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주 NXC 대표이사(왼쪽), 진경준 전 검사장(오른쪽) /연합뉴스

[뉴스워커]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김진동)는 13일 진경준 전 검사장이 넥슨 측으로부터 받은 9억 5천여만원은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정주 대표의 금품 제공 과정에서 직무연관성을 찾기 어렵다는 이유로 1심 무죄를 선언해 현실 무시 봐주기 판결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유망 벤처 기업인·검사라는 자리에 있던 두 사람이 이처럼 큰 이익이 될 주식을 몰래 주고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특혜'라는 윤리적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친구 사이에 비상장 회사의 주식을 공짜로 주고받는 것이 합법화되는 것이냐는 비아냥도 나온다. 

넥슨 주식의 취득 과정을 두고 초기에 진 전 검사장과 김 대표가 모두 '내 돈으로 정당하게 샀다', '회삿돈을 빌려줬다' 등 거짓말을 했던 것도 이들의 발목을 잡는 족쇄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주식특혜 논란이 불거져 검찰에 불구속 기소됐던 지난 7월말 넥슨 등기이사직에서 사임한 바 있다. 그는 당시 게재한 사과문에서 "저는 사적 관계 속에서 공적인 최소한의 룰을 망각하는 잘못을 저질렀다"며 "너무 죄송해 말씀을 드리기조차 조심스럽다. 법의 판단과 별개로 저는 평생 이번의 잘못을 지고 살아가겠다"고 전했다.

앞서 김 대표는 진경준 검사장이 '돈이 있어도 못 산다는' 인기 넥슨 비상장 주식을 사도록 회삿돈 4억2500만원을 특혜 지원하면서 이를 되돌려받지 않았고, 진 검사장에게 해외 여행 경비와 고급 승용차량을 뇌물성으로 지원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이 청구한 추징금 130억여원도 인정되지 않아 일단 재산을 지켰다. 다만 진 전 검사장이 처남 회사에 일감을 몰아준 혐의와 금융실명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보고 징역 4년을 선고했다.

◆ 검찰, 포괄적 뇌물죄 적용…법원은 증거부족으로 받아들이지 않아

검찰은 재판에서 "대기업을 운영하는 김 대표로서는 진 전 검사장의 영향력을 기대하고 돈을 건넸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에 진 전 검사장 측은 "오랜 친분에 의해 대가성 없이 받은 돈"이라고 맞섰다.    

▲ 사진:검찰청

검찰은 김 대표와 진 전 검사장이 2005년 6월~2014년 12월 28회에 걸쳐 9억5000여만원 상당의 뇌물을 주고받았다고 봤다. 여기엔 넥슨 주식 취득 자금 4억2500만원도 포함됐다.

검찰은 두 사람을 기소할 때 구체적인 청탁이 없어도 전체적인 대가 관계가 인정되면 성립하는 포괄적 뇌물죄 법리를 적용한 경우에는 개별 사안에 대한 모든 입증이 필요하지 않다.

계좌이체 내역 등 증거에 의해 두 사람 사이에 돈이 오간 사실은 명백히 드러난 상황에서 검찰과 진 전 검사장은 돈의 성격, 즉 '직무 관련성'과 모종의 '대가성' 여부를 두고 법정 공방을 벌였다.

하지만 법원은 검찰의 이런 법리 적용에 대해 증거 부족 등을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행 대법원 판례는 구체적으로 특정 직무에 대한 대가로 뇌물을 건네지 않더라도 넓은 범위에서 직무관련성이 인정되면 유죄를 인정한다. 일반 뇌물죄보다는 검찰 측 입증 부담이 적다.

 

◆ 법원 "유죄 의심 사정 있지만 대가성 입증되지 않아"

재판부는 김 대표 측이 진 전 검사장에 전한 금품 등이 대가성이 없다고 봤다.

김 대표가 사업·직무와 관련된 현안(사건 수사 등) 발생을 대비해 미리 뇌물을 준 것이라면 그걸 수긍할 만한 개연성이 있어야 하나 이 부분도 설명이 제대로 안 됐다고 판단했다.  

▲ 사진:대법원

재판부는 진 전 검사장이 받은 이익과 직무 사이의 관련성 또는 대가성이 없고 유죄로 의심할 만한 사정은 있지만 입증되지는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알선을 통한 뇌물수수와 관련해서도 알선의 상대방인 '다른 공무원'의 범위나 '직무'의 범위가 특정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약 10년간 김 대표가 진 전 검사장에게 특정한 직무와 관련해 이야기할 만한 현안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김 대표 역시 불법적인 사업을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향후 형사사건 등 발생 개연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알선의 상대방인 '다른 공무원'의 범위나 '직무'의 범위가 특정되지 않았다고 재판부는 알선을 통한 뇌물수수와 관련해서도 판단했다. 

김 대표는 법정에서 "진 전 검사장이 검사이고 나중에 발생할 수 있는 형사사건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돈을 줬다"고 말했지만 재판부는 "김 대표가 막연한 도움에 대한 기대감을 넘어 돈을 준 건 아니다"고 판단했다.

 

◆ 법조계 "법원, 유죄 요건 완화했어야" "검찰 입증 부족"

익명을 요구한 변호사는 "실제로 진 전 검사장이 김 대표의 편의를 봐줬는지, 직무관련성과 대가성이 있었는지 등을 검찰이 제대로 입증하지 못했다"고 검찰 측 입증 책임의 문제를 들었다.    

▲ 사진:대법원

그는  "검찰이 포괄적 뇌물죄로 기소한 만큼 법원에서 조금 더 요건을 완화해 판단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도 판결 내용을 평가하는데 있어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정황’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에 의문을 나타냈다. 

김 소장은 “넥슨의 비상장주식은 사고 싶어도 살 수 없을 정도로 희소성이 컸다”며 “1만주를 사실상 공짜로 증여했다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임에 틀림 없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아무리 객관적 증거가 부족했다 해도, 정황상 증거를 너무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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