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서울인권영화제

2016 서울인권영화제(21회) 슬로건 해제

나는 오류입니까
나는 다른 이들에게 조심스레 물어 보았습니다.
그들에게서 내가 ‘틀렸다’는 시선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나와 관심이 같은 사람이 본 뉴스
그들은 내가 틀릴 것이라 가정하고, 늘 나를 지켜봅니다.
내 휴대전화를 보고, 사진을, 글을, 통신기록을
마치 틀렸다는 증거를 찾으려는 듯이 주시합니다.
내 머리모양, 옷매무새 하나까지도 그 증거가 될 것 같습니다.

나는 오류입니까
내가 나에게 되물었습니다.
나는 다른 몸을 가진 여성/남성/혹은 다른 누군가가 되기도 하고,
나는 이주민이 되기도 하고,
나는 핵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다 협박을 받게 되기도 하고,
나는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하다 허공으로 몸을 던지게 되기도 하고,
나는 테러 의혹으로 감시당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나는, 나 자신에게조차도 오류인 걸까요?

그러다 잠시
질문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내 마음의 외부와 마주합니다.
지금 당장은 나만을 향하는 불안들이 영화 속 '삶들'과 만납니다.
영화 안/밖의 사람들이 모두 나일 수도 있다가, 나였다가
이내 섞입니다.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는 사이
내가 오류라는 불안은 저만치 다른 곳으로 옮겨 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나는 오류입니까
나의 존재 자체를 오류라고 하는 것들에 대한 물음이며, 항변입니다.
내 몸이 규격화된 여성/남성의 몸이 아니라서 틀렸다고 하는 성별이분법에,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의 국적이 없기에 내가 틀렸다고 하는 법에,
나 스스로 몸을 던지게 만드는 노동환경에,
나와 내 가족이 이성혼 관계나 혈연관계가 아니어서 가족이 아니라고 하는 제도에,
그날의 진실을 알고자 하는 나를 틀렸다고 하는 국가에,
이제 이 물음은 이것들만을 향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오류입니까

 

◆ 서울인권영화제, 가장 많은 내용이 담긴 인권해설책자
 
서울인권영화제의 인권해설책자는 매년 발행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번 21회의 인권해설책자는 발행된 인권해설책자 중에서도 가장 여러 인권이슈들을 다루고 있으면서 가장 많은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이번 해설책자의 표지와 내지 디자인은 이효정(GRAFIK P.L-F) 디자이너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표지는 약간 난해해 보이기도 해요. 구름 같기도 하고, 내장 같기도 하고, 보는 사람마다 제각각의 아이디어를 내놓는데요. 어떤 의미가 숨어있을까요?
힌트는 올해의 영화제 슬로건인 ‘나는 오류입니까’에 있습니다. 이번 영화제의 슬로건 ‘나는 오류입니까’는 모든 자원활동가들이 함께 회의에서 고심하여 만들었어요. 이효정님은 이 슬로건에 착안하여, 정형화되어 있지 않고, 소위 말하는 오류 같기도 하고, 서로 붙지 않고 떨어진 듯 보이지만 실은 이어져 있는, 모습을 표현했어요. 그것이 삼차원으로 보이는 저 부유물입니다. 아래에 있는 큐브 조각들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규격, 딱 맞는 것들을 상징해요. 하지만, 누구나 그런 존재일 수도 없고, 그런 존재이기를 강요받을 수도 없죠.
 
이어서 인권해설책자 안쪽을 살펴보겠습니다. 올해 21회 영화제는 총 35편의 작품을 상영했고, 그 작품들 각각에 인권해설이 실렸어요. 총 97페이지라는 묵직한 분량으로 뽑히게 되었습니다. 상영예정 작품은 어떤 섹션에서 어디에 중점을 맞추어 상영되느냐에 따라, 자신이 맞는 옷을 입듯 프로그램 속에 짜이게 되고, 그러면 영화제의 활동가들이 가장 연관 있는 인권 활동을 한국에서 하고 있는 인권활동가에게 연락을 드리고, 해설과 프로그램 진행을 제안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작품 해설을 받게 되죠. 작품 해설은 영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에 대해 ‘풀어내기’와 지금의 한국에서의 운동 현황을 생생하게 담아내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 사진:서울인권영화제

 
위의 작품은 딘 스페이드의 <핑크워싱>으로, 이스라엘의 핑크워싱에 대해 시애틀의 LGBT활동가들이 보이콧 했던 운동의 진행 과정을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입니다. 여기에 대한 인권해설은 총 3개가 쓰여졌어요.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한국레즈비언상담소, 서울인권영화제에서 각 1개씩 써서 실었죠. <핑크워싱>의 경우 이번 영화제에서 집중하고 있는 네 개의 주제, <정보인권-표현의 자유>, <존엄과 안전-4.16인권선언>, <혐오에 저항하다>, <핑크워싱> 중에 하나였어요. 그렇기에 더 특별히, 한 작품이면서 한 섹션인 <핑크워싱> 프로그램에 참여한 활동가들이 모두 인권해설을 써서 실었어요.
 
인권해설은 보통은 한 작품마다 하나씩 들어가지만, <핑크워싱>처럼 이렇게 여럿이 들어갈 때도 있고 작품의 이해에 필요하다면 당 인권이슈와 관련된 개념들을 함께 설명해서 넣기도 해요. 작년의 <네이슨>이라는 트랜스젠더의 존엄사에 대한 작품이 그러했죠.
 
서울인권영화제의 인권해설책자는 작품 줄거리 부분도 특별한데요. 바로 자원활동가들이 직접 영화를 보고 영화의 줄거리를 작성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홍보를 위해 쓰거나 감독의 의도가 부각되게 작성된 기존의 영화줄거리와는 다르게, 이 영화를 어떻게 인권과, 프로그램과 연결시켜볼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쓴 줄거리이기 때문에 영화를 보고난 뒤의 ‘인권’에 대한 고민들을 더 쉽게 이어갈 수 있고 그래서 더 특별합니다.

▲ 사진:서울인권영화제

그리고 이러한 해설책자의 퀄리티는 4, 5월 동안 인권해설 원고를 받아서 밤을 새워가며 수 차례 교정교열을 거친 자원활동가들의 보이지 않는 노고가 있었기에 빛을 발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인권해설책자도 많은 분들, 그리고 단체의 후원이 없었더라면 만들어질 수 없었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는 후원활동가들로 인해 존속되고 계속해서 운영될 수 있습니다. 성미산 마을극장이라는 공간도 지역공동체인 성미산 마을에서 적극적으로 장소 후원을 해주시지 않았다면 광장에서도 실내에서도 상영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 해설책자는 인권재단 사람의 <2016 인권활동 119>의 제작지원을 받았습니다. 덕분에 이렇게 역대 가장 최장의, 최고의 질을 자랑하는 인권해설책자가 나올 수 있었습니다.

 

작성 : 서울인권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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