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장 강요 문제와 한국의 구투(KuToo)

그래픽_진우현 뉴스워커 그래픽2팀 기자
그래픽_진우현 뉴스워커 그래픽2팀 기자

치마 거부하면 면접 탈락?...


미용실 일자리를 알아보던 A씨는 질문을 하나 받았다. “여직원은 치마를 입어야 하는데 가능하겠느냐?”였다. A씨는 곤란하다고 답했다. 그리고 면접에서 탈락했다. 취업한 다른 미용실의 유니폼도 짧은 치마였다. 위에 있는 물건을 내리거나 바닥을 쓸면서 몸을 움직여야 하는데, 그에 제약이 있을 만큼 불편했다고 전한다.

치마 거부가 면접 탈락으로 이어지는 것은 해당 미용실뿐만이 아니었다. 모 항공사 역시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받아 여성 승무원의 바지 유니폼을 도입했지만, 의무로 지급하지는 않았다. 다른 항공사에 비해 재킷 길이가 짧아 직원들이 오히려 바지 유니폼을 선호하지 않으니 신청을 먼저 받고 지급하는 것이 효율적이라 판단했다고 한다.

해당 항공사 관계자는 “바지 유니폼을 신청하면 전화로 압박을 받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바지가 상의와 어울리지 않는 것을 회사 측에서 인지하고 있다면 개선해야 할 것이 아닌가.”라는 말을 전했다. 이 밖에도 백화점 직원 등 유니폼을 착용해야 하는 많은 직군의 여성들이 치마를 강요당하고 있다. 한때 소속의 상징이었던 유니폼이 특정 성별을 향한 족쇄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구투?...


위에 적은 복장 강요 문제는 일찍이 일본에서 ‘구투’로 이어졌다. 구투는 일본어로 ‘구두(구쓰(靴)로 발음한다)’, ‘고통스러움(마찬가지로 구쓰(苦痛)로 발음한다)’에 ‘미투’를 더해 만든 단어다. 시작은 지난해 초 배우 겸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 중인 이시카와 유미가 SNS에 게시한 글 하나였다.

과거 장례식장에서 근무할 때 하이힐 착용이 강요됐다는 경험이 담긴 글은 3만 번 이상 공유됐으며, 직장 내 하이힐을 신도록 규정한 복장 규정 폐지 청원이 시작됐다. 6월 구두 관련 청원에 이어 지난해 12월에는 여성에게만 안경 착용을 금지하는 규정에 대한 청원서도 제출했다.


한국판 구투...


일본 구투 운동의 선두에서 깃발을 들었던 사람이 이시카와 유미였다면, 한국 구투 운동 선발대에는 박지영 변호사가 있다. 박 변호사는 “과도하게 엄격하고 차별적인 복장 규정은 헌법 10조 행복추구권에서 파생되는 일반행동의 자유 또는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인권위원회법 30조 1항 차별행위에 해당해 위법한 규정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이런 복장 규정에 대한 제보를 받아 인권위 진정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위의 사례 중 하나에 해당하는 B씨는 올해 초 어느 백화점의 대리주차 지원 부서에서 일했다. 주차장에서 VIP 고객을 안내하거나 짐을 들어주는 직무 특성상 근무시간 내내 짐을 든 채 걸어야 했지만, B씨 역시 치마 유니폼에 구두를 신어야 했다. B씨의 요청에 바지 유니폼은 간신히 입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끝내 운동화는 신을 수 없었다. 백화점 측은 “백화점 내부 라운지에서 근무하는 여자 사원들도 하루종일 구두를 신고 근무한다.”라는 이유를 들어 B씨의 요청을 거절했다. 라운지 직원까지 편안한 신발을 신게 허용해주는 게 아니라 외부에서 업무를 진행하는 직원까지 구두를 신도록 하는 것이 백화점의 방침이었다. 이에 B씨를 박 변호사가 대리해 국가인권회에 진정을 제기할 예정이다.


대중의 반응...


이와 같은 한국의 구투를 응원하는 이는 적지 않으나,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여론도 존재한다. 위에 적은 A씨의 면접 탈락 사례에 SNS에서는 “그렇지 않은 곳에서 면접 보면 되지 왜 굳이 저곳에서 면접을 보나?”, “싫으면 안 가면 되지”, “직장이 원하는 인재상과 다르니 떨어진 거다, 바지 입어도 되는 곳으로 가면 해결될 문제” 등의 댓글이 적혔다.

정리하자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란 거다. 그러나 의문이 든다. 너무 많은 절이 중을 거부하면 어떻게 되나. 업무상 필요치 않은 것을 필요하다며 강요하고, 거부하면 면접에서 탈락시키는 곳이 너무 많아서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게 되면?


을이라서...


복장을 강요하는 사람은 대부분 ‘갑’이다. 살면서 한 번이라도 ‘을’이었던 적이 있는 사람은, 여성이 아니라도 알 수 있다. 찾아간 갑마다 요구하는 것을 ‘나랑은 안 맞네’라며 고개 돌리는 일은, 을에게 쉽지 않다. 구투 운동은 그래서 일어났다. 약하다고 차별을 거부하지 않으면, 이어진 차별은 약자를 더 약하게 만든다.

그렇게 되기 전에 어떻게든 뭉치고, 소리 내고, 바꿔가려는 것이 구투다. 이렇게 소란스러워야 간신히 권리 하나를 찾을 수 있는 ‘을’이라서. 구투는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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