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언 하얼빈, 강추위도 특권, 한·중·일 메달 독과점, 불평등한 동계 아겜 폐지가 정답?

사우디는 사막에 빙판 놓겠다는데... 계륵 같은 동계 아시안 게임의 미래는?

2025-02-07     권용진
불평등은 시설 유지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루지, 스켈레톤, 봅슬레이 등 썰매 종목의 경우 아시아에서는 최근까지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시설이 유일한 국제급 경기장이었다. 1972년 삿포로 동계올림픽 때 만들어진 슬라이딩 트랙은 나가노 시설이 생기자 곧바로...[본문 중에서]

끝물 한파가 한창인 가운데, 47억 아시아인의 겨울 축제를 표방하는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이 오늘(7) 오후 9시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의 국제 컨벤션 전시 스포츠센터에서 개막을 앞두고 있다. 8년 만에 열리는 이번 대회에는 역대 최다인 34개국 1,275명의 선수가 참가한다. 그러나 개막을 앞둔 예선 경기들의 결과는 아시아 동계스포츠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실업팀이 단 한 곳밖에 남지 않은 한국 아이스하키는 예선에서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였다. 김도윤 감독이 이끄는 여자 대표팀은 홍콩을 8-0으로, 태국을 11-0으로 제압했고, 남자 대표팀 역시 대만을 14-1로 대파했다. 베테랑 공격수 김상욱은 혼자 36도움을 기록하며 기량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큰 점수 차로 패할 것을 우려해 본선 출전권조차 받지 못했던 한국 아이스하키다. 그런 한국이 아시아에서는 강호로 군림하는 현실은 아시아 동계스포츠의 수준을 가늠케 한다.

이런 가운데 2029년 동계 아시안게임 개최지로 선정된 사우디아라비아의 도전은 새로운 화두를 던진다. 700조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해 사막 한가운데 설원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동계스포츠의 본질적 불평등성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제기한다. 네팔, 부탄과 같이 자연환경은 갖췄으나 경제적 한계로 참여조차 못 하는 국가들과, 자본의 힘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내려는 산유국의 대비는 동계스포츠가 지닌 구조적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삿포로 동계 아겜의 교훈, 32개국 중 한··일이 메달 독식, 일각에서는 폐지론도...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한국에서 동계스포츠 실업팀들이 하나둘 문을 닫았다. 아이스하키의 경우 2021년 대명 킬러웨일즈, 2023년 하이원이 차례로 해체되어 이제는 안양 한라 단 한 팀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동계스포츠 강국을 자처하는 한국의 현실이 이러할진대,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사정은 더욱 열악하다. 2017년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의 참가국 수와 메달 분포를 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삿포로 대회에서 일본은 금메달 27, 은메달 21, 동메달 26개로 총 74개의 메달을 쓸어 담았다. 2위 한국이 금메달 16개를 포함해 총 50, 3위 중국이 금메달 12개를 포함해 총 35개를 차지했다. 4위 카자흐스탄이 금메달 9개를 포함한 32개의 메달로 그나마 체면을 유지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동메달 단 1개를 획득한 5위 북한이 메달을 획득한 마지막 국가였다. 그 아래는 단 한 국가도 메달을 따지 못했다. 참여국 32개국 중 메달을 가져간 나라가 고작 5개국에 불과했다. 전체 메달의 83%를 한··일이 독식했고, 나머지도 대부분 카자흐스탄이 가져갔다.

더욱 씁쓸한 것은 동계스포츠의 불평등이 자연환경과 경제력이라는 이중의 장벽으로 구조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히말라야를 품은 네팔과 부탄은 겨울이면 눈 쌓인 산맥이 장관을 이루지만, 선수 육성은커녕 기본적인 훈련 시설조차 갖추지 못했다. 반면 부유한 사우디아라비아는 돈으로 자연을 극복하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700조 원을 투입해 사막 한가운데 건설될 네옴시티에 인공 설원을 만들겠다고 한다. 자연이 준 혜택조차 자본의 힘 앞에서는 무력해지는 순간이다.

실제로 동계 아시안게임 전체 역사를 통틀어 메달을 획득한 국가는 고작 10개국에 불과하다. 이란과 레바논이 서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메달을 따낸 국가이며, 그마저도 이란의 메달은 일본과 중국이 불참한 종목에서, 레바논의 메달은 오스트리아 출신 귀화 선수가 획득한 것이었다. 우즈베키스탄의 금메달도 세계적 수준의 피겨스케이팅 선수 한 명이 거둔 특별한 성과였을 뿐이다.

