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적인 관점에서 무리 없는 탈원전 정책 유지 필요

그래픽_뉴스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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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원전 폐로의 직접적 원인이 된 고리 1호기 고장 은폐사건


2012년 3월 4일 ‘홍석우’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은 고리원전 1호기에 중대한 고장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한 달 이상 보고하지 않은 점에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사고는 2012년 2월 9일 오후 8시 34분부터 12분 동안 외부 전원이 공급되지 않는 상황에서, 정상적이라면 외부 전원이 차단된 후 10초 이내에 자동으로 작동해야 할 비상발전기가 가동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했다.

비상발전기가 잔열제거 장치에 전력을 공급하지 못하자 12분 동안 원자로의 냉각수 온도는 36.9°C에서 58.3°C로 상승했으며 사용 후 핵연료 또한 21°C에서 21.5°C로 상승했다.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장시간 전원이 공급되지 않은 상황에서 해결 방법을 찾지 못했다면 최악의 경우 후쿠시마 원전에서 일어난 ‘노심용융(멜트다운)’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는 치명적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노심용융이란 제대로 냉각되지 못한 핵연료봉의 온도가 급상승하여 연료봉을 싸고 있는 보호 용기를 파손시키고 방사성 물질을 용기 외부로 방출하는 상태를 말한다.

격납고가 손상을 입을 경우 외부 대기로 방사성 물질을 방출할 수 있으며, 후쿠시마 원전 사고처럼 핵연료봉이 냉각수나 해수와 접촉할 경우 대량의 방사능 오염수를 생성할 수 있어 노심용융은 최악의 원전사고 중의 하나로 평가된다.

고리 1호기에서 발생한 사고는 사고 자체도 문제가 되었지만 운용인력들이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즉시 보고하지 않고 사고 발생 후 한 달이 넘은 3월 12일에야 보고함으로써 투명한 원자력 발전소 운영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크게 훼손하는 계기가 됐다.

고리 1호기는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하여 2007년 6월 수명만료로 가동이 중단되었으며 2008년 1월에 10년간 재가동을 승인해 다시 운영된 노후 원전이었다.

설계수명이 초과된 노후 원전을 보강하여 재가동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 위험하다거나 안전하다고 판단할 근거는 없지만, 설계수명을 초과한 원전을 보강한다고 해서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신형 원전과 동급의 안전성을 가진다고 확언하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배경에서 월성 1호기도 1983년 상업운전을 시작하여 2012년에 설계수명이 완료된 노후 원전으로 2022년까지 재가동하도록 승인을 받았으나, 고리 1호기 사고 사례를 볼 때 재가동 승인만으로 안전을 확실히 담보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어렵다.


폐로된 원전을 시급하게 재가동할 필요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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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력거래소

물론 현재 전력 공급 사정이 좋지 않다면 블랙아웃(대정전) 발생 시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노후 원전을 재가동할 필요는 있다.

현재 위험을 감수하고 노후 원전까지 재가동해야 할 정도로 전력 공급 상황이 나쁜가? 하는 물음에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쁘다고 볼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전력 수요는 냉난방이 필요한 여름과 겨울에 크게 증가하는데 일반적으로 여름에 정점을 기록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배경에서 전력거래소의 ‘최대전력실적’ 자료를 분석하면 2020년 8월 26일에 공급능력 9만 7951MW(메가와트), 최대수요 8만 9091MW로 예비율은 9.9%를 기록했다.

이때 예비율은 추가로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이 얼마나 남아있는가 하는 지표로 수치가 높을수록 많은 전력을 공급할 수 있어 전력 수요가 더 증가하더라도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비율 9.9%는 공급능력이 풍부했던 2015년 14.2%에 비하면 다소 낮은 수치이지만 2012년에 기록한 5.2%와 비교하면 거의 2배에 가깝다.

또한 예비율은 예비전력을 최대수요로 나눈 값으로 산출하므로 분모인 수요가 클수록 낮아지기 때문에, 2020년의 예비율은 2배가 넘지 않지만 예비전력은 ‘8860MW’로 2012년에 기록한 예비전력 3985MW의 2배가 넘는 수준이다.

따라서 최대수요를 기준으로 분석할 때 단 시간 내에 전력사정이 악화되어 한국에서 블랙아웃이 발생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볼 수 있으며, 이는 위험을 다소 감수하고 노후 원전을 가동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기 어려운 근거로 제시될 수 있다.


오히려 에너지 전환이나 에너지 저장 방식 고민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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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력거래소

공급예비율이 10%이하에 달할 정도로 높은 전력수요가 발생하는 날은 그리 많지 않으며, 최근 9일간의 전력 상황을 보면 공급예비율 53.2%를 기록하는 날도 있을 정도로 대부분의 경우 예비전력은 충분하다.

예비전력이란 공급할 수 있는 전력과 수요 전력의 차이를 말하는 것으로서 수요예측 오차나 계통주파수의 조정 등의 사건에 대응할 수 있도록 보유하는 전력이며, 예비율은 공급예비력을 최대수요로 나눈 값으로 전력계통이 얼마나 여유를 보유하는지 알려주는 척도로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예비전력과 예비율이 높을 경우 이상 상황에 대해서 충분한 대응을 할 수 있다고 평가된다.

즉 예비전력이 충분할 경우 위험 부담을 안고서 노후 원전의 재가동을 추진할 필요성이 적으며, 오히려 예비율이 40~50%가 넘을 정도로 여유가 있을 경우에는 이 전력을 전기에너지 형태로 ESS에 저장하거나 수소와 같은 가스 형태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전력 수요는 일간이 아닌 시간별 기준으로도 변동성이 커서 전력 수요가 증가한다고 바로 발전설비를 무한정 증가시키는 것은 비효율적이며, 오히려 수요관리나 에너지 저장을 통해 변동성을 줄이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충분한 예비전력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 폐기물과 안전성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는 원전을 고집하지 않고 신재생에너지로 전환을 꾀하는 것을 합리적이지 않다고 비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원전의 경우 안정적인 출력을 보장하지만 사용 후 핵연료와 같은 방사성 폐기물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보듯이 한번 사고가 일어나면 그 피해는 일본과 같은 경제 강국조차도 온전히 감당하기 버겁다.

즉 충분한 예비전력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그린 뉴딜에서 추진하는 ESS나 P2G 형태로 전기 에너지를 전환하여 사용하거나, 원전에서 신재생에너지로 전환을 꾀하는 것을 비합리적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는 간헐적인 전력 생산이라는 약점을 가지고 있어 핵융합 발전과 같은 안정적인 에너지원이 등장하기 전까지 예비전력이 위협받지 않는 수준에서 원전이나 화력발전 등을 유지할 필요는 있다.

결국 무리한 탈원전은 회피해야 하지만, 예비전력이 충분한 상황에서 위험부담을 감수하지 않기 위해 노후화된 원전을 재가동하지 않은 것을 무리한 탈원전 정책이라고 비난하며 비합리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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