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보장 안되고 단기 계약 많아…정부, 경비원에 법에 정한 일만 하도록 법 제정

그래픽_황성환 뉴스워커 그래픽1팀 팀장
그래픽_황성환 뉴스워커 그래픽1팀 팀장

[뉴스워커_국민의 시선] 국민이 가장 선호하는 주거형태인 아파트. 하지만 올 한해는 다른 해 보다 유난히 아파트 경비노동자(경비원)들의 인권과 관련한 뉴스가 많았다. 끊이지 않는 경비원 갑질 문제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월급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인 경비원에 대한 갑질이 계속되는 건 분명 사회적 문제다.

최근 서울 노원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경비원에게 허드렛일을 시키고 관리사무소 직원들에게 폭력까지 행사한 동대표가 구속된데 이어 아파트에서도 쫓겨나게 됐다.

지난 23일 경찰에 따르면 해당 아파트 동대표는 경비원을 상대로 각종 갑질 뿐 아니라 1000만원이 넘는 관리비를 빼돌린 혐의까지 받고 있다. 동대표는 결국 철장 신세가 됐다. 아파트를 관리하는 SH 공사는 동대표에게 6개월 안에 아파트에서 나가라고 명령했다. 동대표의 부당행위는 경비원에게 자신과 자녀의 이삿짐을 옮기도록 강요하고 자녀의 결혼식에 축의금을 내게 하는 등 개인적인 일에 경비원을 강압적으로 동원했고, 관리사무소 직원들에게 폭행을 일삼은 것. 경찰은 “경비원에 대한 갑질 정도가 심각해 구속 필요성이 인정됐다”고 전했다. 또 지난 5월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원 고(故) 최희석 씨는 입주민으로부터 지속적인 욕설과 폭력, 협박을 못 견디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 씨를 폭행한 입주민에 대해서는 징역 5년이 선고돼 유가족들과 인권단체의 울분을 샀다.


“갑질은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단기 계약’ 경비원 보호법 발의


이런 사건을 계기로 입주민의 갑질로 부터 아파트 경비원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으며 법제도적 개선 방안 모색이 본격화됐다.

잇따르는 ‘갑질’은 인식의 차이부터 비롯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전문가들은 아파트 입주민은 스스로의 힘과 ‘갑’의 위치를 잘 알고 있는 반면 경비원은 ‘갑질’을 당해도 해고가 두려워 항변조차 하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고용보장이 되지 않고 사실상 입주민의 입김 또한 세다 보니 불평불만을 표현하지 못하고 참는 경우가 많다는 것.

2019년 전국아파트경비노동자공동사업단이 전국 15개 지역 경비원 338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서도 3개월 이하 근로계약을 맺었다고 응답한 비율이 21.7%에 달했다. 6개월 계약은 8.7%에 불과했다.

경비원들이 갑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데는 ‘단기 계약’ 형태가 큰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사건이 반복되자 지자체들은 공동주택 경비원·관리직원의 보호에 대한 조례를 앞다퉈 내놨다. 덕분에 경비원 업무 범위 내용은 정리가 됐다.

지난 9월 24일 아파트 경비원의 주차 관리나 택배 보관 등 업무를 허용하기 위한 ‘공동주택관리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국토교통부는 ‘경비업법’ 제7조 제5항에 대한 특례규정을 신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공동주택 관리업무를 근로계약이 정하는 바에 따라 수행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경비원 등 근로자에 대한 위법한 지시·명령 금지도 명확히 했다. 입주자가 경비원에게 부당하거나 법령을 위반하는 지시나 명령을 하면 지방자치단체장은 사실 조사나 시정명령을 할 수 있다. 시정명령을 위반 시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 받을 수 있다. 경비원의 관리업무 허용은 공포 후 1년이 경과한 날부터, 그 외 개정 사항은 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국토부는 이번 개정으로 경비원의 업무 범위가 현실에 맞게 정비돼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경비원, 고마운 근로자…우리 마음속 카스트제도 지울 때


이런 법 재정 소식은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 인식 저변에 박힌 관념의 틀이 문제를 방치한 건 아닐까. 인도에서는 옅어진 카스트제도가 2020년을 살아가는 우리 마음속에 뿌리내려 있는 건 아닌지 깊이 돌아볼 때다. 언젠가부터 등장한 ‘수저이론’처럼 은근히 마음속으로 사람을 줄 세운적은 없는지 말이다.

한치 앞을 모르는 게 우리 인생이다. 나이가 들어 특별한 기술이 없으면 은퇴 후 재취업이 쉽지 않은 현실. 우리도 언젠가 기성세대가 돼 일자리가 부족해지면 서로 ‘경비원을 하겠다’ 손들지 모른다. 세상은 언제나 돌고 돈다. 영원한 갑도, 영원한 을도 없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말했듯 자신을 알아야한다. 여기서 앎이란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누구보다 위에 있다 아래에 있다는 이유 없는 생각부터 지워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 던져진 고유하지만 평범한 존재들이다. 또 우리도 각자 위치에서 맡은 역할을 해내는 근로자들이다. 경비원들도 아파트 주민들의 안전․보완을 책임지고 주변을 쾌적하게 관리해주는 고마운 근로자들이다. 같은 직업인으로서 도와 줄 수 있는 건 돕고 서로 대화로 충분히 풀어갈 때 우리사회에서 진정한 존중과 배려가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어느 해보다 따스함이 그리워지는 연말이다. 진짜 중요한 일은 뭘까 스스로 자각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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