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승강전, 전북은 살고 이랜드는 죽는가... '반쪽짜리 승강제'가 K리그의 최선인가?
승강제 도입 10년, 전통 강호도 떨고, 도전자도 좌절하고... 10년간 쌓인 부작용과 교훈
지난 1일, 대구가 충남 아산을 상대로 살아남은 가운데, K리그1의 마지막 자리를 놓고 벌인 2024년 마지막 K리그 경기이자, 승강 플레이오프가 8일 전북의 잔류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전북현대는 서울이랜드와의 2차전에서 2-1로 승리하며 1, 2차전 합계 4-2로 K리그1 잔류에 성공했다. 전북은 1994년 창단 이래 처음으로 강등 위기에 몰렸으나 가까스로 낙오를 면했고, 서울이랜드는 창단 10주년을 맞아 도전한 첫 승격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이번 승강 플레이오프는 단순한 경기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K리그가 2013년 승강제를 도입한 이후 처음으로 '전통 강호'가 강등 위기에 처했고, 2부 리그의 신생팀이 1부 승격에 도전하는 극적인 대결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이는 승강제 도입 10년을 맞은 K리그가 직면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특히 김두현 전북 감독이 부담감에 위염 증세로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하는 등 승강제가 구단과 선수들에게 미치는 압박감도 여실히 드러났다. 팬들에게는 즐거움을 주지만, 링 위에 올라선 자들에겐 가히 살얼음판의 공포와 다름없는 승강제. 현장에서는 ‘누굴 위한 것인지?’라는 아우성이 터져 나올 법도 하다. 이날의 전북이 그랬다.
매출 500억 매머드 구단의 생존 사투, '무적함대' 전북도 떨게 만든 승강제의 공포
체력이 빠진 호랑이는 배고픈 치타에게 꼬리를 밟혀 잡아먹힐 것인가? 전주성의 마지막 전투는 그 어느 때보다 절박했다. 12월의 추운 겨울, 전북 현대는 창단 이래 가장 위태로운 순간을 맞이했다. 9차례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던 그라운드에서, 이번에는 강등이냐 잔류냐를 놓고 사투를 벌여야 했다. 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 모인 3만여 관중들은 평소와는 다른 긴장감 속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 1차전에서 2-1로 이긴 전북은 무승부만 거둬도 잔류가 확정되는 상황이었지만, 누구도 방심할 수 없었다.
전반 막판, 서울 이랜드의 브루노 실바가 헤더골을 터트리며 전주성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1차전의 리드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나 후반 4분, 티아고가 동점 헤더골을 꽂아 넣으며 균형을 맞췄고, 경기 종료 직전 문선민이 쐐기골을 터트리며 승리를 확정 지었다. 2-1 역전승. 전북은 2차전까지 모두 이기며 합계 4-2로 K리그1 잔류를 지켜냈다. 문선민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관제탑 세리머니'로 팬들과 기쁨을 나눴지만, 경기가 끝난 후 일부 팬들은 '김두현 감독 퇴진'을 요구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번 시즌 전북의 추락은 충격적이었다. 2009년 첫 우승 이후 2010년대에만 6차례나 우승을 차지했고, 특히 2014년부터 2021년까지 8년 동안 무려 7번의 우승을 쓸어 담았던 전북이었다. 한 해 팀 연봉만 198억원에 달하는 K리그 최고의 부자 구단이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떨어진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시즌 중반 단 페트레스쿠 감독이 사임하고 김두현 감독이 부임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승강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김두현 감독은 극심한 부담감에 위염 증세로 병원에 입원하는 등 팀 전체가 최대 위기를 맞았다.
