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어느 날 ‘2jobs’ 카페 회원에게서 장문의 메일을 받았다. 어렵게 용기를 내어 보낸다는 말과 함께 시작한 메일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부모님과 떨어져 봉천동 산동네에서 대학생 남동생과 함께 방 하나를 얻어 살고 있는데, 허름하더라도 방 3개짜리 빌라를 경매로 낙찰 받아 부모님과 함께 살고 싶다면서 조심조심, 그리고 간절하게 내게 도와줄 수 없겠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몇 번이나 망설였다는 글을 읽고 나는 송구스러워서 곧바로 도와드리겠다는 답신을 보냈다. 며칠이 지나 만나보았더니 수줍음 많은 27세의 예쁜 아가씨였다. ‘2jobs’ 카페 재테크 방에 올려진 ‘야생화의 실전경매’ 칼럼을 보고선 나한테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얘기하면 혹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메일을 보냈지만, 이렇게 바로 답신을 받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을 못했단다. 그러면서 너무나 기뻐하는 모습에 나 또한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만나서 이런저런 경매 진행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분이 가지고 있는 돈과 전세금을 합치더라도 방 3개짜리 빌라를 낙찰받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러나 어렵게 용기 내어 메일을 보내고 나를 만나고서는 희망에 부푼 그분을 그냥 되돌려 보낼 수가 없어 도와드리겠다는 약속을 하고선 돌아왔다. 며칠 후 명지경매 사무실에서 일을 보다가 옆에 있던 기환이에게 이분의 딱한 사정을 이야기하니 선뜻 자기가 돕겠다고 한다. 그래서 기환이는 그분에게 맞는 경매물건을 찾기 시작했고 얼마 후 내게 강서구 화곡동 물건을 추천하였다.

감정가 8,500만 원, 최저가 5,440만 원, 2002년 보존등기, 방 3개, 대지 8평, 건평 17평.

우리 둘은 곧바로 화곡동으로 달려가 경매물건을 답사하고 권리분석에도 아무런 하자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음 날 그분에게 연락을 취하여 또 한 번 임장을 하였다. 다행히 그분도 마음에 들어 하셔서 입찰을 하기로 했는데 그분이 대뜸 우리에게 묻는다.

“수고비는 얼마를 드려야 하나요?”

그동안 말도 못하고 있었던 부담 백배의 이야기. 물건검색부터 임장, 입찰, 융자알선, 명도 등등 들어가야 할 비용이 적지 않아서 그냥 무료로 해주기는 어려웠고 일반 경매회사에서 받는 것처럼 하자니 양심이 허락지 않아 기환이를 쳐다보며 나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50만 원만 받고 해줄 수 없겠니?”

참 힘든 말이었다. ‘명지경매’ 회사에 들어와 나를 따라다니며 경매를 배우던 제자가 처음으로 맡은 컨설팅인데, 교통비밖에 안 되는 50만 원만 수고비로 받으라고 하고 있으니…. 그런데도 기환이는 두말없이 “네!”라고 시원스럽게 대답을 하였다. 그래서 결국 기환이에게 모든 일을 맡기게 되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 입찰 하루 전에 기환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사님, 그 여자 분이 전화가 안 돼요. 내일이 입찰일인데 어떻게 하죠?”

이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아하~ 이분의 생각과 내 생각이 달랐구나!”

그저 무료로 도와줄 줄 알았던 사람이 50만 원의 사례비를 요구한 것에 마음이 상했던 것이거나, 아니면 경매를 아예 모르는 생초보가 앞으로 겪어야 될 경매진행상의 어려움에 주눅이 들었거나, 그도 아니면 잔금을 구하는 일에 부담을 느꼈거나 아마 셋 중에 하나이리라.

순간 내 마음도 착잡하고 무거워졌다. 그다음 날이 입찰일이었기에 기환이는 만약 그 여자 분이 입찰일에도 나타나지 않으면 자기라도 들어가면 안 되겠냐고 조심스레 묻는다. 나는 순순히 그렇게 하라고 했다. 다음 날에도 그 여자 분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기환이는 해당 물건을 5,880만 원에 자신의 이름으로 낙찰을 받았다. 한 달 정도 지난 뒤 기환이는 융자를 받아 잔금을 치렀고 명도를 마친 후에는 6,000만 원에 전세를 놓았다.

그렇게 몇 달인가 지났을까?

강서구청장이 화곡동을 뉴타운으로 개발하겠다고 공약한 이후로 그 지역이 하루가 다르게 가격이 치솟는 것이다. 나는 ‘설마?’ 했다. 강서구 화곡동이 뉴타운으로 개발되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보다 어렵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동안의 내 생각이 보기 좋게 빗나간 것이다. 낙찰 받은 지 1년도 안 되어 5,880만 원에 낙찰 받은 그 경매물건은 1억 4천에 시세가 형성되더니 2년이 지나자 1억 8천을 호가하였다.

현재 그 물건은 매매가 이뤄졌다. 결과적으로 엄청난 수익을 남겨준 5년 전의 그 일은 수고비 50만 원을 받는 것 때문이 아니라 어려운 사정을 듣고 그분을 진심으로 도우려 했던 기환이에게 하늘이 내려주신 선물이 아닐까? 기환이가 그렇게도 절실히 믿는 하나님이 100배의 축복을 주신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닉네임 야생화로 더 알려진 배중열 대표는 공주사범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한 후 연세영어학원 강사로 활동하다가 부동산 경매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 후 명지투자연구소 이사, 부경아카데미 부원장, 한국법학권 경매담당 강사, 수원디지털대학, 한성대학 사회교육원 강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주요 저서로는 ‘백배의 축복’, ‘경매천재가된 홍대리’ 등 부동산 재테크분야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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