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것이 알고 싶다>가 전한 16개월 아이의 사망 소식

우리가 몰랐던, 아니 우리가 외면했던 사회 어디에선가는 우리를 애타게 찾는 눈길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말없이 한스럽게 세상을 등진 우리의 아이 정인이의 안타까운 현실은 우리 사회의 악취나는 뒷모습과 닮아 있다. <그래픽_황성환 뉴스워커 그래픽 1팀장>
우리가 몰랐던, 아니 우리가 외면했던 사회 어디에선가는 우리를 애타게 찾는 눈길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말없이 한스럽게 세상을 등진 우리의 아이 정인이의 안타까운 현실은 우리 사회의 악취나는 뒷모습과 닮아 있다. <그래픽_황성환 뉴스워커 그래픽 1팀장>

그것이 알고 싶다...271일의 시간


지난 2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생후 16개월이었던 정인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을 전했다. 방송 제목은 ‘정인이는 왜 죽었나? - 271일간의 가해자 그리고 방관자’였다. 정인은 입양아였다. 생후 7개월 경 양부모에게 입양된 정인이 사망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채 1년도 되지 않는, 271일이었다.

정인과 양부모는 다정한 입양 가족으로 EBS에 출연한 일이 있다. 정인의 양모는 통역사였고, 양부는 방송국에서 일했다. 정인의 외할머니, 즉 양모의 어머니는 어린이집을 운영했다. 양부모는 둘 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알려졌다. 입양 당시 네 살이었던 친자녀는 정인의 언니가 되었다. 남들이 부러워할 화목한 가족으로 보였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3번의 신고 그리고 양천경찰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입수한 어린이집 CCTV 영상에는 정인의 사망 전날이 담겨 있었다. 한동안 결석했던 정인이 갑자기 등원한 날이었다. 영상 속 교사는 정인을 수시로 살폈다. 유독 살뜰히 정인을 살피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 나이대 아이들은 상처가 잘 생기지도 않고, 생겨도 부모가 다 알기 마련인데 정인의 부모는 달랐다. 뺨 쪽에 붉은 자국이며 멍이 생긴 날부터, 교사들은 꾸준히 학대 정황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10개월 이후부터 귀에 집중적으로 상처가 생긴 것을 발견한 교사가 결국 경찰에 신고했다. 지난 5월에서 9월까지 세 차례 이어진 정인의 아동학대 의심 신고 중 첫 번째였다. 그러나 경찰은 증거가 없다며 사건을 내사 종결시켰다. 정인은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신고가 있었으니 결석은 당연한 순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정인은 2개월간 어린이집에 나오지 못했다. 두 달 만에 등원한 정인은 몸무게가 1kg 줄어 있었다. 어린이집 교사는 정인을 병원에 데려갔고, 양부모가 “왜 아이를 병원에 데려갔냐”라고 따지는 것을 감당해야 했다.

두 번째 신고는 정인이 차량에 방치됐다는 내용이었다. 양부모는 외식하러 갈 때도 친자녀와 함께 내리고는 정인을 지하주차장 속 차에 방치하는 식으로 학대하는 일이 빈번했다. 그러나 경찰은 사건 이후 한 달이 흐르고서야 CCTV를 요청했다. 정인을 구할 두 번째 기회였을지도 모르는 영상은, 이미 삭제된 후였다.

세 번째 신고의 주체는 소아과 의사였다. 정인을 진단한 사람이었고, 경찰에게 “부모와 정인은 분리되어야 한다”라고 강하게 피력했다. 양부는 정인을 다른 소아과에 데려갔다. 그곳에서는 구내염 진단만 받았다. 이번 사건도 무혐의로 마무리됐다. 구내염만 적힌 진단서를 발급한 소아과는 양부모의 단골 병원이었다. 학대를 의심해 신고했던 소아과 의사는, 정인이 양부모와 분리는커녕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어야만 했다.


사람들은 그리고 청와대 국민청원


사건을 맡은 서울 양천경찰서로는 총 세 번의 신고가 접수됐다. 그러나 모두 무혐의로 종결됐다. 양천경찰서 홈페이지에는 댓글이 달렸다. “무능한 경찰이 한 소중한 생명을 놔 버렸다.”라는 글에서 세 번의 기회를 날려버린 공권력에 대한 날 선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양부모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보여줬다. 양부모 신상 공개 및 살인 혐의 적용을 주장하는 청원은 지난달 20일 23만 명의 동의를 얻어 마감됐다. 청원인은 세 차례나 경찰이 신고를 가벼이 여겨 아이를 죽게 한 이 사건을 학대치사로 처리하는 것은 공권력이 아이를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와 사단법인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는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를 제안했다. A4 크기의 종이에 ‘정인아 미안해’, 그리고 자신이 적고 싶은 글을 작성해 사진을 찍은 뒤 SNS에 게시하는 방식이다. 해당 방송 직후 개그맨 김원효와 심진화 부부도 이 챌린지에 동참했다.


정인아 미안해. 우리가 바꿀게


방송이 없었다면 그 아이가 얼마나 끔찍하게 죽었는지, 혹은 어떻게 사는지, 심지어는 존재 자체도 몰랐으리라. 그러나 하나 확신하는 것이 있다. 친부모와 떨어진 것도, 새로이 만난 것이 부모라고 부를 수 없는 자들인 것도, 도울 힘을 가진 이가 몇 차례나 무관심했던 것도. 모두 그 아이의 탓은 아니었음을. 아는 이가 많든, 적든. 그 작은 아이는 이렇게 세상을 떠나서는 안 됐다.

처벌에 관련한 청원과 추모 챌린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마음이 이미 세상을 떠난 정인에게 닿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이 또한 혹 그 아이에게 닿을까 적어본다.

끝내 구하지 못했고, 힘없는 어른이어서 미안하다. 차마 돌아오라는 말도 못 하게, 너무 미안하다. 하지만 어느 예쁜 날 문득 돌아오고 싶어지면, 그때는 이곳이 너만큼이나 예쁜 세상일 수 있게, 네게 더는 아프지 않은 곳으로. 우리가 바꿀게.

“정인아 미안해. 우리가 바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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