이날의 승리로 전북은 강등이라는 치욕스러운 역사는 피했지만, 명가의 자존심은 이미 크게 훼손된 뒤였다. "다시는 이런 경기를 하고 싶지 않다"는 김두현 감독의 말처럼, 전북은 이번 시즌을 교훈 삼아 재도약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주장 박진섭은 "팬들에게 죄송하다. 내년에는 우승에 도전하는 팀이 되겠다"고 다짐했지만, 전북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024년의 마지막 전투는 끝났지만, 전주성의 진정한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돈도 실력도 필요해, 그런데 둘 다 안돼?' K리그 승강제의 잔인한 현실과 딜레마
승강전의 짜릿함을 만끽하는 팬들과는 다르게, 현장에서는 아우성이 울려 퍼진다. "전북 현대 같은 팀들이 내려가면 한국 축구 퇴보입니다. 지금 누가 우승하는지보다 누가 강등되는지 더 관심 있어요." 김학범 감독의 한탄 어린 말은 K리그 승강제의 민낯을 정확히 지적한다. 10년 전 승강제를 도입할 때만 해도 이런 상황까지 올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연간 운영비 500억 원대의 K리그 최고 부자 구단이 강등권에서 헤매는 모습은, 현 승강제가 가진 구조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현행 규정상 한 팀이 자동 강등되고 두 팀이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르면 강등 확률은 25%입니다. 이러면 육성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닙니다." 김학범 감독의 또 다른 지적이다. K리그1 12개 구단 중 매년 3개 구단이 강등 위기에 내몰리는 상황에서, 장기적인 발전 계획은 사치가 되어버린다. 당장의 생존이 걸린 상황에서 누가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시즌 초반부터 하위권에 머무는 팀들은 6월부터 이미 생존을 위한 사투에 돌입한다. 이 과정에서 유망주 육성이나 팀 컬러 구축같은 중장기 계획은 모두 뒷전으로 밀린다. 황선홍 대전 하나시티즌 감독은 "강등 때문에 6월에 감독이 9, 10명 바뀌면 좋은 지도자가 안 나온다"며 현 시스템의 부작용을 지적했다. 1부 리그 구단들은 강등을 피하기 위해 즉시 전력 보강에만 집중하게 되고, 이는 결과적으로 한국 축구의 미래를 위한 투자를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K리그의 현실은 더욱 가혹하다. K리그1과 K리그2의 중계권료 차이는 10배 이상이며, 광고 수입과 입장 수입의 격차는 더욱 크다. 강등된 구단은 급격한 수입 감소로 인해 선수단 정리가 불가피하다. 반대로 승격한 구단은 1부 리그 생존을 위한 무리한 투자로 재정적 부담을 떠안게 된다. 그리고 그 끝은 파산이다. 이는 K리그 전체의 건강한 발전을 저해하는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K리그의 구조적 불균형이다. K리그1은 12개 팀, K리그2는 13개 팀으로 운영되어 애초에 균형이 맞지 않는다. 또한 K리그2 구단들의 열악한 인프라와 재정 상황은 1부 리그와의 격차를 더욱 벌리는 요인이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건강한 경쟁'이 이뤄지기 어렵다. 승강제는 공정한 경쟁을 표방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승강제 도입 배경, '영국에서 시작된 잔혹동화' 한국은 왜 승강제의 늪에 뛰어들었나
2013년, K리그가 승강제 도입을 결정했을 때 많은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당시 K리그는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었고, 이는 구단의 안정적인 운영을 보장해 주는 장치였다. 하지만 리그의 긴장감이 떨어지고, 하위권 팀들의 동기부여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특히 시즌 후반부 하위권 팀들의 경기가 실질적인 의미를 잃어버리면서 관중들의 관심도 급감했다.
정몽준 당시 대한축구협회 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승강제 도입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한국 축구가 발전하려면 승강제는 필수"라는 그의 주장은 설득력을 얻었고, K리그는 2013년부터 K리그 클래식(현 K리그1)과 K리그 챌린지(현 K리그2)의 2부 리그 체제를 출범시켰다. 도입 초기에는 자동 강등 없이 승강 플레이오프만 실시하는 등 완만한 방식을 택했다.
