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_뉴스워커 황성환 그래픽1팀 기자
그래픽_뉴스워커 황성환 그래픽1팀 기자

위계간음의 인정


미성년자에게 돈을 빌려주고 성관계를 요구한 육군 소령 A씨에 대해 고등군사법원 2심에서는 위계에 의한 간음죄가 아니라 강요미수죄를 유죄로 인정, 징역 1년 3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간음에 대한 막연한 생각은 있었으나 실제 간음을 위해 시간과 장소를 정하는 등 구체적 계획이나 의도를 드러낸 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결은 달랐다. 시간과 장소를 정하지 않은 것이 범행 계획의 구체성을 판단할 요소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또한 “A씨의 행위는 채무 변제 여력이 없는 피해자에게 성교 행위를 강요하는 것과 같아 성교 행위를 결심하게 할 중요한 동기로 작용”했다고 판단했다. 상고심에서는 원심의 일부 혐의 무죄 판단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지난 15일 밝혔다. 한편 조건 만남 성매매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를 선고했던 원심 판단이 유지되었다.

[대법원 2020.8.27. 선고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위계에 의한 간음에 대한 처벌규정은 1953년 제정형법에서 시작되었다. 제정형법은 이를 제2편 제32장 정조에 관한 죄의 일부로서 규정하였는데, 당시의 법정형은 강간죄는 물론 강제추행죄의 법정형보다도 가벼웠고, 그중 혼인빙자 등에 의한 간음죄는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도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이렇듯 제정형법 당시 위계에 의한 간음죄는 부녀의 정조 보호를 입법목적으로 하면서 강간죄/강제추행죄보다 가벌성이 낮은 보충적 유형의 범죄로 인식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략)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위계에 의한 간음죄의 법정형은 무기징역까지로 상향개정되었다. 이는 형법상 강간죄보다 더 중한 형을 규정한 것이다.


위계에 의한 간음죄에서 위계의 의미


간음의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키고 피해자의 그러한 심적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의 목적을 달성하였다면 위계와 간음행위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고, 따라서 위계에 의한 간음죄가 성립한다.

행위자의 위계적 언동이 존재하였다는 사정만으로 위계에 의한 간음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므로 위계적 언동의 내용 중에 피해자가 성행위를 결심하게 된 중요한 동기를 이룰 만한 사정이 포함되어 있어 피해자의 자발적인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가 없었다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인과관계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피해자의 연령 및 행위자와의 관계,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 범행 당시와 전후의 상황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위계에 의한 간음죄가 보호대상으로 삼는 아동/청소년, 미성년자, 심신미약자, 피보호자/피감독자, 장애인 등의 성적 자기결정 능력은 그 나이, 성장과정, 환경, 지능 내지 정신기능 장애의 정도 등에 따라 개인별로 차이가 있으므로 간음행위와 인과관계가 있는 위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구체적인 범행 상황에 놓인 피해자의 입장과 관점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하고, 일반적/평균적 판단능력을 갖춘 성인 또는 충분한 보호와 교육을 받은 또래의 시각에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하여서는 안 된다.


위계와 약자


앞에 적었듯, 위계에 의한 간음죄는 처음보다 그 가벌성이 높아지며, 형법상으로는 강간죄보다도 더 중한 형이 규정되었다. 이는 위계에 당할 수밖에 없는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지난 8월 27일의 판결에서는 이를 반영했다.

기존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미성년자간음죄 상 ‘위계’는 성관계 자체에 대한 오인, 착각, 부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미성년이 간음행위 그 자체에 속았을 때만 성립했다. 그러나 대법원에서는 1, 2심 모두 무죄가 인정된 판결을 뒤집었다. 이는 곧 위계에 의한 간음죄에서 오인, 착각, 부지의 대상을 ‘간음행위와 인과관계가 있는 대상으로 확장’한다는 의미다. 곧, 기존의 판례에서 벗어나 더 넓은 의미에서 위계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을 보호할 수 있음을 보인 판례가 되었다.

위계에 의한 간음죄를 인정한 이번 판결도 그 의미에 힘을 실어줬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아직 미숙할지라도, 법은 더 많은 이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법을 만들고, 지켜나갈 모두도 나아가고 있다는, 희망적인 상상을 한다.

부당한 힘 앞에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이들. 그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고.

저작권자 © 뉴스워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