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올림픽 이슈] 파리 태권도, 발펜싱? 임자, 태권도 뒤돌려차기 제대로 맞아봤어? 태권도의 두 얼굴
-스포츠와 무술은 다른 것, 종합격투기에서도 활약. 실전 태권도의 색다른 모습
[뉴스워커_올림픽 이슈] 2024 파리 올림픽에서 태권도가 한국에 연이은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있다. 지난 7일, 남자 58kg급에서 박태준 선수에 이어, 9일, 여자 57kg급에서 김유진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하며 태권도 종주국의 위상을 다시 한번 드높였다. 특히 김유진 선수는 세계 랭킹 톱5 중 4명을 연이어 물리치는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세계 24위인 김유진은 16강에서 세계 5위의 하티제 일권(튀르키예), 8강에서는 세계 4위 스카일러 박(캐나다), 그리고 준결승에서 세계 1위 뤄중스(중국)을 누르고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에서 세계 랭킹 2위 나히드 키야니찬데(이란)를 완파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로써 한국은 파리 올림픽에서 13번째 금메달을 획득, 2008년 베이징 대회, 2012년 런던 대회와 함께 하계올림픽 단일 대회 최다 금메달 타이 기록을 세웠다. 특히 여자 57kg급에서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16년 만에 금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러한 성과에 국민들의 관심이 다시 한번 태권도로 쏠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올림픽에서 보는 태권도가 전부이진 않다. 사실 태권도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다채롭고 강력한 무술이다. 특히 최근 종합격투기(MMA) 무대에서 태권도의 진가가 드러나면서, 이 한국 전통 무술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발펜싱'이라는 오명을 뒤로하고, 태권도가 어떻게 세계 최고의 격투 무대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태권도는 현재 전 세계 210개국 이상에서 약 8000만 명이 수련하고 있는 세계적인 무술이다. 이는 20년 전과 비교해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해외에서 태권도를 배우는 외국인의 80% 이상이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태권도가 단순한 무술을 넘어 한국 문화의 전령사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태권도의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한국의 메달 획득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는 태권도가 진정한 의미의 세계 스포츠가 되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태권도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군사 무술, 맨주먹에서 스포츠로의 올림픽 정식종목까지, 태권도의 변화무쌍한 여정
태권도의 역사는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다.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각종 무술이 융합되면서 탄생한 이 무술은, 군사적 필요성에 의해 급속도로 발전했다. 당시 최홍희 장군을 비롯한 여러 무술가가 힘을 모아 만들어낸 태권도는 처음부터 실전을 위한 무술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아는 '발펜싱' 태권도가 됐을까? 이건 태권도가 세계화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종의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1973년 세계태권도연맹(WTF, 현 WT)이 설립되고,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되면서 경기 규칙이 크게 바뀌었다. 안전을 위해 위험한 기술들은 제외되고, 점수 획득이 쉬운 발차기 위주로 경기가 이뤄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를 못마땅하게 여긴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태권도의 해석 차이를 두고 여러 분파를 거치며 국제태권도연맹(ITF)을 중심으로 별도의 길을 걸었다. 아니 애초에 올림픽 태권도 보다도 먼저 탄생했고, 먼저 세계로 뻗어나갔다. 간혹 어떤 이들은 ITF 태권도에 대해 북한 태권도라고 잘못 알고 있는 이가 있으나, 최홍희의 일생 후반기, 북한에서의 활동 때문에 생긴 오해다. 태권도가 탄생했을 때 북한지역에서는 태권도라는 것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해서 태권도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게 됐다. 하나는 우리가 올림픽에서 보는 WT 태권도, 다른 하나는 실전성을 강조하는 ITF 태권도다.
톡톡 건드리는 발펜싱? 아니, 태권도는 무술이다. 실전에서 빛나는 태권도의 숨은 매력
태권도가 실전 무술로서 가지는 강점은 무엇일까? 다른 무술과 비교했을 때, 태권도만의 특별한 매력이 있다.
첫째, 태권도의 발차기는 그 어떤 무술보다도 빠르고 강력하다. 특히 회전을 이용한 발차기는 예측하기 어려우면서도 큰 위력을 발휘한다. 이는 실전에서 엄청난 장점이 된다. 상대방이 미처 방어하지 못한 상태에서 강력한 한 방을 먹일 수 있기 때문이다. 태권도의 돌려차기, 뒤돌려차기, 옆차기 등은 다른 무술의 발차기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며, 그 위력 또한 뛰어나다.
둘째, 태권도는 거리 활용에 특화되어 있다. 긴 다리를 이용한 킥은 상대방이 접근하기 전에 공격할 수 있게 해준다. 이는 특히 체격이 작은 사람들에게 유리하다. 힘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기술로 승부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태권도의 앞차기나 돌려차기는 다른 무술의 발차기보다 더 먼 거리에서 공격할 수 있어, 실전에서 큰 이점을 제공한다.