K리그는 스코틀랜드의 시스템을 벤치마킹했다. 당시 리그 규모가 작고 구단들의 체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 완전한 자동 승강제가 아닌 '안전장치'로서의 승강 플레이오프 제도를 채택했다. 1부 리그 최하위 팀은 자동 강등되지만, 그 위의 두 팀에게는 승강 플레이오프를 통해 잔류할 기회를 주는 방식이었다. 이는 급격한 변화로 인한 충격을 완화하고, 구단들이 적응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선택이었다.
시행 초기에는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었다. K리그2 구단들의 열악한 재정과 인프라로 인해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1부 리그 팀에 크게 밀리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강등된 구단이 겪는 재정적 어려움도 예상보다 컸다. 하지만 K리그는 이러한 문제들을 하나씩 보완해 가며 현재의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10년이 지난 지금, K리그의 승강제는 여전히 진화 중이다.
각국의 승강제, 영국은 낙하산 주고, 독일은 팬이 주인되고... K리그는 왜 이렇게 밖에 못 하나
프리미어리그의 승강제는 가혹하지만 그만큼의 보상이 있다. 매년 하위 3팀이 자동으로 강등되는 대신, 강등팀에게는 약 800억원의 '낙하산 지원금'이 제공된다. 이는 2부 리그에서의 적응을 돕고, 재정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장치다. 또한 승격을 노리는 챔피언십의 3~6위 팀들은 플레이오프를 통해 마지막 한자리를 놓고 경쟁하는데, 이는 시즌 막판까지 리그의 흥미를 유지하는 묘수가 되고 있다.
독일의 분데스리가는 더욱 흥미로운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50+1 규정'을 통해 구단 지분의 51% 이상을 팬들이 소유하도록 강제한다. 이는 구단이 일부 자본가의 장난감이 되는 것을 막고, 지역 사회와의 유대를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 강등되더라도 팬들의 지지 속에 재기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것이다. 분데스리가는 하위 2팀 자동 강등, 16위 팀의 승강 플레이오프 참가라는 비교적 온건한 방식을 택하고 있다.
프랑스는 최근 과감한 변화를 시도했다. 2023-24시즌부터 리그1의 팀 수를 18개로 줄이고, 대신 강등팀을 4개로 늘린 것이다. 리그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반면 스페인은 전통적인 3팀 자동 승강제를 유지하면서도, 재정적 페어플레이 규정을 통해 구단들의 무리한 투자를 제한한다.
일본 J리그의 사례는 우리에게 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J1리그는 하위 3팀 자동 강등, J2리그는 상위 2팀 자동 승격에 더해 3~6위 플레이오프라는 K리그보다 강력한 시스템을 운영한다. 더 주목할 점은 J3 리그까지 프로리그로 운영하며, 각 지역 리그와도 승강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축구의 저변을 넓히고 지역 축구를 활성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단점에도 불구하고… '탱킹? 그런 건 미국에서나 하세요' 이게 있어 K리그가 살아있다
승강제가 K리그에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책임 경영'의 정착이다. 과거에는 성적이 나쁘더라도 구단주와의 친분이나 내부 사정으로 자리를 보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강등권으로 떨어지면 감독은 물론 구단 수뇌부까지 교체되는 것이 당연시된다. 이는 프로 스포츠의 기본 원칙인 '실력으로 평가받는다'는 가치를 정착시켰다.
K리그2 구단들의 성장도 주목할 만하다. 2013년 승강제 도입 초기만 해도 1부와 2부의 실력 차이는 현격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올 시즌 서울 이랜드는 전북을 상대로 47%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대등한 경기를 펼쳤고, 충남 아산은 1차전에서 대구를 4-3으로 제압하는 저력을 보였다. 2부 리그 구단들의 경기력이 상향평준화된 것이다.
