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더 자세한 스포츠] 박항서 이어 김상식 베트남 대표팀 감독까지, K-축구감독 전성시대..한국 축구 망해가는데, 인기 비결은?

-전북 감독으로 큰 존재감 없었던 김상식, 동남아 국가들은 왜 한국 감독을 선호할까?

2024-05-03     권용진
‘아시아 호랑이’라고 불리는 한국 축구는 하루가 멀다고 기량이 하락하고 있는데, 같은 동네에 사는 이웃들의 실력은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축구의 변방이라고 여겨졌던 아시아, 그중에서도 최약체를 면치 못하는 동남아시아 축구가 상향 평준화된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K-감독이 있다. 동남아시아가 원하는 많은 조건을 충족한 채...[본문 중에사]

[뉴스워커_더 자세한 스포츠] 얼마 전 U-23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인도네시아 축구를 이끌고 모국인 한국을 8강에서 꺾으며 도하의 기적을 만들었던 신태용 감독. 그리고 기억하는가? ‘박항서 매직! 이제 그 자리에 전북 현대 감독 출신 김상식 감독이 취임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29일 동남아 축구 시장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김상식 감독이 최근 베트남 축구협회와 만나 베트남 국가대표팀 감독 계약을 마무리했다"고 언급했다.


박항서 매직못 잊는 베트남, 높아진 위상에 유럽 감독 써보려다가 큰 낭패. 다시 K-감독으로


필립 트루시에 감독은 과거 일본 축구 대표팀을 이끌고 2000 아시안컵 우승, 2001 컨페드컵 준우승, 2002 월드컵 16강 진출 등 뛰어난 성적을 거둔 명장이었다. 박항서의 성공 이후 베트남은 높아진 자국의 축구 위상에 적합한 선진 축구의 도입을 시도했고, 결국 유럽파 감독을 선임하였다. 하지만, 그는 베트남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트루시에 감독 부임 이후 베트남 축구는 박항서 시절 이전으로 퇴보했다. 동남 아시안컵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고, 한국에는 0-6으로 대패하며 역대 최다 점수 차 패배 기록을 세웠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16강 진출에 실패하며 5년 전 4강 신화와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2023 아시안컵에서는 3전 전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FIFA 랭킹이 105위까지 떨어졌고, 2026 월드컵 2차 예선에서도 인도네시아에 2패를 당하며 월드컵 본선 진출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결국, 베트남 축구협회는 트루시에 감독과 상호 합의 하에 계약을 해지하며 그와 결별했다.

박항서 부임 이전 베트남 대표팀은 FIFA 랭킹 130~140위권에 머물던 약팀이었다. 축구의 변방이라는 동남아시아에서도 변방으로 밀려나 있었다. 하지만, 박항서 감독의 지도 아래 베트남 축구는 체질 개선과 실력 향상을 이루며 동남아시아 강호로 떠올랐고,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꿈을 현실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FIFA 랭킹도 두 자릿수로 뛰어올랐다.

박항서 감독은 전술적인면 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정신력과 체력 강화, 유소년 시스템 개선 등 베트남 축구의 전반적인 발전을 이끌었다. 박항서 감독 체제에서 2018 아시안게임, 2018 아세안축구연맹 스즈키컵 우승, 2019 아시안컵 8강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며 동남아시아 축구 강호로 자리매김했다. 이에 베트남 국민들이 붙여준 칭호는 ‘Thầy Park Hang Seo’였다. 이는 박항서 스승님이라는 뜻으로 굉장한 존칭이며, 같은 베트남인한테도 붙이기 어려운 칭호였다.


영원할 줄 알았던 상식 종신’, 전북 리그 우승 경험에도 운장취급, 능력은 글쎄?


김상식 감독은 전북 현대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다. 2009년을 시작으로 전북 현대에서 선수와 지도자로 무려 15년 동안 몸담으며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감독 데뷔 첫해 K리그1 우승, 2022FA컵 우승, AFC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 등 표면적으로는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이런 그의 경력은 언뜻 보기에는 나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전북 현대의 팬들은 감독으로서 그의 능력에 대해 별로 좋게 평가하지 않는다. 일단 전술적 역량의 부족을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는다. 팀의 전략, 전술적인 지향성이 잘 보이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았고 선수 기용에 대해서도 비판이 많다. 해당 선수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장점을 살리지 못한 채, 이유 없이 다른 포지션으로 변경하거나 제자리에 그 선수를 넣지 않는 등의 실수가 잦았다.