셋째, 태권도의 풋워크는 실전에서 매우 유용하다. 빠르게 들어갔다 나오는 기술은 상대방의 공격을 피하면서 효과적으로 반격할 수 있게 해준다. 이는 마치 무술 영화에서 보던 '경공'을 실제로 구현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태권도 선수들의 발놀림은 다른 무술의 선수들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며, 맞고 견디는 것보다는 애초에 안 맞고 상대를 가격하는 데 유용하다.
넷째, 태권도는 유연성과 균형 감각을 크게 향상시킨다. 이는 단순히 공격력뿐만 아니라 방어력도 높여준다. 유연한 몸으로 상대의 공격을 피하고, 뛰어난 균형 감각으로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태권도의 고난도 발차기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유연성과 균형 감각이 필요하며, 태권도 특유의 스탭은 상대에게 인파이트 공간을 잘 내주지 않는다.
링 위의 발레리나와 옥타곤의 전사, 올림픽 태권도와 MMA 태권도의 다른 매력
올림픽에서 보는 태권도와 종합격투기에서 보는 태권도는 꽤 다르다. 마치 쌍둥이인데 성격이 정반대인 형제 같다할까.
올림픽 태권도는 안전과 공정성에 초점을 맞췄다. 허리 위쪽만 치고 차도 되고, 손으로는 몸통만 칠 수 있다. 얼굴을 손으로 치면 반칙이다. 이런 규칙 때문에 선수들은 최대한 빠르게, 많이 차는 데 집중한다. 그래서 '발펜싱'이란 별명이 붙었다.
반면 MMA에서 쓰이는 태권도는 훨씬 과격하다. 손으로 얼굴을 치는 건 기본이고, 팔꿈치나 무릎으로 공격하는 것도 가능하다. 심지어 상대를 땅에 메치거나 관절을 꺾는 것도 허용된다. 이런 환경에서 태권도 선수들은 자신들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기술을 발전시켰다.
예를 들어, 태권도의 대표적인 기술인 돌려차기는 MMA에서도 자주 사용된다. 하지만 올림픽 태권도에서처럼 닿기만 해도 되는 상황이라 발등으로 차는 게 아니라, 제대로 파워를 전달하기 위해 정강이나 발바닥으로 찬다. 이렇게 하면 더 강한 위력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태권도 특유의 빠른 발놀림을 이용해 상대의 공격을 피하고 반격하는 기술도 MMA에서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결국 같은 태권도라도 어떤 환경에서 쓰이느냐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진다는 거다. 올림픽 태권도가 스포츠로서의 면모를 강조했다면, MMA의 태권도는 실전 무술로서의 본질을 지켜나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나는 피하고 너는 KO, 한 방의 기술로 세계를 제압하다, MMA에서 빛나는 태권도의 위력
"와! 저게 태권도라고요?" MMA 경기를 보다 보면 이런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화려하고 위력적인 발차기로 상대를 제압하는 선수들. 그들 중 상당수는 태권도를 기반으로 한 선수들이다.
태권도를 기반으로 한 선수들이 MMA에서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그야말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그들의 경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태권도 기술이 MMA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생생하게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앤더슨 실바를 들 수 있다. UFC 미들급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그는 태권도 유단자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프런트 킥은 사실 태권도의 앞차기를 MMA에 맞게 변형한 것이다. 이 기술 하나로 그는 수많은 상대를 KO 시켰다. 앤더슨 실바의 프런트 킥은 태권도의 앞차기를 MMA에 완벽히 접목한 예다. 2011년 비토 벨포트와의 경기에서 실바는 마치 뱀이 똬리를 풀듯 순식간에 앞차기를 날렸다. 그의 발이 벨포트의 턱을 강타하는 순간, 경기장은 술렁였다. 벨포트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실바는 극적인 KO승을 거뒀다. 이 장면은 태권도의 앞차기가 얼마나 위력적일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야이르 로드리게스의 회전 발차기는 태권도의 화려함을 그대로 옥타곤에 옮겨놓은 듯하다. 특히 2017년 BJ 펜과의 경기에서 선보인 그의 '스피닝 엘보'는 경기장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로드리게스는 마치 팽이처럼 빠르게 회전하며 날카로운 팔꿈치 공격을 펜의 턱에 꽂아 넣었다. 이 기술은 태권도의 뒤돌려차기를 응용한 것으로, 예측할 수 없는 각도에서 나오는 공격이었다.
