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서 제작해 운영하는 ‘한국주요기업홍보네트워크’라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앱)이 있다. 약 한 달 전 이와 관련해 전경련에 연락한 결과 해당 담당자는 “앞으로 운영하지 않을 것 같다”며 “신규로 회원을 받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 전경련은 조직쇄신 방향에 대해 주요 학계의 의견을 듣는 자리를 가졌다. 이날 학계에서는 전경련이 쇄신을 하기 위해서는 무척 힘들다는 반응이었으며, 해체가 답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전경련의 ‘정경유착’은 현실에 맞지 않는 어찌 보면 ‘범죄’와도 같은 지적까지 인 바 있다.

▲ 전경련 전체 운영회비의 77%를 담당하고 있는 삼성과 현대차, SK, LG 등이 탈퇴하면서 전경련에는 위기가 찾아왔고, 급기야 130여명에 달하는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이번 희망퇴직은 14년 만의 일로 전경련 설립 이후 최대 규모다.<그래픽_진우현 기자>

이날 권태신 전경련 부회장은 “해체까지도 감안한 쇄신안을 만들어보겠다”는 말을 전한 바 있다.

그로부터 한 달여가 지난 지금 전경련은 14년 만에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말이 희망퇴직이지 반 강제인 셈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도 같다. 전경련이 해체되는 마당에 그곳에 남아있을 수 있는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전경련은 이번 주 안에 120~130여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공고했다. 하지만 전경련 내부에서는 불만의 목소리도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전경련이 이런 사태까지 오게 된 것은 지난해 4/4분기부터 거세게 불었던 최순실 국정농단의 사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미르․K스포츠재단 자금 모금의 개입과 어버이연합 지원 의혹 등 온갖 ‘전경유착’의혹이 짙게 일었다.

이 때문에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은 “전경련을 탈퇴하겠다”고 청문회석에서 밝힌바 있다. 그 후 실제 삼성전자는 전경련을 탈퇴했고 삼성그룹 계열사 15곳도 탈퇴했다. 또한 현대․기아자동차그룹, SK그룹, LG그룹도 탈퇴를 선언했다. 이것이 지난해 12월까지의 일이다. 삼성을 비롯해 4대 그룹은 전경련 연간 총 운영회비인 492억 원 가운데 77%에 달하는 380억 원의 회비를 부담하고 있었지만 이번 탈퇴로 결국 전경련을 지금의 사태까지 오게 한 것으로 보인다.

▲ 허창수 전경련 회장이 24일 전경련회관 오키드룸에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전경련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사진_임우현 기자>

전경련은 지난 2월 17일, 비공개로 이사회를 열었고 올해 예산을 전년보다 약 40% 감축한 235억 원으로 책정했다. 하지만 4대 그룹이 탈퇴한 마당에 대폭으로 줄인 예산 확보도 사실상 어려워 보였다.

전경련 회장은 3번의 연임을 이룬 허창수 GS회장이 맡아왔다. 허창수 회장의 임기는 2월로 끝이 나는 가운데 허 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더 이상 회장 연임은 힘들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어 지난달 24일 허 회장은 대국민 사과를 통해 전경련을 한국기업연합회로 이름을 달리하고 조직과 예산을 40% 감축하는 혁신안을 내놨다. 이 때 나온 뒷얘기들이 “곧 퇴직바람이 불겠구나”였다. 전경련이 해체되면 조직원들 또한 해체수순을 밟아야 하며 이는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올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 허창수 전경련 회장과 임원들이 24일 전경련회관 오키드룸에서 혁신안 발표에 앞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임상혁 전무, 권태신 부회장, 허창수 회장, 배상근 전무<사진_임우현 기자>

이날 허 회장이 밝힌 혁신안에는 기존의 7개 본부를 커뮤니테이션본부, 사업지원실, 국제협력실 등 1본부 2실 체제로 축소하는 것 이었다 또 조직 내 팀 또한 23개에서 6개로 대폭 줄인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서 수반되는 것이 잔류하는 직원에 대한 혜택이 대폭 준다는 것이다. 이는 임금삭감과 복지의 축소로 이어질 예정이다.

이번 전경련 직원들의 희망퇴직은 지난 2003년 이후 처음으로 14년만의 일이다. 하지만 규모로는 이번이 최대가 될 전망이다. 당시 희망퇴직 수는 3,40명에 불과했다.

이번 전경련의 희망퇴직 신청자는 어떤 조건일까가 관심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퇴직자 가이드라인은 만들어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업계에서는 과거의 사례를 들어 5~6개월 치 급여에 근속 연수만큼을 더해주는 방안이 나올 것이라는 관측도 내고 있다.

이렇게 구체적인 퇴직 안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희망퇴직신청을 받는다는 것은 내부 불만을 야기하기 쉽다. 역시나 노사합의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 지난 2010년 7월 전경련 회장단이 승지원 만찬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 앞줄 왼쪽부터 강덕수 STX 회장, 조양호 한진 회장, 이준용 대림산업 회장, 이건희 삼성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박용현 두산 회장,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 사진 뒷줄 왼쪽부터 류진 풍산 회장, 신동빈 롯데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최용권 삼환기업 회장, 현재현 동양 회장, 정준양 포스코 회장, 이웅열 코오롱 회장, 김윤 삼양사 회장, 정병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사진_전경련>

전경련은 지난 12일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를 열고 전경련의 재정상태 악화 등 현재 상황을 설명했으며, 구조조정이 불가피함을 알렸다. 하지만 이는 쌍방의 소통이 아닌 주체자들의 획일적인 의사전달 수준에 그쳐 내부 불만은 더해만 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전경련의 해체로 그동안 크게 논란이 됐던 정경유착의 고리가 끊어질 것인 가에도 관심이 높다.

국내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정부가 의도적으로 특정기업에 혜택을 주면서 일종의 관행처럼 굳어졌던 정경유착이 이번 기회에 사라질 것인가는 온 국민이 지켜봐야 할 관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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