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 지난 2011년 9월 미국의 배심원들은 코오롱에 9억 1990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평결을 내렸다. 우리돈 1조원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다.

이 평결은 미국이 낳은 ‘보호무역주의’로 인해 폐해로 지적되고 있다. 또 우리 기업이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절대절명의 사태를 어떻게 준비하고 해결하느냐를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4일자 대법원의 사법정책연구원에서 내놓은 ‘미국 특허쟁송실무에 관한 연구’라는 실무서(이하, 대법원 실무서)가 발간되면서 새삼 주목되고 있다.

▲ 6년간의 길고 지루한 다툼이 코오롱 측의 이메일 삭제라는 실수로 인해 1조원이라는 미 법원의 판결을 받게 된 사건이 지난 2011년에 있었다.<그래픽_진우현 기자>

◆ 2011년에 있은 코오롱 ‘1조원’ 배상 평결 그것의 시작은 ‘이메일 삭제’

코오롱은 듀폰과의 특허소송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로 인해 코오롱이 완패한 것으로 자체 평가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는 대법원의 실무서 상에는 코오롱이 증거보전조치의무를 다하지 않았고 그로인해 1심에서 패소하게 됐다.

대법원의 실무서 61쪽 ‘제2절 연방지방법원의 특허침해소’에 따르면 미국은 당사자가 선의의 노력을 다하여 증거보전조치를 시행하지 않을시 법원 이 엄격한 제재(sanction)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징벌금 부과, 변호사 비용을 포함한 소송비용 전액 부담, 해당 당사자에게 유리한 증거의 불채택, 해당 당사자에게 불리한 추정(adverse inference) 등을 내린다는 것이다.

실무서는 또 심한 경우에는 더 이상의 본안심리를 거치지 않고 원고의 특허권 침해에 관한 청구를 그대로 인용하여 원고 승소의 선고를 하는 결석판결(default judgment)을 내릴 수도 있다고 했다.

실무서는 여기서 증거보전조치와 관련된 예로 ‘코오롱과 듀폰’과의 소송을 언급했다. 코오롱이 증거보전조치 의무에도 불구하고 관련된 이메일을 증거로 남기지 않고 삭제했기 때문에 버지니아 동부 연방지방법원은 코오롱에 9억 1,990만 달러, 우리돈 약 1조 원의 배상 평결을 받았다는 것이다.

버지니아 동부 연방지방법원이 본안 소송에 들어가지 않은 상태에서 코오롱 측의 이메일 삭제 등 증거보전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아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또 미 동부 연방지방법원은 코오롱이 지난 1979년부터 독자 개발한 첨단섬유 아라미드(Aramid) 기술에 대해 듀폰 측이 주장하는 영업비밀들의 유효기간이 만료됐거나 이미 공개된 특허라는 코오롱 측의 주장에 대해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업 간의 글로벌 경쟁에서 특허 등 국제 소송시 전자증거 보존의무에 유의해야 한다. 특히 지난 삼성과 애플의 특허 소송이 계기가 돼 이디스커버리(e-Discovery)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디스커버리는 전자증거개시제도를 의미하는 말인데 최근에는 PC에서 작성 및 저장하는 전자문서가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날로 부각되고 있다.

위에서도 언급 했듯 대법원의 실무서상에서 미국은 증거보전조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특허침해소송이 발생하거나 발생이 될 것으로 예상되면 증거에 쓰일 자료를 훼손하거나 변경, 파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코오롱 측의 이메일 삭제 등과 같이 이런 의무를 지키지 않을 경우 미국의 법원은 징벌금을 부과하거나 당사자가 유리한 증거를 제시하더라도 채택하지 않거나 또는 불리한 추정 등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또 심한 경우 더 이상의 본안심리를 거치지 않고 원고의 특허권 침해에 관한 청구를 그대로 인용해 원고 승소의 선고를 하는 결석판결(default judgment)을 내릴 수도 있다고 대법원 실무서는 적시하고 있다.

◆ 새로운 국면, 버지니아 연방항소법원 “코오롱 측 유리한 증거 배제 됐다”

하지만 이 소송은 처음에는 듀폰 측의 손을 들어줬지만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다. 코오롱과 미국 화학업체 듀폰이 첨단 합성섬유 ‘아라미드’ 특허를 놓고 벌인 6년여 간의 법정 다툼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 것이다.