몽골과 키르기스스탄의 메달도 들여다보면 더욱 참담하다. 이들이 획득한 메달은 대부분 참가국이 3~4개국에 불과한 종목에서, 혹은 다른 팀이 실격되거나 기권하는 바람에 얻어진 것들이었다. 실격만 당하지 않으면 동메달은 따게 되는 극단적인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이러한 불평등은 시설 유지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루지, 스켈레톤, 봅슬레이 등 썰매 종목의 경우 아시아에서는 최근까지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시설이 유일한 국제급 경기장이었다. 1972년 삿포로 동계올림픽 때 만들어진 슬라이딩 트랙은 나가노 시설이 생기자 곧바로 철거되었다. 유지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썰매 종목에서 선수를 한 번이라도 올림픽에 출전시켜 본 아시아 국가는 한국, 일본, 중국 등 8개국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대부분의 선수는 자비를 털어 참가했다.

이 같은 현실은 동계스포츠가 얼마나 극심한 빈부 격차의 스포츠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자연환경이라는 태생적 한계는 물론, 그나마 주어진 자연환경조차 경제력 없이는 활용할 수 없는 것이 동계스포츠의 냉혹한 현실이다. 2011년에 카자흐스탄에서 개최됐던 대회를 제외하고 한··일 삼국이 계속 돌아가면서 개최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폐지론이 나오는 이유기도 하다.


··일의 겨울 특권, 돈 없어 못 하기도카자흐스탄 의외의 선전 이유는?


유럽과 동북아시아는 같은 위도 대임에도 완전히 다른 겨울을 맞이한다. 하얼빈은 이탈리아 밀라노와 비슷한 위도(북위 45)에 위치해 있지만, 1월 평균기온은 무려 20도 가까이 차이가 난다. 하얼빈의 영하 17.3도와 밀라노의 2.5. 이런 극단적 차이를 만드는 것이 바로 편서풍이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부는 바람이 만들어 낸 대륙성 기후는 동북아시아를 겨울 스포츠의 최적지로 만들었다.

일본은 이런 자연환경에 경제력까지 더해 아시아 동계스포츠의 종주국으로 자리 잡았다. 홋카이도의 풍부한 적설량과 G2 시절부터 이어온 경제력을 바탕으로 동계스포츠 전 종목에서 고른 성적을 내고 있다. 빙상과 설상을 가리지 않는 일본의 경쟁력은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74개의 메달을 획득한 저력의 원천이다.

중국은 광활한 영토가 주는 이점을 십분 활용했다. 하얼빈을 비롯한 동북 3성의 혹한과 국가주도의 체계적인 투자가 만나 새로운 동계스포츠 강국으로 급부상했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최를 전후로 더욱 가속화된 중국의 동계스포츠 굴기는 이제 세계무대까지 위협하고 있다.

한국은 다소 특이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삼면이 바다인 반도 국가임에도 대륙과 편서풍의 영향을 받아 동위도 대비 겨울이 매우 춥다. 서해와 동해의 영향으로 해안 지역에 많은 눈이 내리기도 하고 내륙은 기온이 낮아 얼음이 잘 녹지 않는다. 평창이 동계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지리적 특성 덕분이다. 여기에 스포츠 강국으로서의 자부심과 군 면제라는 특수한 동기가 더해져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등 특정 종목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유일한 예외로 꼽히는 카자흐스탄은 구소련의 유산을 물려받은 케이스다. 소련 시절 구축된 체육 인프라와 선수 육성 시스템이 독립 후에도 이어져 왔다. 실제로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게임에서는 개최국 프리미엄까지 더해져 전체 메달 70, 금메달 32개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동계 스포츠는 조건이 까다롭다. ··일 삼국과 카자흐스탄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의 메달 사냥이 거의 전무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겨울이라도 있는 네팔과 부탄 등의 국가와는 달리, 적도 부근에 있는 동남아 국가들은 환경과 자본 모두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용감하게 사막 한가운데 빙판을 놓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좋은 빙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전기가 필요하다. 동계스포츠는 자연환경이라는 신의 선물에 자본이라는 인간의 노력이 더해져야만 꽃피울 수 있는 분야다.


러시아의 향수, 안중근 의사, 만주의 비극 731... 100년 전 상처가 녹아드는 하얼빈의 겨울


중국이 처음으로 동계 아시안 게임을 개최한 장소 역시 하얼빈이었다. 1996, 북한의 갑작스러운 포기로 인한 예상치 못한 개최였다. 경제난에 시달리던 북한이 대회 개최를 포기하자, 급하게 대체지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하얼빈과 강원도가 거론됐다. 결국 하얼빈이 선정되면서 중국은 처음으로 동계 아시안게임을 개최하게 됐다. 29년이 지난 지금, 하얼빈은 다시 한번 대회를 맞이하고 있다.