21시즌에는 우승은 했지만, 백승호, 구스타보, 쿠니모토, 일류첸코, 송민규, 문선민, 김민혁, 김보경, 김진수, 홍정호 등등의 훌륭한 선수들이 많았음에도 그들의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22시즌에는 박진섭과 맹성웅 등의 영입으로 전력을 강화하였고 김문환 등의 핵심 선수도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었지만, 목적성 없는 선수 투입과 해줘 축구로 인해 팬들에게 감독으로서의 능력을 의심받았다. 23년에는 조규성 등의 복귀와 함께 지난 시즌보다 훨씬 더 많은 투자를 했던 전북이지만, 답답한 경기력을 보여주었고 결국 지난 시즌을 끝으로 스스로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이에 팬들은, 감독은 무능한데 선수들의 스쿼드가 너무 뛰어나거나 운이 좋아 경질당하지 않고 계속 감독직을 역임한다고 생각했고, 전북과의 인연이 긴 그를 향해 상식 종신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과정이야 어쨌든 21~22시즌에 보여준 표면적인 성과는 나쁘지 않았기에 수많은 비판과 감독 경질 요구에도 그는 23시즌까지 전북 감독으로 머물렀다. 그리고 이제 그는 베트남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새롭게 시작하려 한다.


한국의 국력과 함께 성장하는 K-감독 수출, 손흥민 보유국, 아시아 한정 사기 캐릭 감독들


그렇다면 K-감독이 유독 아시아팀 내에서 인기를 끄는 비결은 무엇인가? 한국 축구는 1948년 대표팀 창설 이후 48년 런던 올림픽 축구 8위를 시작으로 꾸준히 성장, 이미 그 당시에도 아시아 최강이었다. 물론 세계적으로는 아니었다. 이에 '동아시아 골목대장', ‘아시아의 호랑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붙었다. 아시안게임에서 6회 우승, AFC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도 12회 우승으로 두 대회 모두 최다 우승국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U-23 대회가 출범한 이후에는 올림픽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며 아시아 축구 강호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로 한국 축구는 아시아를 벗어나 국제무대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일본과 이란, 사우디 등등의 강팀이 존재하여 예전만큼 압도적인 승리를 항상 보장받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한국은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FIFA 월드컵 누적 승점 아시아 1위를 차지하며 세계 무대 속에서 활약하고 있다. 그리고 이때 성장한 선수들이 이후 리더에 올라 다방면으로 한국 축구를 이끌고, 또한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다.

2002년 이전에 한국 축구의 전설이었던 차범근의 활약, 그리고 2002년 월드컵을 기점으로 성장한 선수들의 유럽 진출도 K-감독 수출에 영향을 주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맹활약했던 박지성, 토트넘의 이영표가 아시아 축구의 자존심을 지켜왔다. 그리고 다시 이를 보면서 성장한 아시아 랭킹 1위 토트넘 손흥민, 그리고 파리 생제르맹의 이강인, 뮌헨의 김민재 등 유럽 무대에서도 훨훨 날아다니는 선수들이 많다. 실제로 동남아시아에도 손흥민을 응원하는 팬이 많다.


비슷한 문화적 이해 가진 리더에 더 복종, 연봉도 저렴, 가성비 최고의 K-감독


축구는 팀 게임이다. 사람이 하는 것이다. 아시아 축구에 대해 유럽 감독보다 한국 출신 감독이 더 높은 이해도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이들 국가의 축구에 대한 열정은 유럽과 다르지 않지만, 유럽이 클럽과 지역 대항전에 더 열광한다면, 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클럽 리그가 유럽보다는 덜 성숙해 있는 면도 크다. 아시아는 국제대회 등의 준비를 위해 국가 주도적으로 축구를 부흥시키려 많이 노력한다. 특히 근대화를 겪으며 서구 열강의 침입을 받아 민족주의와 국가주의가 발달한 것도 이런 분위기에 한몫하고 있다.

서구가 개인주의인 반면, 아시아 국가들은 집단주의적인 성향이 강하다. 개인의 능력이 뛰어난 사람보다는 조직에 잘 흡수되고 조화를 이루는 사람이 더 선호된다. 서열, 위계질서, 집단 규칙을 어기거나 이에 반하는 사람은 환영받지 못한다.

