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오리피언_박길준 논설위원] ‘어떤 것에 대해 조사하거나 심사해 결정하는 기관’을 사정기관(査定機關)이라고 한다. 5대 사정기관이라 하면 국세청과 감사원, 경찰, 검찰, 공정거래위원회 등을 말한다.

한데,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정재찬)가 조사대상 대기업으로부터 수모를 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공정위의 업무집행을 방해하고, 비협조하는 것은 정부를 넘어 국민을 하대하는 행위와도 같아 이에 대한 문제를 좌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공정위는 ‘경제검찰’이라고 불릴 정도로 대기업의 경제 비리를 조사하는 중요 사정기관이다.

한데, 공정위는 최근 대한민국 대표 철강회사 현대제철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해당 기업 소속 직원들의 조직적인 조사 방해와 집단적인 비협조 행태로 인해 국가의 사정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현대제철의 철강제품 담합협의를 잡고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조사를 진행해 왔다. 한데, 현대제철 소속 직원 2명이 공정위 1차 현장조사 기간 중 사내 이메일 및 전자파일 등을 복구가 불가능하도록 파일 완전 삭제 프로그램을 이용해 증거를 없애려는 행위를 저질렀다. 공정위 조사가 시작되면서 전산자료에 대한 삭제나 은닉, 변경을 못한다는 것을 고지하고도 저질러진 행위였다.

한데, 이 뿐 아니라 현대제철의 정책지원팀 직원들은 외부저장장치인 USB 승인현황을 은닉했고, 이에 대해 조사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세부 사례를 알아보면, 공정위는 현대제철 직원 11명의 USB 보유 사실을 알고 이에 대해 조사를 벌이기 위해 자료 제출을 요청했지만 입을 맞춘 모양처럼 모두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 현대제철의 공정위 조사의 조직적 방해로 인해 사회적인 도마에 올랐다. 현대제철은 '철, 그 이상의 가치 창조'를 말하지만, 국민은 현대제철이 철 이외 무엇을 창조할 것인지 의문을 남기고 있는 모습이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현대제철 상무에게 직원들의 USB 제출을 요청하라고 권했지만 상무 또한 직원들의 말을 들어 USB 속의 자료가 개인적인 자료밖에 없다고 하고, 자료 제출 거부확인서만 쓰도록 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한데, 국민에게 충격을 주는 사실은 현대제철이 USB에 대한 사용승인을 받은 직원은 2명에 한했다고 답했지만, 실제로는 2명 외 9명이 더 있었다는데도 그렇게 대답한 거짓이 드러난 셈이다.

이에 공정위는 11명 모두에게 USB의 제출을 요청했지만 모두에게 거부당한 것이다. 또 공정위는 현대제철 임원에게 직원들이 조사협조에 임하도록 요청했지만 이 역시 거부당한 것이다. USB 확보가 중요한 점은 해당 파일저장장치에 담은 파일이 적게는 5개에서 많게는 1000개가 넘는 것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제철의 조직적 조사 방해로 공정위는 결국 담합사건에 대한 조사를 제대로 벌이지 못하고 힘없이 되돌아와야만 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조직적 방해 행위는 비단 이번 한번뿐이 아니다. 공정위의 조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했던 기업은 2011년 이후에만 SKC&C(2억9000만원), LG전자(8500만원), 삼성전자(4억원), CJ제일제당(3억4000만원), 포스코건설(1억4500만원) 등 4~5개 기업이 공정위의 조사를 방해한 혐의로 제재조치를 받은 사실이 있다.

이렇듯 해를 거듭해가며 반복적으로 조사 방해행위를 하는 것은 자명한 이유다. 공정위의 처벌보다 훨씬 더 많은 범법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현대제철에 대해 3억1000만원 안팎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현대제철은 이 또한 웃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현대제철은 이미 공정위 조사를 방해하고 자신들이 한 행위를 알지 못하도록 한 것에 대해 얼마의 과징금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과태료 금액은 이미 법에서 정하고 있는 상한선을 넘지 못하며, 또한 현대제철에 대해서는 조사방해와 자료제출 거부 등을 합해 2억5000만원, 소속직원 2명에 대해 2200만원, 나머지 9명의 소속직원에 대해 각 200만원씩 총 1800만원 이렇게 해서 3억1200만원의 과징금 부과결정이 내려졌는데, 이를 현대제철이 계산에 넣지 못했을까.

공정거래법을 보면 조사방해나 자료제출 거부에 대해 법인은 최대 2억원, 임직원은 최대 5000만원까지의 과태료만 부과할 수 있음을 현대제철은 알고 있었을 사안이다.

게다가 공정위의 사정행위를 더 우습게 만드는 것은 검찰의 불기소처분행위에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2012년 삼성전자와 SK씨앤씨, LG전자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및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고발한 바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검찰은 불기소처분 결정을 내렸고, 경제개혁연대가 다시 항고를 했지만 재항고마저도 기각했다.

이 때문에 검찰의 전형적인 ‘재벌 봐주기’ 행태라는 비난을 받은 바 있다.

한데, 더 충격을 주는 사실은 삼성전자와 SK의 공정위 조사 방해를 주도한 임원들이 연이어 승진을 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이는 분명 단언컨대, 기업차원에서의 지시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행위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이번 현대제철의 조사 방해 행위 또한 국민이 지켜봐야 할 이유다. 조사방해를 주도한 임원이 향후 승진을 하는지 못하는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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