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지난 9월 독일 하원 유럽위원회에 출석해 의원들을 상대로 ECB의 초저금리와 양적완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방어하며 독일의 불만에 맞섰다. 독일 의원들은 드라기 총재에 ECB의 초저금리 탓에 연금생활자 등의 이자소득이 줄었다는 불만을 표시했다 (사진=EPA)

[뉴스워커] 유럽중앙은행(ECB)의 마리오 드라기 총재가 다시 한 번 연말까지 양적 완화책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에 대한 우려는 좀처럼 사그라들고 있지 않다.

ECB가 올해 3월이던 양적완화 시한을 12월로까지 9개월 늘리되 4월부터 월간 양적완화 규모를 800억 유로에서 600억 유로로 낮춘다고 발표하자 양적완화를 선호하는 '비둘기'파들은 양적완화 축소를 뜻하는 테이퍼링이 시작됐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2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들은 독일의 빠른 물가 회복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물가지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독일 내에서 ECB의 마이너스 금리정책에 대한 반대 의견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했다.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의 옌스 바이트만 총재는 지난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물가상승기에 ECB가 통화완화 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위험하다"고 밝혔다.

독일의 소비자물가가 3년 반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독일연방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1월 독일의 소비자물가(HICP) 예비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9% 올랐다. 지난 2013년 7월 이후 가장 높은 물가 상승률을 기록했다.

물가상승률은 유럽중앙은행(ECB)의 목표치에 바짝 근접했다. 이에 따라 ECB의 통화 완화책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독일 내에서 커질 것으로 보인다. ECB는 2.0%보다 약간 낮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통화정책의 목표로 삼고 있다.

▲ ECB 양적완화 잔여 목표 (출처: 피델리티, 유럽중앙은행, 블룸버그)

◆ 인플레이션 딜레마 속 독일과 ECB 갈등 심화

유럽중앙은행(ECB)과 유로존 최대경제국인 독일이 유로존 통화정책을 놓고 갈등을 벌이고 있다. 

드라기 총재는 제로금리에 이어 마이너스금리를 채택, 유럽 내 시중은행이 ECB에 돈을 맡길 경우 이자를 주는 대신 수수료를 물리고 있다. 또 유로존 회원국이 발행한 국채를 2조유로(2627조원)어치 사들이며 사상 최대 채권자로 올라섰다. 

▲ EU 양적완화 정책

반면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ECB 통화정책이 자국 은행과 보험업계를 고사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보험사들은 국채에 투자한 수익으로 꾸려가지만, ECB의 대규모 채권매입으로 현재 이율이 너무 낮다는 것이다.

드라기 총재는 유로존 내에서 가장 혜택을 많이 보는 독일이 통화정책에 반감을 갖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ECB의 초저금리로 자국 연금생활자들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심지어 ECB의 통화정책이 '독일을 위한 대안(AfD)'과 같은 자국 극우정당 확산에 책임이 있다는 발언까지 했다. 여기에 차기 ECB 총재를 독일인이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 더해지면서 독일과 ECB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드라기 총재는 자신이 이탈리아인이기 때문에 자국에 유리한 통화정책을 편다는 주장에 대해서 "초저금리 정책이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하면서 "당분간 저물가가 길어질 것이며 저금리는 저물가의 결과다. 우리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고 언급했다. 

▲ (자료: 피델리티,유럽중앙은행,데이터스트림)

◆ ECB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로 독일과 해법 찾나? QE 종료 신호 내보내

독일과 유럽중앙은행(ECB) 간 통화완화정책에 관한 갈등은 양적완화(QE) 정책이 막바지 단계에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진단됐다.

2일 로이터에 따르면 유럽중앙은행(ECB)의 에발트 노보트니 정책위원은 ECB는 통화정책 방향을 6월에 새롭게 검토하겠지만, 자산매입프로그램을 축소를 결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세계경제 평가도 같은 달 이루어지겠지만, 매입축소 검토가 아니라 향후 오름세가 예상되는 인플레이션 압력에 대한 평가라고 지적했다.

그의 이러한 발언은 유로존의 물가상승률이 반등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라 ECB가 올해 여름 양적완화(QE) 규모 축소(테이퍼링) 신호를 제시한 것 아니냐는 전망이 뒤따랐다.

