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더 자세한 스포츠] 솔솔 올라오는 르나르 감독론 설레발, 돈 없는 축협 향해 ‘나 감당할 수 있겠니?’ 외치는데…
-카메룬도 도망간 몸값 부른 르나르, 밀당인가 아니면 한국행의 초석인가?
[뉴스워커_스포츠 분석] 태국원정을 끝으로 황선홍은 갔다. 그는 이제 파리 올림픽 본선을 향해 만만찮은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황 감독이 임시감독으로 부임할 때부터 그의 정식 감독설이 거론됐지만, 이번 파리 올림픽으로 향하는 험난한 여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그 가능성에 대해 고개를 저었다.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은 지난 2일 열린 전력강화위 5차 회의 브리핑에서 ‘회의를 통해서 32명의 후보자 중 11명의 최종 후보를 선별했다’ 밝혔고, 이 중 내국인 지도자 4명, 외국인 지도자 7명으로 외국인 지도자부터 먼저 면담을 진행한 후 내국인 지도자와의 면담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심층 면접 등의 방법을 통해 ‘최대한 5월 초·중순까지는 감독을 선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같은 날 KBS 뉴스 9의 보도에 따르면 외국인 감독 7인 후보 중에는 세놀 귀네슈 베식타스 JK 전 감독과 에르베 르나르 현 프랑스 여자 대표팀 감독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7일 스포츠조선의 르나르 취재에서는 "한국 A대표팀과 2026년 북중미 월드컵을 함께하고 싶다. 현재 여러 팀이 감사하게도 관심을 보내주고 있는데, 내 최우선 순위는 한국 대표팀"이라는 희망적인 답변을 들었다고 보도했다. 파리 올림픽을 끝으로 여자 대표팀 감독을 내려놓기로 한 르나르는 최근 카메룬 축구협회와의 협상 과정 중에 있었다. 아프리카 축구 소식을 전문으로 다루는 '아프릭풋'은 카메룬의 체육부가 르나르 감독의 영입을 포기한 주된 이유로 그의 과도한 연봉 요구를 꼽았다고 8일 보도했다. 사무엘 에투, 카메룬 축구 연맹의 회장이 제안한 새로운 감독 후보 목록에 르나르 감독이 포함되어 있었으나, 그의 요구 금액은 150만 유로에서 240만 유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그가 프랑스 대표팀에서 받는 40만 유로의 6배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나르시스 무엘 콤비, 카메룬 체육부 장관은 ‘역대 어떤 감독에게도 지급된 적 없는 엄청난 금액’이라고 언급했다.
세계적인 명장 반열에 오른 르나르, 최초, 최대 이변 만들어 내며 승승장구
선수보다는 감독으로서 더 유명한 르나르다. 그는 1999년 SC 드라기냥 감독으로 첫발을 내딛고, 2002년 AS 칸을 샹피옹나트 드 프랑스 아마추어 우승으로 이끌며 감독 재능을 증명했다. 이후 2012년 잠비아를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우승으로 이끌며 르나르 감독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이어 2015년 코트디부아르를 또다시 우승으로 이끌며 아프리카 축구계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2016년 그는 모로코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여 2018년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었는데 1986년 이후 32년 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결정적인 장면을 만들었는데, 2019년부터 사우디아라비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한 그는 본선에 진출했으며, 이 월드컵 우승국인 아르헨티나를 2-1로 꺾는 이변을 일으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일명 ‘루사일의 기적’인 이 승리는 아르헨티나가 월드컵에서 아시아 팀에 처음으로 패배한 사례임과 동시에 카타르 월드컵 최대 이변이었다.
이후 2023년부터 프랑스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어 24년 8월까지의 기간 동안 23 FIFA 여자 월드컵과 24 파리 올림픽 경기를 지휘하게 되었다. 23 FIFA 여자 월드컵 F조의 최대 난적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2:1로 승리하면서 조별리그를 통과했고 이 승리를 통해 르나르는 FIFA 월드컵과 FIFA 여자 월드컵이라는 ‘남녀월드컵 모두 승리를 거둔 최초의 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다.
르나르는 파리 올림픽 이후의 행방에 대해 "어려운 일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나는 2026년 월드컵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다. 내가 남자 대표팀을 이끌고 참가하는 세 번째 월드컵이 되기를 바란다"며 26 북중미 월드컵에 남자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 출전하기를 희망했다. 수많은 이변을 기록하며 세계적인 명장 반열에 오른 그가 이제 차기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이다.
대어 르나르, 축협, 침 흘리지만, 미끼 없는 낚시는 언감생심. 돈도 없고 시간도 없다
르나르가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거론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한국 대표팀 명장으로 손꼽히는 파울루 벤투를 선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당시 김판곤 국가대표 감독선임위원장 시절에도 인연이 있었다. 벤투를 선임했을 때의 김판곤 축협의 감독 선임 절차는 매우 투명하고 객관적인 기준에서 진행되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그때 선임 절차에서 후보 1순위였던 감독이 르나르였다. 물론 르나르가 제안을 거절하며 벤투가 감독이 되었다. 지금의 정해성 위원장 체제조차도 그때 설립한 기준과 철학에서 낙후되었으면 되었지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음에도 르나르가 차기 감독 후보로 고려되고 있다는 점은 그만큼 과거나 현재나 그가 한국 축구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세상일이라는 것이 항상 좋은 시나리오대로만 흘러가면 얼마나 좋겠느냐마는 대표팀의 사정이 그리 넉넉지 않다. 일단 돈이 없다. 르나르가 카메룬 국가대표팀 자리에 제시한 연봉은 240만 유로. 한화로 약 36억 원이다. 벤투가 190만 유로, 클린스만이 220만 유로였다. 클린스만 중도 경질로 인해 그에게 지급해야 할 위약금이 아직 남아있는 상태. 약 70억 원의 위약금이 남아있다. 게다가 축협은 당장 충남 천안에 건립될 예정인 축구종합센터로 인해 300억 원에 가까운 부채가 생겨서 재정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이다. 이 때문에 큰돈이 안 드는 국내 감독설이 축협 내에서 힘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클린스만도 저 돈을 받아 갔는데 훨훨 날아다니는 르나르를 무슨 수도 그보다 싸게 데리고 오겠다는 것인가? 게다가 르나르의 프랑스 올림픽 성공 여부에 따라 입장은 더욱 크게 바뀔 수도 있다. 지금 제시한 240만 유로가 제일 싼 금액이 될 수도 있다.
