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줄리엣 결사반대"...또 불거진 원작훼손 논란, 인종차별로 번져
영국 극단이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에 흑인 여주인공을 캐스팅한 여파가 계속된다. 극단은 여배우에 쏟아진 비난을 멈춰 달라 성명까지 냈지만 성난 원작 팬들은 보이콧 등 집단행동을 예고했다. 주인공을 지지하는 여배우들이 뭉치면서 관객과 배우들 사이의 대결구도까지 형성됐다.
가디언 등 영국 언론들은 10일 기사를 통해 제이미 로이드 극단의 새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에 낙점된 흑인 배우 프란체스카 아메우다-리버스와 관련된 캐스팅 논란이 일파만파라고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프란체스카의 줄리엣 연기를 지지하는 흑인 여배우 약 880명이 최근 단체 서명운동에 나섰다. 이들은 프란체스카가 줄리엣 역을 맡았다는 이유만으로 범죄자처럼 매도되는 현실을 개탄했다.
제이미 로이드 극단은 영화 ‘스파이더맨’ 시리즈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한 할리우드 스타 톰 홀랜드를 로미오에, 프란체스카를 줄리엣에 각각 캐스팅했다. 직후 줄리엣에 흑인 배우를 기용했다는 비난이 빗발쳤다.
결국 극단은 지난 5일 공식 채널을 통해 여배우에 과도한 공격이 가해지고 있다며 자제를 촉구했다. 다만 성난 일부 원작 팬들이 프란체스카의 SNS에 테러를 가하는 등 사태는 악화일로를 달렸다.
이제는 극단도 입장을 바꿨다. 이번 캐스팅에 대한 팬들의 이해를 구하며 읍소하던 극단은 프란체스카에 가해지는 공격이 인종차별을 넘어 학대에 가깝다며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서명한 약 880명의 흑인 여배우들도 끝까지 싸우겠다고 전의를 다졌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영국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대표 희곡이다. 가문의 대립 문제로 맺어지지 못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원작에서 이탈리아 사람이다. 극단은 극의 신선한 활력을 위해 과감한 캐스팅을 시도했다는 입장이며, 이에 대한 신념이 확고해 오는 5월 배역 그대로 공연이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팬들은 연극 자체를 결사 저지하겠다고 맞섰다. 원작을 재해석하는 것은 좋으나, 인물상을 완전히 바꾸는 행위는 엄연한 원작 훼손이라는 지적도 계속된다. 고전 팬들의 이런 저항은 ‘인어공주’에 흑인 가수를 기용하고 눈 같이 흰 피부를 가진 백설공주 역에 구릿빛 피부의 남미 배우를 기용한 디즈니 사례에서 이미 확인됐다.
한 ‘로미오와 줄리엣’ 팬은 “원작의 재해석은 팬들 입장에서도 환영하는 바”라면서도 “성별이나 피부색 등 원작자가 정한 원칙을 멋대로 바꾸는 건 작품에 대한 테러”라고 비판했다.
한편에서는 캐스팅된 배우에 대한 과도한 공격은 안 된다는 주장도 많다. 한 연극 팬은 “흑인 배우가 줄리엣에 캐스팅됐다면 극단이나 캐스팅 관계자를 비난하면 될 일”이라며 “흑인 여배우를 향해 무차별 욕설을 내뱉은 것은 논점을 한참 벗어난 저질 행위”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