승강제는 유소년 육성 시스템도 변화시켰다. 과거에는 당장의 전력 보강을 위해 외국인 선수나 중견 선수 영입에만 치중했다면, 이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유소년 시스템에 투자하는 구단들이 늘어났다. 2부 리그 구단들은 한정된 예산 내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자체 육성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무엇보다 승강제는 K리그에 진정한 '드라마'를 선사했다. 미국의 프로스포츠처럼 프랜차이즈 시스템이었다면, 하위권 팀들은 다음 시즌 신인 드래프트 순위를 위해 일부러 경기를 져버리는 '탱킹'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탱킹이란 더 좋은 신인 선수를 지명할 수 있는 드래프트 순위를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성적을 떨어뜨리는 행위를 말한다. 프랜차이즈 시스템에서는 최하위 팀에게 다음 시즌 신인 선발권을 먼저 주는 제도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다. 하지만 K리그에서는 그럴 수 없다. 강등의 위험 앞에서는 그 누구도 일부러 지는 경기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매 경기가 생존이 걸린 치열한 승부가 되었고, 이는 팬들에게 더 큰 감동을 선사했다.
팬들의 응원 문화도 변화했다. 1부 리그 팬들은 강등의 위기 속에서도 끝까지 팀을 지지하며 더 강한 유대감을 형성했고, 2부 리그 팬들은 승격의 꿈을 키우며 새로운 희망을 노래했다. 이제 K리그의 팬들은 단순한 구경꾼이 아닌, 팀과 함께 웃고 우는 진정한 동반자가 되었다.
승강제를 버릴 수는 없다면… 전북도 떨게 만든 승강제, 이제는 우리가 떨게 만들어야 한다
"이제 다시 1부 리그를 16개 팀으로 늘려야 합니다." 김학범 감독의 제안은 K리그의 새로운 10년을 위한 첫 번째 과제를 제시한다. K리그1의 확대는 단순히 팀 수를 늘리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강등권 경쟁의 압박을 완화하고, 구단들이 좀 더 긴 호흡으로 팀을 운영할 수 있게 만들어줄 것이다. 현재 여러 기업과 지자체가 K리그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충분히 실현 가능한 방안이다.
K리그만의 독특한 재정 지원 시스템도 필요하다. 영국의 '낙하산 지원금'을 벤치마킹하되, 우리 실정에 맞는 방식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강등된 팀에게는 3년간 점진적으로 감소하는 지원금을 제공하고, 승격한 팀에게는 초기 정착금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는 급격한 재정 충격을 완화하면서도, 구단들이 중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독일의 '50+1 규정'에서 배울 점도 있다. 물론 당장 이 제도를 그대로 도입하기는 어렵겠지만, 구단과 지역 사회의 유대를 강화하는 방안은 반드시 필요하다. 시민구단의 경우 지자체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기업구단은 연고 지역에 대한 투자와 공헌을 늘리는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구단이 강등되더라도 지역의 지지 속에 재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일본의 사례도 교훈이 된다. J리그는 J3까지 프로리그로 운영하며, 각 지역 리그와의 유기적인 연계를 통해 축구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K리그도 K3, K4리그와의 연계를 강화하고, 장기적으로는 3부 리그의 프로화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2027시즌부터 도입되는 2부 리그와의 연계가 주목되는 부분이다. 이는 한국 축구의 피라미드를 더욱 튼튼하게 만드는 길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행 승강 플레이오프 제도의 개선도 필요하다. 현재의 방식은 1부 리그 팀에게 지나치게 유리하다는 지적이 있다. 이를 좀 더 공정한 방식으로 바꾸되, 극적인 재미는 살리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프랑스처럼 과감한 개혁을 시도할 수도 있고, 스페인처럼 재정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12월, 전주성의 마지막 승강전이 우리에게 던진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승강제는 K리그에 무엇을 가져다주었는가?" 비록 많은 부작용이 있었지만, 승강제가 한국 축구를 한 단계 발전시켰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나은 승강제를 만들어가야 한다. 전북과 서울 이랜드의 대결이 보여준 것처럼, 1부와 2부의 실력 차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팬들의 즐거움과 구단의 건강이 공존하는 앞으로의 10년, K리그가 그려낼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