당시 미국 버지니아주 제4순회 연방항소법원은 지난 20104년 4월 3일 재판에서 “코오롱에 유리한 증거가 배제됐다”며 “코오롱인더스트리가 듀폰에 9억1990만달러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1심 판결을 파기 환송하고 재심을 명령해 소송 자체가 원점으로 돌아가게 됐다.

하지만 재심 재판은 열리지 않게 됐다. 코오롱 측과 듀폰 측 양사가 합의를 도출해 내 원활한 아라미드와 관련한 코오롱의 글로벌 시장진출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지난 2015년 1월 코오롱은 첨단 섬유소재 아라미드를 둘러싼 미국 듀폰과의 6년간 벌여온 민·형사소송을 모두 끝냈다.

▲ 1조원이라는 코오롱과 듀폰의 다툼은 항소법원에서 원점으로 돌아갔고 코오롱과 듀폰은 최종 합의하는 단계에 이르게 됐다.<그래픽_진우현 기자>

당시 코오롱은 미국 버지니아주 동부지법에서 진행해온 영업비밀 관련 민사 소송과 미국 검찰 및 법무부 형사과가 제기한 형사 소송을 전부 끝내기로 합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코오롱은 이번 합의에 따라 듀폰에 2억 7천500만 달러 우리 돈 약, 2천860억 원의 합의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코오롱은 자사의 아라미드 소재 제품인 헤라크론의 개발과 관련해 지난 2009년부터 6년 동안 듀폰과 벌려온 법적 다툼을 마무리 짓고 아라미드 섬유를 생산해 세계 시장에 판매할 수 있게 됐다.

또 코오롱은 또 형사 소송과 관련해 미국 검찰이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모의 혐의 한 가지에 대해서만 벌금 8천500만 달러 우리돈 약 910억 원를 내고 절도 및 사법방해 혐의 등은 검찰이 취하하는 유죄인정합의(Plea Agreement)를 통해 형사 소송을 종결하기로 했다.

이로 인해 업계에서는 코오롱이 고부가가치의 첨단섬유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 전력투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고 호평하기도 했으며, 코오롱이 형사소송을 해결함으로써 고부가 첨단 섬유소재를 자유롭게 생산·판매할 수 있는 비즈니스 기회를 얻게 된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 코오롱과 듀폰 ‘6년여 간의 소송’ 듀폰 해고 직원 코오롱이 채용하면서 발생

코오롱과 듀폰과의 소송은 듀폰이 지난 2009년 방탄·방한복 등에 사용되는 고강도 섬유 아라미드 제조기술을 코오롱 측이 빼돌려 자사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소송이 시작됐다.

지난 2007년 코오롱이 듀폰에서 24년간 근무한 마케팅 담당 직원을 컨설턴트로 고용하면서 6년여 간의 지루한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해고한 직원이 코오롱 측으로 입사하면서 자사의 아라미드 섬유 케블라에 대한 영업비밀을 불법 취득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벌어진 재판에서 1심 재판부는 지난 2011년 판결에서 코오롱 측의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하면서 듀폰에 9억 1천990만 달러, 우리돈 약 1조원을 배상하고 관련된 제품의 생산과 판매를 금지한다고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해 4월 1심 판단을 뒤집는 판결을 내렸다. 1심에서 코오롱 측의 주장과 증거가 제대로 검토되지 않은 채 판결이 내려져 재심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판결이라는 게 이유였다.

◆ 아라미드 섬유 ‘총알도 뚫지 못하는 꿈의 소재’로 알려져

코오롱의 위태롭게 한 아라미드 섬유는 총알도 뚫지 못하는 꿈의 소재로 알려져 있다. 업계 관계자에 의하면 아라미드 섬유소재는 1㎟ 조각이 350㎏의 무게를 견디는 등 강도가 나일론보다 3배 더 강하다고 했다. 또 같은 크기의 강철보다 5배가량 단단해 전투 헬멧과 방탄복, 타이어 소재 등에 널리 쓰인다고도 했다. 듀폰은 1973년 아라미드 섬유를 세계 최초로 개발, ‘케블라’라는 브랜드로 상용화했으며, 코오롱은 2005년부터 아라미드 섬유를 개발해 ‘헤라크론’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내놓은 바 있다. 이런 아라미드와 관련한 시장 규모는 연간 2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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