업무에 대한 편집회의를 열고 원고료 명목으로 50~100만원 상당을 주기도 했다. 검찰은 해당 의사들이 실제로 노무를 제공하지 않아 리베이트를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해당 불법 리베이트에 연루된 의약전문지들은 각종 행사를 대행한 후 수수료 명목으로 평균 30~50% 정도의 수익을 챙겼다. 전문지 6곳이 챙긴 수익은 54~90억원에 달한다. 한 곳당 9~15억원이다.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는 옛말이 있다. 귀신도 부리는데 고객과 친해지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닐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방법으로 고객인 의사와 제약사 영업사원이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그 피해가 국가와 환자한테 온다는 데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재정은 축나고 보험료가 오르면 오를수록 이익은 그들에게 돌아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제약업체 영업사원이라면 고객과 ‘무조건’ 친해지는 것이 아닌 제품 장점을 소개해 매출 증가로 이어지게 하여야 한다.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만 한다.

‘무조건’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국정농단이 벌어진 사태에 모든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친하다고 ‘끼리끼리 다 해먹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제약사와 의료인의 리베이트에 분노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한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16일 전체회의를 열고 일명 ‘리베이트처벌강화법’으로 불리는 의료법 개정안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법안심사 제2소위로 회부됐다.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발목이 잡힌 것이다.

법안은 리베이트를 한 의료인에게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서 강화된 내용이다. 수술 등 의료행위 시 설명의무를 부과토록 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토록 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같은 내용은 의료인에 대한 처벌 강화라는 점에서 의료계의 초미의 관심사다. 특히 3년 이상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할 경우 ‘긴급체포’도 가능하므로 의료계에서는 거센 반발을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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