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 나바로 무역위원회 위원장은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저평가된 유로화를 앞세워 독일이 교역상대국을 착취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월드리포트)

[뉴스워커] 1971년 유럽 재무장관인 존 코낼리는 미국의 통화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수출해 유럽에 문제를 야기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 재무장관은 달러화는 우리의 통화이며, 인플레이션은 당신들의 문제라고 지적한 사건이 있었다.

2017년 美 나바로 국가무역위원회 위원장은 저평가된 유로화를 통해서 독일이 디플레이션을 수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독일 메르켈 총리는 ECB가 유로존의 물가안정을 위해 독립적으로 통화정책을 수행하고 있어, 독일은 유로화를 조작할 수 없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FT에 따르면 나바로는 독일이 독립적인 통화를 사용할 때보다 낮은 가치의 유로화를 사용하면서, 이득을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주장으로 독일의 무역수지 흑자는 정책적 효과가 아닌 유로화 도입 이후 발생한 제도적 변화 등 다양한 요인의 결과라고 비판했다.

또한 독일에 대해서 미국은 재정지출 확대를 요구하고 있으나, 독일은 이미 대규모 이민자 유입에 따른 지원으로 재정지출을 확대하고 있으며, 추가적인 인프라 투자가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미국으로 부터의 수입 증대 효과는 경미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FT는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 축소를 위해서는 트럼프의 부채를 통해 조달된 세금감면과 인프라 지출에 대한 기대를 완화시켜, 달러화 강세를 약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글로벌 경제정책에서 재정정책으로의 전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KDB산업은행경제연구소

◆ 빌 그로스 "연준 시장 영향력 약화…재정 정책이 지배"

올해 글로벌 경제가 통화정책에서 재정정책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마이너스 금리 등 완화적 통화정책으로선 정책효과의 한계에 직면했다는 진단에 따른 것이다. 

'채권왕' 빌 그로스는 트럼프 정권 출범으로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시장에 끼치는 영향력이 줄어들고 재정 정책이 주목받고 있다고 판단했다. 

빌 그로스는 1일 CNBC방송 '파워런치' 프로그램에 출연해 미국에서 재정 정책이 지배적인 트렌드가 되고 있으며, 글로벌 채권 시장에서는 완화 정책을 지속하고 있는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BOJ)이 통화 긴축에 돌입한 연준을 대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 중앙은행(ECB와 BOJ)이 채권 매입을 중단하는 순간 채권 약세장이 시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확장적 재정정책을 예고하면서 미국과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의 경제정책은 재정정책 중심으로 운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 한국은행 워싱턴사무소가 지난 9월 발간한 '경기국면 및 재정상황별 재정승수 크게에 관한 최근 논의' 보고서를 보면 비선형모델을 이용해 재정지출의 승수효과를 경기 확장기와 침체기로 나눠 추정한 결과 확장시는 1 미만이었지만 침체기에는 3 이상으로 확대됐다 (자료=한국은행)

◆ 결국 미국, 일본 등 주요국의 경제정책은 재정정책으로 추를 옮겨가게 될 것
   한은 금통위원 "현 여건상 재정정책 유효…단기적 정책여력 있다" 

한국은행에서도 재정정책의 확장적 운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어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등 적극적 대응에 대한 목소리는 커지는 모양새다.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KDB산업은행경제연구소는 글로벌 경제정책의 중심이 통화정책에서 재정정책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은 기준금리 인하와 양적완화 등 완화적 통화정책을 시행했다. 이에 정책효과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재정정책으로의 전환 필요성이 증대됐다는 평가다.

손명혜 산업은행 경제연구소 미래전략개발부 연구원은 "G20 회원국들은 지난해 7월 회의에서 적극적인 재정정책으로 글로벌 수요를 진작시켜야 한다는데 동의했다"며 "유로존도 은행권 NPL 비중이 5.4%로 전세계(3.9%) 대비 높은 데다 2014년 6월부터 중앙은행 예치금에 있어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는 등 수익성 악화 우려가 가중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또한 GDP 대비 BOJ의 자산 비중이 90%에 육박해 추가 양적완화 여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상태다. 

