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김연경 기다릴 여유 없는 배구계, ‘영웅’ 발굴하지 말고 만들어야 하는 시대
저출산에 좁아진 선수풀, 스토리텔링, 엔터테인먼트 수단 통한 스타 육성 접근법
라스트 댄스를 이어가고 있는 김연경의 화려한 춤 뒤에는 짙은 어둠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 2월 13일, 흥국생명이 GS칼텍스를 3-1로 꺾은 직후 공식 인터뷰에서 김연경은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시즌이 끝나면 은퇴한다. 팀 성적과 관계없이 결정한 사안"이라며 자신의 거취를 명확히 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꾸준히 나왔던 김연경 은퇴설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단순한 한 선수의 은퇴가 아니다. 한국 여자배구가 지난 15년 동안 의존해 왔던 가장 강력한 브랜드가 사라진다는 의미다.
김연경 없는 흥국생명은 어떤 모습일까. 3월 6일 열린 V리그 여자부 6라운드 경기에서 흥국생명은 현대건설을 상대로 세트 스코어 1-3으로 패배했다.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한 뒤 주축 선수들을 쉬게 한 경기였지만, 김연경의 공백이 확연했다. 팀의 중심을 잡아줄 스타 플레이어가 없는 상황에서 경기력은 흔들렸고, 결국 현대건설이 비교적 손쉽게 승리를 가져갔다. 올 시즌 정규리그 1위를 확정한 흥국생명이지만, 김연경 없는 경기력이 앞으로의 리그 경쟁력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을 남긴 경기였다.
사실 배구계도 김연경의 은퇴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새로운 스타를 자연스럽게 배출할 수 있는 구조가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기존의 선수 육성이나 유망주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하고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저출산으로 인해 선수풀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데다, 여자배구의 시스템은 아직 특정 선수에게 의존하는 구조를 벗어나지 못했다. 다시 말해, 이상적으로는 "스타 없이도 유지되는 리그"를 만들어야 하지만, 지금 당장은 김연경을 대체할 수 있는 스타를 찾아야 한다. 문제는 그것조차 쉽지 않다는 데 있다. 한 명의 선수가 리그의 흥망을 좌우하는 구조. 여자배구가 당면한 현실이다.
‘영웅’이 전부는 아니라지만... 스타 없이는 배구도 없다, 중요성은 인정해야
스포츠에서 스타가 전부는 아니다. 한 명의 영웅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없고, 장기적으로는 리그 전체가 균형 잡힌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특히 한국 여자배구처럼 특정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종목에서는 더욱 그렇다. 김연경이 10년 넘게 한국 배구의 상징이 된 이유는 단순히 실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그는 단순한 스타가 아니라 여자배구 흥행의 중심이었다. 경기력뿐만 아니라 강한 캐릭터, 해외에서 쌓아온 커리어, 그리고 독보적인 영향력까지 갖췄다. 사실상 여자배구가 현재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그렇다면 김연경이 떠난 이후, 대체할 만한 존재가 있는가. 답은 쉽지 않다.
여자배구가 지금의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데는 김연경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4강, 2021년 도쿄 올림픽 4강이라는 성과는 그의 존재 없이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국내 리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24-25 V리그 전반기 기준, 여자부 시청률 상위 5경기 중 3경기가 흥국생명이 포함된 경기였고, 흥국생명의 홈 관중 수는 리그 평균을 압도했다. 배구계에서 김연경이 가지는 상징성은 단순한 선수 한 명의 영향력을 넘어섰다.