시간도 안 맞는다. 정해성 전력위원장은 2일 발표에서 다음 감독 선임에 대해 ‘ 최대한 5월 초·중순까지는 감독을 선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르나르 감독을 영입하려면, 파리에서 열리는 올림픽 여자 축구 대회가 끝나는 8월 초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는 매우 여러 가지 부분에서 복잡해지는데, 일단 올림픽이 코앞에 다가온 상황에서 프랑스 여자 축구 대표팀의 르나르 감독이 갑자기 사임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축협이 르나르 감독을 영입하려면 사전 합의를 바탕으로 6월에 예정된 싱가포르, 중국과의 마지막 2차 예선까지 임시감독 체제를 유지하고, 8월에 르나르 감독을 정식으로 임명한 다음, 9월에 있을 3차 예선을 치르기 위해 매우 신속하게 행동하는 방법이 유일하다. 대부분의 국내 후보들도 K리그에 매진하고 있어 임시감독 뽑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도 축협은 5월 안에 차기 감독 선임을 마치겠다고 공언했다.
태국과의 예선전에서 한국은 3차 예선 최상위 포트를 받기 위한 FIFA 랭킹 아시아 3위를 간신히 유지했다. 4위 호주와의 점수 차이는 단 1점도 나지 않는다. 만약 한국이 싱가포르나 중국과 맞붙어 단 한 경기라도 비기거나 지면 그대로 3차 예선은 가시밭길이 된다. 중국은 태국보다 더 전력이 높은 팀이다. 태국원정을 거치면서 대표팀의 분위기가 회복되는 모양새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정식 감독 없이 2차 예선에서 호주에게 밀리고, 경기 직전에 투입된 감독이 바로 있을 3차전을 성공적으로 지휘하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너무 없다.
한국은 성공 중인 감독이 오는 곳이 아니라 재기의 땅
르나르가 한국으로서는 충분히 구미 당길만한 인물임은 맞지만, 르나르 본인에게 한국이 충분히 매력적인 팀일지는 좀 더 고려해 봐야 한다. 한국은 늘 재도약 기회를 노린 감독을 선택해 왔다. 펄펄 날고 있는 외국 감독들이 축구계의 변방인 아시아, 그것도 극동에 오는 선택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사우디아라비아 같이 축구에 관심 많고 자국 리그도 활발하며 오일머니를 위시한 큰돈을 제시하는 국가도 아니다. 더구나 한국은 대표팀을 향한 국민의 기대치가 매우 높은 곳이다. 대표팀의 공공성이 매우 큰 나라이다. 돈도 많이 못 준다. 보상은 적고 책임은 많은 곳이다.
이것은 한국도, 오려는 후보도 양측이 모두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런 이유로 한국은 늘 정상을 달리고 있는 감독보다는 약간 하락세를 겪는 감독을 싸게 영입해 오는 전략을 택했다. 대표팀 감독직은 외국 문물을 들여와 한국팀도 선진화하고 감독 본인도 재기하는 발판으로서의 자리였다. 당장의 전임 감독 둘 모두가 그랬다. 파울루 벤투도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 이후에는 서서히 성적이 하락해서 마지막에는 중국 당다이 리판팀에서 짧게 감독직을 맡다가 대표팀에 왔다. 클린스만은 굵직한 국가들의 감독을 맡았지만 큰 성과를 보이지는 못했다. 그리고 대표팀에 오기 전 마지막 역임했던 클럽팀인 헤르타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하락세인 벤투의 잠재력을 한국이 정확히 판단하고 영입했고 성공적이었다. 클린스만의 사례는 최악으로 남았지만, 일단은 노려볼 만했었다. 이러한 외인 감독 선임의 경향을 볼 때 훨훨 날아다니는 르나르가 뜬금없이 한국팀으로 올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르나르의 목표인 26 북중미 월드컵은 아직 2년이나 남았다. 그 기간에 더 좋은 곳으로 갈 기회는 충분하다.
르나르 감독론이 솔솔 피어오르고 있지만, 축협이든 르나르 본인이든 그것이 진심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축구협회로써는 김판곤 위원장 시절에도 1위 후보였던 르나르를 일단은 거론하면서 본인들이 정상적인 선임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는 안심 시그널을 줄 수 있다. 르나르 입장에서는 한국의 러브콜에 호응하면서 자신의 몸값을 끌어올리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 르나르가 한국팀이 원하는 감독 중의 하나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좋은 상상만 하기에는 우리의 사정이 그럴 수 없다. 그러니 아직 그 누구도 떡을 안 줬는데 김칫국 먼저 마실 필요는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