이는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국민들 또한, 국가대표로서 실력과 행동에 많은 기대를 건다. 이러한 국가주의를 이해하지 못하면 감독은 선수에게 동기부여를 하기 힘들다. 유럽에서도 국가대표는 명예로운 자리지만, 때로는 클럽팀이 가지는 위상이 더 높은 경우도 있고 아시아 국가들에 비하면 그 의미가 절대적이지 않다.

특히 베트남의 경우, 한국과 더욱 문화적인 면을 공유하고 있다. 베트남은 아시아 내에서 중국, 일본, 한국과 더불어 한자 문화권에 속하는 국가 중 하나이다. 한국이 그러하듯 베트남도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문화적 유사성으로 서로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박항서 매직은 감독으로서 그의 실력은 물론이고 같은 문화를 공유한 베트남 선수들의 감정을 이해, 유교문화권에서 바람직하게 여겨지는 리더십을 잘 발휘했고 이를 국가주의로 잘 녹여냈다. 유교문화권에서 스승은 절대적인 존재다.

이렇게 문화적으로도 유럽 출신 감독에 비하면 더 친숙한데 가성비도 좋다. 유럽 감독은 일단 불렀다 하면 몇 십억 원은 훌쩍 넘는 일이 다반사다. 박항서의 2017년 베트남 대표팀 감독을 맡을 당시 연봉은 고작 3억 원 수준이었다. 박항서 매직을 일으키며 베트남 대표팀을 한층 끌어올렸을 퇴임 직전 연봉이 7억 원 중반 수준이었다. 김판곤 감독의 연봉은 13억 원, 신태용은 11억 원가량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파울루 벤투가 18억 원, 클린스만이 약 20억 원을 받는 것을 고려하면 절반 수준이다. 그런데 저 연봉이 동남아시아 국가들 기준에서는 가장 많은 연봉을 주고 모셔간 것이다. 베트남은 박항서 후임 감독으로 투루시에 감독을 선임하면서 보다 많은 연봉을 주었지만, 베트남 축구는 박항서 이전으로 다시 돌아갔다. 유명 선수의 연봉이 수백억 원에 달하는 것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스포츠에 고액의 세금을 투자하기 쉽지 않은 이들 국가로서는 자국 선수들을 잘 이해해 줄 수 있고 실력도 있는데 가성비도 괜찮은 한국 감독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김상식 감독도 모국을 위협하는 스승이 될까?...K-감독, 곳곳에 퍼져 오히려 자국 위협


지난 125일에 열린 23 카타르아시안컵, 조별리그 3차전 경기에서 한국의 클린스만호는 말레이시아의 김판곤호와 맞붙었다. 결과는 3-3 무승부. ‘사상 최고의 선수진 구성이라고 자부했던 한국은 경쟁 상대로도 보지 않았던 말레이시아와 맞붙어 형편없는 졸전을 펼쳤고, 말레이시아는 사상 처음으로 한국과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이날 말레이시아는 축제 분위기였다.

지난달 26일 열린 U-23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한국의 황선홍호와 맞붙은 인도네시아 신태용호는 승부차기 혈투 끝에 승리하며 4강에 진출했다. 두 국가의 전력 차이를 생각할 때, 친선경기를 제외하고 군 면제가 걸린 올림픽 같은 큰 국제대회에서 한국이 인도네시아에 진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사건이다. 이로써 한국은 10회 연속 올림픽 진출이 좌절되었고 지금도 그 혼란을 수습 중이다.

아시아 호랑이라고 불리는 한국 축구는 하루가 멀다고 기량이 하락하고 있는데, 같은 동네에 사는 이웃들의 실력은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축구의 변방이라고 여겨졌던 아시아, 그중에서도 최약체를 면치 못하는 동남아시아 축구가 상향 평준화된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K-감독이 있다. 동남아시아가 원하는 많은 조건을 충족한 채 오늘도 활발히 수출되고 있다.

‘K 리그의 울리 슈틸리케’, ‘전북 현대 역사상 최악의 감독이라는 팬들의 평가 앞에서 스스로 지휘봉을 내려놓은 김상식 감독이 이제 박항서의 뒤를 잇는다. 베트남의 김상식 감독 선임이 박항서 매직에 대한 향수 때문인지, 아니면 진짜로 베트남 축구를 부활시킬 능력이 있는지 김 감독은 스스로를 증명해야 할 시간이다. 혹평과 함께 한국을 떠났지만, 훗날 모국의 발목을 잡는 비수가 될지도 모른다. 진심으로 김상식 매직을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