독일의 1월 물가상승률은 1.9%를 기록해 ECB의 목표인 2% 바로 아래에 가까워졌다. 노보트니 위원은 "올해가 가기 전에 앞으로 어떤 일이 발생할지를 논의할 것이다"며 "여름에 (테이퍼링) 결정을 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름에는 결정하는 데 더 나은 정보를 얻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 자료=블룸버그

노보트니 위원은 ECB가 "한 국가의 상황에만 반응할 수 없다"며 독일은 저금리가 예금계좌 이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지만 대출을 통해 투자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린제이그룹의 피터 부크바 시장 애널리스트는 25일 독일 중앙은행 출신의 사빈 로텐슐레거 ECB 이사는 매파로 알려져서 그의 발언이 놀랍지는 않지만 올해 ECB의 QE 중단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부크바는 이 때문에 10년 만기 독일 국채수익률은 3bp 오른 연 0.44%로 2016년 1월 이후 가장 높아졌다며 프랑스 10년물 국채수익률도 1년내 최고치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럽국채시장은 마치 열차사고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라며 현재 물가가 오르고 QE 규모 축소가 오는 4월에 시작되는 상황에서 시중금리가 매우 낮게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로텐슐레거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가진 한 행사에서 "우리가 곧 통화완화정책에서 탈출의 문제로 전환할 수 있다는 점에 낙관한다"며 ECB는 "더 좋은 시기를 준비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ECB의 이사가 소위 QE 프로그램에 대해서 이같이 언급한 것은 처음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 '유로존 인플레이션 추이'-기대 이상으로 치솟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물가상승률이 유럽중앙은행(ECB)의 고민으로 떠올랐다. 정책 목표로 잡았던 2% 수준에 근접하면서 수 년간 유지했던 제로수준 금리정책을 탈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면서다. (자료=Eurostat, LSR estimates)

◆ 금융투자업계, 유럽중앙은행(ECB) 올 여름 '테이퍼링' 카드 전망 잇따라...유로존 물가상승률 목표치 2%에 근접

유럽중앙은행(ECB)은 유로존 물가상승률이 목표치 2%에 근접하면서 올 여름 테이퍼링(양적완화, QE)를 축소하는 '테이퍼링' 논의를 시작할 것이란 전망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BNP파리바의 루이기 스페란자 이코노미스트는 유로존의 거시경제 지표가 앞으로 계속 호조를 보일 것이라며 ECB는 3월쯤 위험이 더 균형 잡혔다고 결론 내고, 6월에 테이퍼링을 논의할 가능성을 열어둘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 26일에는 프랑수아 빌루아 드 갈로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는 유럽중앙은행(ECB)이 양적완화(QE) 축소(테이퍼링)에 대해 논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투웨니포자산운용의 마크 홀만 대표는 현재 진행 중인 ECB의 자산 매입 프로그램이 유럽 국채시장을 지지하고 있지만, 시장은 올해 여러 정치적인 사안들을 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 출처=유럽중앙은행

반면에 JP모건은 유럽중앙은행(ECB)이 2018년 초에 양적완화(QE) 규모를 축소하기 시작한다고 진단했다. 2018년 중반에는 완전히 마칠 것으로 30일 내다봤다.

올해 유로존 인플레이션이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유로 약세와 미국 등 다른 지역의 인플레이션 영향이 도달하면서 유로존 근원 물가 상승세에도 힘이 실릴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문제는 통화정책 변경을 자극할 만큼의 변화 여부이다. ECB 테이퍼링이 유로화 약세 요인을 제거함과 동시에 강세요인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목소리다.

올해 말까지 ECB 자산매입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FRB 보다 많은 자산을 보유하게 되는 셈이어서 이 경우 하반기에는 테이퍼링이 현실화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2015년 3월부터 매달 600억 유로의 채권을 사들이는 양적완화를 실시했고 2016년 3월을 기점으로 매입규모를 월 800억 유로로 늘렸다. 예치금리도 2014년 6월 최초로 마이너스로 내린 이래 현재 -0.40%를 유지하고 있다. 기준금리도 제로 수준이다.

반면에,일각에서는 ECB의 기존 통화정책은 장기 물가안정화에 효과적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세계화, 고령화, 기술발전 등 사회가 고도화되면서 저축과 지출 성향이 변화하고 이는 낮은 물가상승률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기존 통화정책은 현재 직면한 경제문제들을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견해가 제기되는 이유다.

