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 박길준 논설위원] 왕따라는 말은 비단 학교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직장 내에서도 괴롭힘 등이 존재하며, 직장내 왕따, 힘히롱 등은 늘 사회의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직장에서 구성원이 특별한 이유없이 퇴사를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심에는 구성원 간의 불협화음 때문에 퇴사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그 만큼 직장 내에서의 권력형 왕따나 또는 집단 따돌림 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최근 방송과 뉴스에서 직장 내 괴롭힘, 권력형 괴롭힘, 직장 왕따, 힘희롱 등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직장 내에서 발생하는 공격적이고 비상식적인 행위들을 전할 때 주로 사용되는 말이다. 비슷한 의미로 일본에서는 ‘파워하라(パワ-ハラ, power harassment)’라는 말을 사용한다. 특정 용어로 정의될 만큼 우리사회에는 직장 안에서 권력관계에 의한, 상사나 동료에 의한 괴롭힘이 만연한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지난 2014년 11월 KT에서 벌어졌던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조사가 이뤄진 바 있다. 결과는 예상할 수도 없을 만큼 참혹했다. 삶의 터전이자 자아실현의 공간이어야 할 직장이 구조조정과 실적압박 그리고 괴롭힘이라는 잔혹한 격투장으로 변질돼 버린 것이다.

▲ KBS 영상 캡쳐

KT는 지속적인 인력감축과 이를 위한 인력 퇴출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그 과정에 수많은 노동자가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당한 것이 드러난 바 있다. 실제 KT는 괴롭힘으로 인한 우울증이 산재로 인정받은 사례도 있었다.

‘KT 사례로 보는 경영전략으로서의 직장 내 괴롭힘 조사·연구 프로젝트팀’이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대신증권에서도 ‘전략적 성과관리’라는 이름으로 인력퇴출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KT에서 발생하는 직장 내 괴롭힘이 KT라는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 전반에 퍼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가 나왔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에 조사를 확대하기 위해 대신증권노동조합이 속해 있는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과 함께 사무금융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직장 내 괴롭힘의 실태를 파악하고 심층적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금융권의 구조조정은 상시적으로 일어났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급속도로 진행됐다. 최근 들어서 금융 산업은 외환위기 이후 최대 규모의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NH투자증권이 희망퇴직을 신청받았으며, KB와 합병한 현대증권 쪽도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통계청 고용통계 조사 자료를 보면, 금융․보험업 취업자 수는 2014년에 이어 2015년에도 해마다 줄고 있다. 2014년 7월을 기준으로 한 해 전보다 4만 9000명이 줄었다는 것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특히 대졸 상용직은 4만 4000명이나 감소했다.

▲ KBS 영상캡쳐

최근에는 극심한 구조조정을 견디다 못한 금융권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해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박탈되고 인격적 모독이 난무하는 상황을 타개하려 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몇 해전에는 사무금융노조에 대신증권을 시작으로 HMC투자증권, LIG투자증권, 아주캐피탈, 더케이손해보험 등 20여개의 신규 및 산별노조 전환 사업장이 발생하기도 했다. 모두 극심한 구조조정과 성과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사업장인 것이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일어나는 회사의 괴롭힘, 인격적 모독과 개별 노동자에 대한 압박으로 회사에서 노동자들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은 극심해지고 있다.

상시적인 구조조정과 더불어 일상적인 실적 압박, 해고 위협도 심각한 수준이다. 증권 영업직의 경우, 수치로 계량화된 직원 평가가 가능한 업무의 특성상 실시간으로 직원들의 실적순위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기업은 저성과자에 대한 교육 및 관리프로그램이 운영되는데 사실상 퇴출프로그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신증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고성과 조직구축을 위한 전략적 성과관리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영업직을 포함해 사무금융노동자에 대한 평가는 계량화된 평가(정량평가)만이 아니라 정성평가도 하고 다면평가를 한다며 종합평가를 하고 있다. 과정 전체에 상사의 주관적 개입, 기업의 경영방침이 모두 관철되고 있었고, 그 속에서 노동자들에게 실적 압박과 기업방침에 문제제기를 하는 노조간부를 저성과자로 만들기도 했다는 사실이 언론에 의해 드러나기도 했다. 이러한 현실에서 ‘저성과자’라는 딱지는 정당한가에 대한 고민을 시작으로 ‘전략적 성과관리’가 노동자와 일터를 어떻게 바꾸어 나가고 있는지, 어떤 괴롭힘을 불러일으키고 있는지 정부 차원에서의 전수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집단 내 따돌림은 구성원의 업무성과 저하를 불러일으킨다. 결국 이런 정신적 충격은 회사 내에서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어 기업 뿐 아니라 정부의 적극적 개입이 이뤄져야 비로소 고용의 안정과 윤리의 정당화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는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임직원의 행동강령을 신설했다고 한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경각심을 노이고 사회적 분위기에 맞춰 코트라도 임직원의 윤리적 가치와 행동기준을 구체적으로 정하게 된 것이다. 먼저 코트라는 직장 내 괴롭힘을 ‘상사가 직위, 업무상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부하 직원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훼손하거나 인격을 침해하는 행위’로 정의했다. 이를 바탕으로 △개인 △업무 △배척 및 고립 △기타의 4개 중분류에 맞춰 8가지 세부유형을 정해 금지하고 철저한 예방노력을 펼치기로 했다. 코트라의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행동강령을 기준한 것은 환영받을만한 일로 보인다. 다만, 이런 행동강령 지침 등이 단순 강령으로만 남아서는 안될 것이다. 또 공기업의 이러한 지침이 다른 타 기업에 모범이 되어 모두가 인식하는 따돌림이 없는 왕따가 없는 사회가 만들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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