이 도시가 품은 역사는 깊다. 만주족의 터전이었던 이곳은 '그물을 말리는 곳'이라는 뜻의 만주어 '할빈'에서 이름을 따왔다. 1898년 러시아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연결하면서 근대 도시로 발전했고, 이후 러시아와 일본이 이 지역의 패권을 두고 각축을 벌였다. 지금도 성 소피아 성당 같은 러시아풍 건축물들이 도시 곳곳에 남아있다.

한국인들에게 하얼빈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의거지이자, 일제의 731부대가 만행을 저지른 아픔의 현장이기도 하다.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의 의거가 일어난 장소다. 태극마크의 무게감을 느낀다"는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김현겸의 말은, 이 도시가 가진 역사적 무게를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이곳에서 태극마크를 다는 것은 단순한 스포츠 경기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하얼빈의 겨울은 매섭다.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 속에서 '빙성'이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다. 매년 1월이면 열리는 빙등축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얼음과 눈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축제의 장이 된다. 이런 하얼빈의 겨울이 이번에는 한··일 삼국의 상처를 녹이는 따뜻한 무대가 될 수 있을까.

의미 있는 것은 이번 대회가 한··일 삼국의 새로운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던 이 도시에서, 이제는 스포츠를 통해 화해와 협력의 새 장을 열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731부대의 잔혹한 실험이 있었던 자리에 지금은 기념관이 들어서 있고, 안중근 의사의 의거 현장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공간이 되었다. 특히 한국 선수들에게 이번 대회는 단순한 메달 획득을 넘어, 선열들의 의지를 되새기며 태극마크의 진정한 의미를 가슴에 새기는 기회가 될 것이다.


계륵 같은 동계 아겜, 폐지론에도 불구,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 강추위 가고 봄은 올까?


동계 아시안게임이 '아시아의 축제'를 표방하지만, 실상은 한··일 삼국의 잔치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이러한 지적은 메달의 극심한 편중 현상이 대회가 거듭될수록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일면 타당해 보인다. 더구나 이번 대회는 2021년 예정됐던 대회가 코로나19로 무산된 후 4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개최지 선정도 난항을 겪었다. 한국은 평창 올림픽과 연계해서 강원도에 유치하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신청하지 않았고, 하얼빈이 단독 선정되었다. 하계 아겜에 비해 비중이 떨어지는데, 돈은 많이 드는 이 대회를 적극적으로 가져가야 할 실질적 이득이 많지 않은 것도 선정 난항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이 대회를 지속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동계스포츠는 하계스포츠와 달리 선수층이 극히 얇다. 특히 전통적으로 동계 스포츠에 강한 유럽에 크게 밀리는 아시아다. 동계 아겜은 유럽에 비하면 수준이 높지 않다. 선수 육성의 관점에서 보면, 동계 아시안게임은 단순한 메달 레이스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과 달리, 이 대회는 아시아의 신생 선수들이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유일한 무대다. 참가 기회조차 없다면 선수 육성은 더욱 요원해진다. 실제로 일본은 홋카이도를 중심으로 한 체계적인 선수 육성으로 동계스포츠 전 종목에서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반면 실업팀 해체로 선수 육성이 중단된 한국의 아이스하키는 밀라노 동계올림픽 출전권조차 획득하지 못했다. 그나마 한국이 이 정도니

그러나 주목할 점은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다. 이번 대회에는 캄보디아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처음으로 참가했다. 비록 메달권과는 거리가 멀지만, 새로운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2029년 사우디의 네옴시티 동계 아시안게임이 IOC의 비판을 받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동계스포츠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시도로 볼 수도 있다.

네팔, 부탄과 같이 자연조건을 갖춘 국가들에는 동계스포츠의 가능성을 모색할 기회이며, 기존 강국들에는 차세대 선수들을 시험할 수 있는 장이다. 한국이 평창 올림픽의 유산을 바탕으로 이들 국가의 동계스포츠 발전을 지원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스포츠 강국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길일 것이다.

동계 아시안게임은 분명 '계륵'이다. 그러나 이 계륵은 아시아 동계스포츠의 미래가 걸린 소중한 자산이다. 분명 우리 팬들은 이번 대회에서 우리나라가 더 많은 메달을 따고 종합 1위에 오르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이 대회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국가가 골고루 메달 맛을 볼 수 있는 대회로 거듭나야 한다. 그래서 더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아겜보다 더 넓은 동계 스포츠 무대에 당당히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때까지 이 불편한 계륵은 우리 곁에 남아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