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더 자세한 뉴스] 예측불허, 글로벌 원자재 시장... 전쟁과 환경, 바이러스까지
-원자재 가격 불확실성 짙어질수록 경기침체 우려
[뉴스워커_더 자세한 뉴스] 지난해 6월, 아이한 코세 세계은행(WB)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국제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면서 전반적인 경기침체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2022년 촉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3~4개월간 세계 식량가격은 40% 급등했지만 이후부터 현재까지 줄곧 떨어졌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원자재 가격지수는 24% 하락했고 올해는 4%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최근 발생한 이란-이스라엘 분쟁으로 국제유가가 치솟았고, 친환경 정책으로 저탄소 금속재의 수요가 증가했으며, 바이러스 및 온난화로 인해 농작물에 영향을 미치는 등 원자재 시장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고 있다.
이란-이스라엘 중동전쟁... 국제유가 100달러 시대 재현될까
지난 13~14일 이란이 이스라엘 본토를 향해 300여 기의 자폭용 드론과 순항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스라엘이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 주재한 이란 영사관을 공습해 이란 혁명수비대(IRGC) 고위급 지휘관 11명을 사망케 한 지난 1일에 대한 보복성 조치다. 12일 만에 벌어진 양국간 무력 대응으로 중동 전역에 긴장감이 돌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처럼 자원을 보유한 국가가 참전국이 되면 국제 에너지 시장은 요동친다. 대표 산유국인 이란이 이스라엘과 전면전을 치를 경우 국제유가의 극심한 변동성은 불가피하다. 한 번씩 주고받은 무력 충돌임에도 지난 2월 초 배럴당 72달러(약 10만 원)에 거래됐던 서부텍사스유 가격은 이달 15일 기준 85달러(약 11만 7,000원)까지 상승했다. 브렌트유 가격은 90달러까지 오른 상황이다.
중동은 전 세계 석유 생산량의 1/3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이란과 이스라엘 간 분쟁지역은 글로벌 천연가스의 30%, 석유의 20%가 지나는 중동의 핵심 수출통로 ‘호르무즈 해협’이 자리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수출라인 중 아시아가 차지하는 비중만 약 70%에 이른다. 중동전쟁은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을 정체시킬 수 있는 대형 리스크다. 에너지업계는 전쟁 여파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될 경우 국제유가는 130~150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친환경으로 탄생한 저탄소 알루미늄... 지속가능한 수요 실현
클린 테크(Clean Tech)라고 불리는 친환경 첨단기술은 재생에너지는 물론 환경을 고려한 소재 개발에도 힘을 싣고 있다. 특히, 다방면에 사용되는 알루미늄은 친환경 정책에 맞춰 새롭게 가공되고 있다. 탄소배출량을 줄인 공법으로 제작된 ‘저탄소 알루미늄’은 이전 소재보다 가벼우면서도 내구성은 강화됐고 재활용도 가능하다. 글로벌 환경규제인 탄소중립(탄소배출량 ‘0’ 또는 ‘넷제로’)에 적절한 소재인 만큼 수요도 지속되고 있다.
알루미늄 세계 1위 생산지는 중국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포장재 수요가 급증하면서 포장자재로 널리 사용된 알루미늄도 호황기를 맞았다. 당시 알루미늄의 국제 시세를 살펴보면, 코로나가 발생한 2019년 11월 기준 톤당 1,760달러(약 243만 원)에서 2022년 2월 말 3,850달러(약 532만 원)로 2배 이상 폭등했다. 엔데믹 이후 알루미늄 수요가 감소하면서 가격이 떨어졌지만 저탄소 알루미늄의 수요가 견고한 덕분에 2,300달러대로 적정선을 유지하고 있다.
간혹 국제사회의 입김이 알루미늄과 같은 금속자재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최근 미국과 영국이 러시아산 알루미늄, 구리, 니켈 등의 수입을 금지하면서 해당 금속재의 가격이 크게 올랐다. 미국 재무부는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한 러시아의 전쟁 비용에 타격을 준다는 목적으로 이번 금수조치를 단행했다. 러시아는 알루미늄 생산국 세계 2위로서 글로벌 공급량의 5.4%를 담당하고 있다. 시카고상업거래소(CME)는 서방국의 대러 무역제재와 지속적인 저탄소 알루미늄의 수요가 금속재 가격변동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바이러스·기후변화... 식량 원자재 산업을 흔들다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에 감염된 가금류는 48시간 안에 90% 이상 폐사한다. 조류독감의 창궐은 양계장 등 가금류 산업, 특히 닭고기와 달걀의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식자재 가격을 끌어올린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 및 아시아에서도 조류독감으로 인한 가금류 산업의 피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2021~2022년 발생한 최악의 조류독감으로 달걀 가격이 2배 이상 폭등한 국가들은 현재까지 이전 시세로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기후변화의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원자재는 단연 농작물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식물성기름 중 하나인 팜오일(Palm Oil)은 계속된 엘니뇨 현상으로 인해 생산성에 타격을 받고 가격이 불안정했다. 엘니뇨는 원인 불명의 온난화 현상인데 농작물의 경우 작황에 피해를 입기 쉽다. 팜오일은 식용의 비중이 가장 크지만 화장품이나 합성세제, 심지어 재생에너지 원료로도 활용된다. 시장조사업체 패스트마켓(Fastmarkets)에 따르면 이상기후로 인해 팜오일의 생산성은 떨어졌지만 글로벌 수요는 지속되고 있어 향후 팜오일 가격이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달부터 남미의 대두(콩) 생산량이 증가하기 때문에 팜오일과 대두유라는 두 식물성유지의 공급 비율에 따라 대체재 효과를 볼지는 미지수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바이러스나 기후변화로 인해 식량 원자재의 공급량은 감소할 수 있지만, 생산기술 발전과 지속적인 글로벌 수요가 가격상승을 이끌 것으로 예상된다. 면화의 경우 올해 감소된 생산량에 비해 수요는 0.4%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천연고무는 지난해 말부터 수요가 회복돼 올해 가격상승률이 4.0%에 달한다는 분석이다. 반면, 세계식량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밀의 경우 꾸준한 공급과 재고 확보로 가격이 하락한 대표적인 원자재다. 밀의 국제 시세를 살펴보면, 2022년 2월 부셸(BU, 약 35리터)당 1,175달러에서 올해 4월 15일 556달러로 지난 2년간 절반 이상 급락했다.
IMF, 올해 글로벌 인플레이션 5.8% 전망... 美 “금리인하 글쎄...”
지난해 세계은행이 우려했던 ‘원자재 가격하락에 따른 경기침체(디플레이션)’는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 국제사회의 친환경 정책,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오염 등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원자재 가격상승에 따른 경기침체(스태그플레이션)’로 전환될 다양한 변수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전 세계 물가상승률을 5.8%로 예상했지만 오늘(현지시간 16일) 열릴 기자회견을 통해 인플레이션 전망치를 재검토한다는 입장이다.
한편, 국제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의 불확실성이 짙어지면서 미국도 고심에 빠졌다. 물가상승률 목표치 2.0%에 맞춰 통화정책을 수립하는 미국 연준(Fed)은 이번 중동발 국제유가 상승세에 주목하고 있다. 석유와 같은 필수소비재의 가격상승은 인플레이션을 견인할 수 있어 금리인하 시점이 미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3월 기준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3.5%다. 목표치에 가장 근접했던 시기는 2021년 2월 1.7%였고 이후 3년이 넘도록 달성하지 못했다. 현재 미국 내 매파세력은 금리인하 시기를 내년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