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박길준 논설위원] 국민은 현대․기아자동차(이하, 현대차)를 잘 알고 있다. 국내 유일의 완성차 생산기업이며, 기술력 하나로 세계로 뻗어가는 우리 한국의 저력을 누구보다도 또렷이 보여 준 곳이 바로 현대차라는 것을. 하지만 언제 부터인가 그들은 대단한 자부심을 가진 거대 공룡이 되어 버렸고, 그 자부심은 자만심으로 변질된 것은 아닌지 우리 국민은 의문이 들 정도다.

이 문제는 그동안 숱한 논란을 만들어 냈지만 결정적으로 지난 2013년. 당시 현대차는 세타2엔진을 개발, 현대차에서 생산되는 대표적인 차량 쏘나타, 그랜져 등에 탑재해 시중에 유통시켰다. 한데, 현대차가 야심차게 개발한 세타2엔진에 결함이 생겼다. 운행 중 엔진에서 오일 공급 홀을 만들면서 절삭작업이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고, 이 때문에 오일 홀 주변에 손톱만한 금속조각이 남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무언가 엔진을 때리는 듯한 소리가 난다는 제보가 많았던 것도 이때의 일이다.

▲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재벌가들의 개혁이 크게 대두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김상조 한성대 교수를 공정거래위원장에 임명하면서 사실상 현 정부가 재벌개혁모드에 돌입했다는 의견이 크게 대두되고 있다. 이에 현대 기아자동차의 세타2엔진 결함 문제가 다시 논란거리가 되면서 현대차가 위기에 처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월 재벌개혁에 대해 발표하는 모습<출처_문재인 공식 영상, 그래픽_진우현 기자>

당시 국토교통부는 세타2엔진의 오일 공급 홀에 절삭되지 않고 남아 있는 금속편이 떨어져 베어링에 끼게 됐고, 커넥팅 로드와 크랭크 샤프트가 들러붙는 문제가 발생하게 됐다고 당시의 현대차에 대한 문제를 설명한 바 있다.

세타2엔진에 대한 논란은 지난 2015년 미국에서도 동일한 원인에 의해 문제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현대차는 2011년부터 2012년까지 생산된 쏘나타 승용차 약 47만대에 대해 리콜을 실시했고 2013년과 2014년에 생산된 차량은 보증 수리 기간을 연장했다. 이것이 미국에서 있었던 현대차의 모습이었다.

한데, 현대차는 자국인 국내에서 사뭇 다른 모습을 보였다. 미국에서 고객을 위해 고개를 숙였던 현대차가 국내에서는 유난히 뻣뻣했던 것이다. 무엇을 믿고 했던 뻔뻔함인지는 모를 일이다.

현대차는 미국에 판매한 국내와 동일한 또는 동일해 보이는 차량에 대해서는 리콜을 실시했지만 국내에서는 미국 판매차량과 국내 차량은 무관하다며 리콜을 실시하지 않은 것이다.

당시 현대차는 “리콜은 미국 알라바마 공장의 청정도 관리 문제 때문이지, 부품 자체 결함에 의해 일어난 문제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대차의 그 주장을 믿는 국민은 현대차 직원조차도 없을 정도로 사태는 심각한 수준으로 번져갔다.

이 문제는 내부제보에 의해 또 한 번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현대차 구매본부 협력업체품질강화1팀에 근무했던 김광호 부장이 언론에 세타2엔진 내부의 결함에 대해 알리면서 세상의 시선은 현대차 세타2엔진에 쏠렸다.

현대차의 미국과 한국내 생산되는 차량은 다르다는 주장과 달리 내부제보자 김 부장은 엔진결함이 은폐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김 부장은 현대차에서 쫓겨나야만 했다. 김 부장은 현대차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런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숙고 끝에 내부고발자가 됐지만 현대차에는 이런 아량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김 부장은 국민권익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복직하게 됐다. 당시까지만 해도 국민들은 권익위의 결정이 당연한 처사라고 생각했다. 한데, 지난 16일 김 부장은 돌연 사퇴를 했다. ‘일신상의 이유’라고는 하지만 갑작스런 사퇴는 ‘결국 김 부장이 현대차의 억압에 무릎을 꿇고 말았구나’라는 안타까움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권익위의 복직 결정이 내려진 이후 현대차는 복직권고결정과 관련해 효력을 다투는 행정소송을 진행한 것은 물론, 김 부장에 대해 형사고소도 진행한 바 있다.

한마디로 ‘내부고발자’는 같은 공간에서 머리를 맞대고 있을 수 없다는 의미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 김 부장의 사직으로 현대차가 벌인 행정소송과 형사고소는 취하됐지만 이 때문에 김 부장의 마음고생은 여간 심하지 않았으리라 보인다.

이 과정에 앞서 국토부는 지난 3월 현대차에 대해 리콜을 권고했다. 한데 현대차를 이를 거부했다. ‘리콜권고된 해당 사안이 안전운행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의 이의제기로 인해 지난 8일 행정절차법에 따라 현대차를 상대로 한 청문절차가 진행됐다. 여기서도 현대차는 안전운행에 지장이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지난 12일 국토부는 현대차에 강제 리콜처분을 통보했다. 자발적 리콜 권고를 거부하고 청문절차까지 밟으면서 낳게 된 사상 첫 강제리콜사태인 것이다.

이번 사태는 그동안 국토부가 현대차에 대해 유독 나긋했던, 그래서 ‘봐주기 논란’까지 끊이지 않았던 문제로 국민을 상대로 한 ‘대국민 사기극’과도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런 국토부가 현대차에 대한 태도를 달리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과 무관치 않다. 또 국토부가 현대차에 대해 강한 태도를 보인 것은 고심 끝에 내린 자발적 리콜권고에 대해 현대차가 거부하면서 더욱 틀어지게 된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이 결과로 국토부가 현대차의 결함은폐의혹에 대한 수사의뢰를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공정거래위원장에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를 내정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 개혁에 나설 인물로 조국 서울대 교수를 얼마 전 임명했으며, 이번에는 재벌 개혁을 주도할 경제 검찰 공정거래위원회 수장에 김상조 교수를 임명한 것이다. 김 교수는 ‘재벌개혁전도사’라는 별명을 달고 다닐 만큼 이미 20년간 재벌 개혁에 앞장서 온 인물로 이번 김 교수의 공정위 위원장 임명에 따라 재계 개혁에 속도가 기대되고 있어 향후 현대차를 비롯한 재벌가들이 어떤 모습을 보일지 사뭇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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