결국 미국, 일본 등 주요국의 경제정책은 재정정책으로 추를 옮겨가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집권 후 감세, 1조 달러 인프라투자 등 재정정책 확대를 예고했다. 이에 반해 연방준비제도(Fed)는 기준금리를 2~3회 인상하는 등 통화긴축 기조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경우 올해 민관협력투자개발형(PPP) 사업과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중심으로 인프라투자를 확대하는 동시에 감세정책을 강화하는 등 재정정책 위주의 경기부양을 내세우고 있다.

이밖에 일본은 지난해 8월 인프라투자 등에 투입할 28조엔 규모의 재정과 투·융자 프로그램을 발표한 바 있다. 

▲ 한국은행 이주열 총재

금융통화위원들도 역시 경기회복을 위한 정부 재정정책의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

최근 공개된 작년 12월 금융통화위원회(12월 15일 개최) 의사록을 보면 한 금통위원은 "저성장 기조 하에서 경제 심리 위축 등으로 내수가 부진해질 것으로 우려될 때에는 재정정책의 확장적 운용이 무엇보다 긴요하고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금통위원 역시 "가계부채 증가 등으로 민간부문의 건전성이 악화되고 있지만, 정부부문은 매우 양호한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면서 "이런 구조가 국가 경제 전체적으론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 만큼 재정정책의 역할이 더욱 강조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강구 예산정책처 경제분석관은 '2017년 경기 위축에 대응한 재정운용방향 검토'보고서를 통해 "올해 재정 여건은 지출 증가 억제, 경제 분야 예산 감소 등으로 인해 경기 대응 역량이 줄었다"며 "하반기 이후에도 경기 부진이 이어진다면 추경 편성의 필요성과 부정적 효과를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손명혜 산업은행 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재정정책으로의 전환 기조에 대해 "완화적 통화정책의 한계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은행권 수익성 악화 등의 부작용으로 인해 재정정책의 필요성이 대두된 결과"라며 "재정정책을 통한 경기부양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 주요국 재정정책의 소득재분배 효과 / 자료=IMF, 한국금융연구원

◆ 재정 확대 정책 경제 부양 효과 의문 제기 - 브레이너드 연준 이사

반면에 재정 확대 정책에 따른 경제 부양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주장도 나왔다.

라엘 브레이너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는 17일 브루킹스 연구소 연설 자료에서 "경제가 완전 고용과 2% 물가 상승률에 거의 다다랐을 때 단행되는 재정 정책은 상대적으로 경제 활동을 지속해서 부양하기 어려울 것이며 상대적으로 기준금리 인상을 동반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말했다.

그는 총 수요만을 부양하는 정책에는 상당한 비용이 소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브레이너드 이사는 "이러한 정책은 장기적인 경제 성장 잠재력에 영향을 주지 않고 지속적인 재정 적자를 일으키기 때문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을 상당히 높일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전에 선거 이후에 나온 세금 삭감 정책은 연방 정부의 부채를 늘어나게 했고 미래에 나타나는 부정적인 충격에서 경제를 안정시키는 재정 정책 여력을 줄어들게 했다고 진단했다. 

브레이너드 이사는 "물가 압력이 완화적이고, (연준의) 목표들을 달성하지 못하고, 중립금리가 낮고, 해외 하방 위험이 남아있는 한 점진적인 접근이 적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브레이너드 이사의 이런 발언은 다른 연준 위원들이 단기적인 경제 성장을 부양하기 위해 세금 삭감과 재정 확대 프로그램이 필요한 것 같지 않다고 진단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는 통화정책 또한 재정 정책 불확실성에 따른 영향을 받을 것이고 연준의 통화정책 경로는 점진적일 것이라며 어떤 (재정) 정책 변화에도 경제 효과에 대한 불확실성은 남아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브레이너드 이사는 경제가 완전 고용을 향한 좋은 진전을 보인다며 국내 경제가 이전보다 균형 잡혀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완전 고용에 대한 접근은 적절한 정책으로 달성되고 유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브레이너드 이사는 소비심리가 개선된 것은 낙관적 미래에 대한 반응이라고 평가하며 달러 부채가 많은 일부 신흥시장의 취약성에 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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