안소니 페티스의 'Showtime Kick'은 태권도의 창의성을 극대화한 기술이다. 2010년 벤슨 헨더슨과의 WEC 마지막 경기에서 페티스는 케이지를 발판 삼아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마치 공중에서 멈춘 듯한 자세로 회전하며 오른발 뒤축으로 헨더슨의 얼굴을 가격했다. 이 장면은 마치 무협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태권도의 뛰어차기를 MMA에 맞게 변형한 이 기술은, 많은 팬에게 잊지 못할 장면으로 남았다.
이스라엘 아데산야의 사이드 킥은 태권도의 정확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특히 2019년 로버트 위태커와의 경기에서 그가 보여준 옆차기는 감탄을 자아냈다. 아데산야는 위태커의 공격을 살짝 피하면서 동시에 날카로운 옆차기를 위태커의 복부에 꽂아 넣었다. 마치 레이저 포인터로 과녁을 찍듯 정확했던 이 발차기는, 위태커의 움직임을 둔화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런 선수들의 성공은 태권도 기술이 실전에서도 얼마나 강력한지를 잘 볼 수 있다. 구사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한번 제대로 들어가기만 하면 어지간해선 KO가 안 나오기 힘들 위력을 가지고 있다. 필살기인 것이다. 특히 태권도 특유의 긴 리치와 예측하기 어려운 각도의 발차기는 MMA에서 큰 위협이 된다. 상대방이 생각지도 못한 각도에서 날아오는 발차기는 막기도, 피하기도 어렵다.
올림픽 태권도뿐만 아니라 실전 태권도도 계속 진화한다, MMA와 만나는 21세기 태권도
태권도는 MMA와 만나면서 더욱 진화하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발차기만 하는 게 아니라, 종합적인 격투 기술을 구사하는 무술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태권도와 격투기에 조금 관심 있는 사람은 들어봤을 법한, '강진태권도'라는 새로운 형태의 태권도가 있다. 이는 기존 태권도의 장점은 살리면서 MMA에 적합하도록 변형된 태권도다. 손기술과 그래플링 기술을 접목시켜, 실전에서 더욱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또 ITF 태권도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손기술과 몸통 지르기 등을 강조해 왔다. 이는 MMA에서 매우 유용하게 사용된다. 특히 클린치 상황에서의 니킥이나 엘보 공격은 ITF 태권도의 기술과 매우 유사하다.
이런 변화는 태권도가 실전 무술로서 계속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다. 올림픽 태권도가 스포츠로서의 면모를 강조했다면, 이런 새로운 형태의 태권도는 실전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올림픽 태권도가 스포츠를 위해 무술로서의 파괴력을 낮추는 진화를 겪어왔다면, 실전 태권도는 오히려 MMA라는 새로운 환경을 만나 더욱 강력한 무술로 거듭나고 있다. 상대를 쓰러뜨릴 수 없는 무술은 격투기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태권도의 이런 변화와 발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방과 후 보육시설 태권도는 잊어라! 올림픽에서도, 실전에서도 나쁘지 않은 우리의 무술
지금 파리 올림픽에서 펼쳐지고 있는 태권도 경기를 보면서, 우리는 새로운 시각으로 이 무술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눈앞에 보이는 '발펜싱'만이 태권도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 오히려 그 너머에 더 큰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실 올림픽 종목화 이전의 태권도는 그 화려함과 역동성으로 많은 호응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점수제 및 전자호구의 도입으로 ‘발을 누가 더 빨리 갖다 대느냐?’의 싸움으로 양상이 흘러가면서 ‘발펜싱’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실제로 2012 런던 올림픽 개최를 위한 퇴출 종목 논의에서 단 2표 차로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은 후, 태권도 룰 변경에 대한 논의도 많았다. 운영 수익을 걱정해야 하는데 눈치나 보며 수비나 하다가 반격하여 점수를 따내는 편이 경기 운영 자체에는 더 좋았기 때문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을 딴 문대성 선수의 화려한 마무리 때문에 잠깐 논란은 줄어들었지만, 꾸준히 나오고 있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올림픽 태권도, 방과 후 아이들 보육 시설로 전락한 태권도장만 기억하고 있다면, 그것은 태권도 절반의 모습 밖에는 보고 있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MMA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태권도의 모습, 필살기 한방으로 상대를 넉다운시키는 그 기술이 태권도라는 것을 아는 순간, 가슴이 뜨거워진다.
태권도의 파괴력이 늘 무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저 학창 시절에 잠깐, 그리고 올림픽 선수들이나 열심히 하는 나약한 무술은 아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안겨주는 종목의 모습으로의 태권도의 매력과 종합격투기에서 확실한 매력을 가진 실전 무술로의 태권도. 이 두 태권도의 모습은 매우 다르지만, 그것이 모두 우리의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두 얼굴의 태권도를 알고 올림픽 태권도 경기를 관전하는 것은 또 다른 즐길 거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