리그가 특정 선수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스타 없이도 흥행이 지속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상적인 접근이다. 현실적으로 대중 스포츠에서 스타 플레이어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프로야구에서 이승엽이, K리그에서 박지성이, 그리고 지금의 손흥민이 그러했듯이, 대중들은 스포츠 자체도 좋아하지만, 특정 선수의 캐릭터와 서사를 통해 더 강한 흥미를 느낀다. 그리고 그 스타들이 사라졌을 때, 대체할 선수가 자연스럽게 등장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여자배구에는 그런 대체자가 없다. 차세대 스타로 지목되는 선수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이 김연경처럼 리그의 상징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즉, 여자배구는 단순히 "스타 의존도를 줄이자"는 말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현실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단순히 스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지금 배구계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김연경 이후를 준비할 시간이 없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스포츠 리그가 특정 스타 선수의 은퇴를 예상할 경우, 몇 년 전부터 차세대 스타를 육성하고, 자연스럽게 세대교체를 진행한다. 하지만 여자배구는 그러한 과정이 없었다. 지금 당장 김연경이 떠난 후, 리그의 간판이 될 선수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은 상당한 위기 요소다. 그렇다면 결국 배구계는 김연경 이후를 위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순히 차세대 스타가 나오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여자배구가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다.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선수라는데... 계속 기다릴 것인가, 만들 것인가?
스포츠에서 스타는 저절로 나타나지 않는다. 실력 있는 선수가 언젠가 자연스럽게 대중의 관심을 끌 것이라는 믿음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일본 덴소 에어리비즈 감독 다츠가와 미노루의 언사처럼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선수’를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수동적으로 영웅이 나오기를 기다릴 수밖에는 없을까? 현실적으로 스타는 단순히 경기력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능동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줄 환경을 만들고, 팬들이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는 구조를 형성해야 한다. 즉,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배구계가 참고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바로 브라질 배구다. 브라질은 특정 선수 한 명에게 의존하는 구조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새로운 스타를 배출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미디어 노출을 적극 활용하고, 선수들의 개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대표적인 예가 브라질 대표팀의 마케팅 전략이다. 브라질은 단순히 경기력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선수 개개인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방식으로 흥행을 유도했다. 자연스럽게 선수들 간의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었고, 팬들은 특정 선수에 몰입하면서 배구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지금 배구계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단순히 "잘하는 선수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선수 개개인이 자연스럽게 주목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단순한 경기력 중심의 스포츠가 아니라, 선수들의 서사를 강조하는 스포츠로 바뀌어야 한다. 팬들이 특정 선수의 성장 과정에 몰입하거나, 스토리텔링을 조명하는 콘텐츠를 기획하거나 노출시키고 라이벌 구도를 흥미롭게 느낄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21세기 방식의 스타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BTS나 블랙핑크도 우연은 아냐, 철저한 매니지먼트와 기획. 스타성을 발굴하라!
스타는 단순히 경기력만으로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기획되고, 만들어지는 시대다. 아이돌 육성 시스템도 참고할 만하다. BTS나 블랙핑크도 처음부터 글로벌 스타였던 것이 아니다. 철저한 기획과 브랜드 전략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이 자연스럽게 스타가 되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어떻게 하면 이 선수를 더 효과적으로 노출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스타 육성에는 여러 방식이 있다. 대표적으로 스포츠에서는 선수들의 스타일과 개성에 따라 스타가 형성된다. 이에 따라 스타 유형을 구별하고, 개성에 맞게 육성하는 전략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크게 카리스마형, 노력형, 천재형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카리스마형 스타는 강한 존재감과 리더십으로 팬들을 사로잡는다. 대표적으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이승엽, 이종범 같은 선수들이 있다. 이들은 단순한 실력뿐만 아니라 팀 내에서 리더 역할을 하며, 대중들에게 신뢰감을 주는 선수들이다. 경기력뿐만 아니라, 강한 정신력과 상징성이 결합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배구에서도 이런 유형의 선수를 키우려면, 팀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성장 환경을 조성하고, 인터뷰나 다큐멘터리 등 미디어 노출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노력형 스타는 헌신과 성실함으로 팬들의 지지를 얻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손흥민, 김현수 같은 선수들이다. 이들은 남다른 재능보다 끊임없는 노력과 근성으로 정상에 올랐다. 팬들은 단순히 스타 플레이어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선수의 성장 과정에서 보이는 헌신과 노력에도 감동을 받는다. 이런 유형의 선수들은 경기 외적인 노력까지도 조명해야 한다. 팬들이 그들의 성실함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천재형 스타는 타고난 재능과 독창적인 플레이로 대중들을 매료시킨다. 이강인, 리오넬 메시, 오타니 쇼헤이 같은 선수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압도적인 기술과 감각으로 스포츠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팬들에게 "와, 저런 플레이를 어떻게 하지?"라는 감탄을 유발한다. 배구에서도 이런 유형의 선수를 키우려면, 하이라이트 장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SNS를 통한 바이럴 콘텐츠를 전략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배구에서도 이러한 스타 유형을 명확하게 설정하고, 선수 개성에 맞는 육성 전략을 세워야 한다. 단순히 잘하는 선수 한 명이 자연스럽게 스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개성을 극대화하고, 그에 맞는 성장 전략을 짜야 한다. 한국 여자배구가 앞으로 살아남으려면, 스타를 기획하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즐길 것 많은 시대, 스포츠를 넘어 엔터테인먼트 요소 필요. 콘텐츠 확장해야...
