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이 나를 대변할까? 진정한 ‘명품인생’ 고민해 봐야

그래픽_진우현 뉴스워커 그래픽2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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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워커_국민의 시선] 얇은 마스크 한 장에 의지한 채 살아가고 있는 코로나 시대에는 처음 겪는 일이 많았다. 취업난에 고용 성적은 하락하고 문 닫는 가게들이 속출하는 상황. 하지만 경기가 안 좋은데도 프리미엄 제품과 명품에 대한 소비는 상승하고 있다.

코로나19는 장단기적으로 소비 트렌드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보복소비(Revenge spending)’라는 용어가 급부상할 만큼 명품 소비가 두드러졌다. 외부 요인으로 억눌렸던 수요가 그 요인이 해소되면서 급속도로 분출하는 것을 이르는 보복소비에 플렉스 문화까지 더해져 MZ세대(20~30대)의 명품 소비의 큰 축으로 떠올랐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매출이 급감한 자영업자들은 가게 문을 닫고 직장인들을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 13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취업자는 2690만4000명으로 1년 전보다 21만8000명이 줄었다. 이는 1998년 이후 가장 큰 폭의 일자리 감소를 기록한 것. 연간 취업자가 전년 대비 감소한 건 1984년 석유파동, 98년 외환위기, 2003년 신용카드 사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밖에 없었다. 특히 신규채용 대상인 20대 후반 청년층과 30대 여성 고용률에 충격이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런 고용 성적이 무색하게 명품소비는 ‘코로나 무풍지대’로 불리고 있어 우려스럽다. 지난해 소비트렌트는 급감했던 소비가 전염병 확산에 따라 소비 폭발로 이어지는 보복소비로 요약된다. 이런 심리의 밑바탕에는 평범한 일상을 누리지 못하는 답답함과 경제상황이 안 좋은데도 집 값이 큰 폭으로 오르는 등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소비로 풀어보려는 마음이 담겨있다.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경제 상황은 안 좋아 졌지만 보복소비 현상 덕분에(?) 지난해 10월에는 우리나라의 소비심리지수(CSI)가 큰 폭으로 상승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0년 10월 소비심리지수는 91.6으로 2008년 금융위기 이래 가장 큰 폭으로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가전제품 시장에서도 보복소비로 인해 고가의 프리미엄 제품 판매가 증가했는데, 해외로 신혼여행을 못 가는 신혼부부들이 혼수가전에 더 많은 지출을 했다는 분석이다.

가전제품 판매업체 전자랜드는 지난해 12월 18일 올해 여행을 가지 못한 사람들의 소비 심리가 프리미엄 가전으로 쏠리면서 가전 업계에도 ‘플렉스(flex)’ 열풍이 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전자랜드가 2020년 1월~12월 13일 프리미엄 가전 판매량을 분석한 결과 전년 동기대비 380만원 이상 안마의자는 60%, 340만원 이상 LED TV는 63% 늘었다. 이제는 인테리어 제품으로 진화한 양문형냉장고(300만원 이상)는 49% 성장했고, 140만원 이상 식기세척기의 경우 2020년 7월부터 12월 13일까지 판매량이 전년 동기대비 214%나 치솟았다.


명품소비 편입한 MZ세대…‘플랙스·베블런 효과’ 부추겨


대부분의 제품은 가격이 올라가면 수요가 감소한다. 하지만 가격이 오를수록 수요가 늘어날 때도 있다. 이를 가리켜 베를런 효과라 부른다. 가격이 오름에도 불구하고 특정 계층의 허영심과 과시욕으로 인한 명품의 수요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증가하는 베블런 효과가 가장 잘 나타나는 시장이 바로 명품이다. 샤넬, 루이비통, 구찌 등 명품 브랜드들은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4% 안팎의 가격을 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년 상반기 현대백화점 명품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1%가 늘었고, 신세계백화점은 20%, 갤러리아백화점은 17%가량 증가했다. 더욱이 올해 들어 지난 5일에는 에르메스가, 7일에는 루이비통이 각각 국내 판매가격을 인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없어서 못 파는 게 이들 제품이라고 한다.

플렉스 소비는 명품이나 프리미엄 제품 등을 구입하며 부를 과시하는 소비 행위를 일컫는 말로, 코로나 등 재난상황 속에서 보복소비의 일환으로 떠올랐다. 이런 현상은 2030대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게서 두드러진다. 장기적으로 볼 때 보복소비가 과연 긍정적인 영향을 줄지는 미지수다.


물건이 나를 대변 할 수 없어…기회 잡을 수 있는 실력 키워야


보복소비란 단어처럼 화풀이 하듯 물건을 구매를 한다는 건 어딘가 불안해 보인다. 코로나 백신보급이 이뤄지고 있지만 세계적인 재난 상황이기에 언제 다시 여행을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답답하기는 모두 마찬가지다.

보복소비 현상이 소비심리에 불을 지핀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진짜 부자가 아니면서 부자처럼 보이기를 바라는 것은 자신을 더욱 초라하게 만든다. 상대에게 보여지는 것은 잠시뿐이다. 나의 가치는 나만이 평가할 수 있다. 진심을 모두 말하지 않는 이상 내 마음은 내가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혼자 있어 지루하고 답답하게만 생각하기보다 실력을 쌓는 시간으로 만들면 어떨까. 꼭 명품을 들어야 명품인생은 아니다. 물건이 나를 대변할 수는 없다.

<논어>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불환인지불지기 환기무능야(不患人之不己知 患其不能也).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걱정 말고, 내가 능력이 없음을 걱정하라는 뜻이다. 공자도 말했듯 실력이 갖춰졌다면 분명 기회는 온다는 뜻이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2016년 ‘한국의 50대 부자’를 발표했다. 발표 기준으로 보면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지 않은 2016년 자수성가형 갑부는 40%로 10년 전(18%) 보다 늘어났다. 세계적인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건 당명한 과제이지만, 위 같은 통계 결과만 봐도 얼마든지 기회는 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이분법적 논리에 갇힌 것 같다. 엄친아·엄친딸로 시작했던 비교가 ‘흙수저·금수저’라는 말까지 나와서 마치 등급을 매기듯 사람을 구분 짓는다. 하지만 비교대상 중 가장 좋은 건 ‘어제의 나’다. 과거의 나보다 오늘의 나가 조금이나마 나아졌다면 그는 잘 가고 있는 것이다.

모두에게 주어졌지만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미래가 달라질 수 있는 시간. 우리에게는 시간이 있다. 명품과 프리미엄 제품을 사용해서 다른 이의 시선을 끌 수 있을지 몰라도 나의 내면의 왠지 모를 공허함이 든다면, 나의 내면부터 키워볼 차례다. 내실이 다져지면 굳이 명품이 없어도 나의 가치는 내가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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