ECB 조사에 따르면, 낮은 물가상승률은 새로운 경제 여건보다는 ECB의 예측오차나 비전통적 통화정책의 불확실성 증대 등에 기인하고 물가상승은 대내외 경기순환 요인에 영향을 받으며, 필립스 곡선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실질금리가 최저수준에 도달하면 비전통적 통화정책의 효과가 지연되는 경향이 있어 단기적으로 물가목표 달성은 어렵지만, 장기 인플레이션 안정화에는 여전히 효과적이라고 평가했다.

▲ 유럽중앙은행 등 주요 중앙은행의 양적 완화가 환율 경로를 통해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를 낮추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왔다. 남민호 통화정책국 정책연구부 과장 등은 "주요국 중앙은행의 비전통적 정책이 원화 강세에 의한 국내 인플레이션 하락(환율 경로)으로 이어졌다"며 "원자재 가격과 국제유가 하락, 국내 경기 부진이 주요국의 비전통적 정책이 맞물리면서 인플레이션 하락이 어느 정도 증폭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자료=한국은행)

◆ "양적완화 시대 종료 대비…韓 변곡점을 준비해야"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어진 초 완화적 금융환경이 2017년 변곡점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며 이에 대비하라는 조언이 나왔다. 

로레사 어드바이저리의 니콜라스 스피로 파트너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기고한 글에서 올해는 "모든 변곡점의 최고봉(mother)이 될 것"이라며 양적완화(QE) 이후 시대에 대비하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유럽 중앙은행의 비전통적 통화정책, 이른바 양적완화(QE)가 국내 소비자물가 수준을 떨어뜨린다는 분석이 나왔다. 반대로 유럽 중앙은행이 양적완화를 종료하면 국내 소비자물가 수준은 높아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은행 통화정책국의 남민호 정재욱 과장, 강규휘 조사역이 발표한 ‘주요국 중앙은행의 비전통적 통화정책이 국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보고서는 주요국 중앙은행의 비전통적 통화정책이 만들어낸 풍부한 글로벌 유동성이 국내로 들어오면서 원화 강세를 유발해 원화 기준 수입물가를 하락시키는 경로(환율 경로)로 국내 물가상승률 하락에 기여했다고 분석했다. 

▲ 사진=미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 변동률(출처=한국은행)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이 직접 나서 경기부양 기대감을 심어주고 있다. 중앙은행이 단기금리를 낮출 수 있을 때까지 낮춰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자, 직접 다양한 자산들을 사들여 장기금리까지 낮추는 것이다. 

주요국 중앙은행의 증권보유액 합계 증가율이 한 단위 표준편차(32.0%)만큼 높아지면, 미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해당 월에 전년동월대비 1%포인트 가량 떨어지고 이후 2개월 동안 하락세 지속된다는 것이다. 

양적완화의 포인트는 자국 통화가치의 하락이다. 중앙은행이 자산을 매입하는 만큼 시중에 돈이 풀리면, 통화가치는 하락하고 물가는 상승할 여지가 커진다. 수출과 내수 모두 살아날 수 있다는 기대다. 

하지만 이는 이웃나라를 희생시키는 ‘근린궁핍화 정책(beggar-thy-neighbor policy)’ 비판도 동시에 받고 있다. 자국 통화가치가 하락하면, 상대국 통화가치는 반드시 상승하기 때문이다. 

한은 연구에 따르면 주요국, 특히 미국의 양적완화로 풍부해진 유동성이 국내로 유입되면서 원화 강세를 유발하고 물가를 하락시킨 것으로 추정됐다. 

선진국 중앙은행의 증권보유액 합계 증가율이 32%(한단위 표준편차) 높아질 경우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월 0.2%포인트 가까이 낮아졌다. 이후에도 일정기간 소폭 하락세가 지속된다고 분석했다. 

한국은행 남민호 통화정책국 과장은 "유럽중앙은행(ECB)의 경우 환율 변동률은 하락시켰지만 물가는 불확실한 영향을 줬다”고 했다.

아울러 주요국 장기금리 평균 수준이 0.5%포인트 하락하면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개월 후 0.2%포인트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간 국내 저물가 지속의 요인은 국제유가 하락, 국내경기 부진 등이 주로 꼽혔다. 그런데 이번 연구로 저물가에 선진국 중앙은행의 정책도 작게나마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가능해진 것이다. 

한국은행 남민호 통화정책국 과장은 “소규모 개방경제 입장에서 대외적 요인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할 경우 낮은 인플레이션만으로 심리가 위축될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남 과장은 “거시경제 정책의 파급효과가 제약될 수 있다”며 "대외적 요인의 영향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이를 바탕으로 통화정책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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