물론, 배구를 아이돌 육성과 완전히 동일시할 수는 없다. 배구는 스포츠다. 스타를 만들 때에도 실력과 스포츠정신을 두루 갖춘 재목을 선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거기에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더해 스타를 하나의 브랜드로 키우는 방식이 필요하다. 팬들은 단순히 경기만 보는 것이 아니라, 선수의 캐릭터와 서사에 몰입하고, 팀과 선수의 관계성을 즐긴다. 아이돌이 무대 위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배구 선수들도 경기 외적으로 팬들과 연결될 수 있는 접점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스토리의 경기장 밖으로의 확장은 매우 중요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넷플릭스의 F1 다큐멘터리 "드라이브 투 서바이브"다. 미국에서 F1은 인기가 없는 종목이었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각 팀과 선수들의 라이벌 관계, 감정적인 갈등, 드라마 같은 서사를 강조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미국 시장에서 F1의 흥행이 폭발했다. F1이라는 스포츠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지만, 팬들이 선수 개개인의 캐릭터를 이해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종목 자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배구도 같은 방식이 필요하다. 단순히 경기 결과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의 성장 과정, 팀 내부 이야기, 라이벌 관계, 개인적인 목표와 도전 스토리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팬들이 선수 개개인의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리그 차원에서 콘텐츠를 기획하고, 스타의 개성을 더욱 강조하는 방향으로 마케팅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배구가 이런 방향으로 가려면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첫째, 방송사 & OTT 플랫폼과 협업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방식이 있다. 쿠팡플레이가 손흥민을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것처럼, 배구도 특정 스타 선수나 팀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가능하다. 여자배구가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인기 있는 겨울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다큐멘터리는 충분히 제작 가치가 있다.
둘째, 유튜브와 SNS 기반의 자체 제작 콘텐츠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현재 배구계는 경기 하이라이트나 인터뷰 외에는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콘텐츠가 부족하다. 선수 개개인의 성격과 스토리를 보여줄 수 있는 영상 콘텐츠가 필요하다. 예시를 들자면, "흥국생명 다이어리" 같은 시리즈를 만들어 팀의 훈련 과정, 경기 전후 분위기, 선수들의 개성을 조명하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
셋째, 배구 중계의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현재 배구 중계는 단순한 경기 중심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중계 화면에서 선수 개개인의 이야기를 강조하고, 그들의 플레이스타일이나 특징을 설명하는 식으로 변화를 줄 수 있다. 해외에서는 미식축구 NFL에서 "하드 녹스(Hard Knocks)"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시즌 준비 과정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하는데, 이런 방식도 배구에 도입될 수 있다.
넷째, 스타를 브랜드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축구에서 네이마르, 손흥민 같은 선수들이 SNS를 활용해 팬들과 직접 소통하고, 팬들과의 미팅이나 행사, 광고와 브랜드 협업을 통해 개인 브랜드를 확립하는 것처럼, 배구 선수들도 단순한 경기력만으로 스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배구의 미래는 단순히 "스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스타를 기획하고, 육성하고,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어야 한다. 배구가 여전히 "스포츠"라는 본질을 유지하면서도, 현대 스포츠 산업의 흐름에 맞춰 변화하지 않는다면, 김연경 이후의 시대는 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이제 배구는 "경기장 안"이 아니라, "경기장 밖"에서도 팬들을 사로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