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 좌절한 한국 당구, 프로는 흥행 중인데 동네 당구장은 전멸 직전?

생활 당구의 위기, 140년 전통, 스크린골프와의 경쟁, 놀이에서 프로 스포츠로…

2025-03-17     권용진
당구를 접하는 방식 자체도 변화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전통적인 당구장보다 스크린 당구, 온라인 당구 게임, 유튜브·SNS 콘텐츠 시청을 통해 당구를 접하는 경향이 커졌다. ‘손으로 직접 큐를 잡고 공을 치는 경험’보다, 디지털 환경에서 당구를 즐기는 흐름이 커진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전통적인 당구장들이 어려움을 겪는...[본문 중에서]

한국 당구가 또다시 8강에서 멈췄다. 독일에서 열린 제37회 세계팀3쿠션 선수권 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은 네덜란드를 상대로 9:3으로 앞서다 연장전 끝에 11:15로 역전패했다. 개인전에서 허정한이 승리를 거뒀지만, 조명우가 세계적인 강호 딕 야스퍼스에게 패배하며 결국 또 8강을 넘지 못했다. 반면, 국내 프로당구는 매년 급성장하고 있다. PBA 투어의 총상금은 수십억 원 규모로 확대됐고, 김가영 같은 스타 선수들이 연속 우승 행진을 이어가며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 프로당구는 전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지만, 정작 당구의 기반이 되는 생활 당구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1883년 인천 제물포에서 처음 당구대가 들어온 이후, 당구는 140년 동안 한국인의 일상 속에 자리 잡아왔다. 1970~80년대에는 고된 노동의 끝을 당구장에서 보냈고, 90년대 포켓볼 열풍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새로운 유행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 당구장은 빠르게 사라지는 중이다. 한때 2만 개를 넘었던 당구장이 11천 개 수준으로 줄었고, 여전히 매년 많은 곳이 문을 닫고 있다.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프로 선수들은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고, TV 중계와 대회 규모는 커지는데, 정작 우리가 당구를 치러 갈 공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출처:국가통계포털(KOSIS), 정리_뉴스워커

"큐 걸 곳이 없다" 사라져가는 당구장의 서글픈 현실


2000년대 초반 25천 개에 달했던 전국 당구장은 이제 11천 개 수준까지 감소했다. 특히 2013년부터 급격한 감소세를 보이며 매년 1,000곳 이상 폐업하는 추세다. 코로나19 기간에는 그 속도가 더 가팔라져, 2020~2022년 사이에만 연평균 2,000곳이 문을 닫았다.

그렇다면 왜 당구장이 사라지고 있을까? 가장 큰 이유는 MZ세대의 생활문화 변화다.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당구는 대학가와 번화가의 필수 오락거리였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당구장 대신 스크린 골프, 볼링, 실내 테니스, 보드게임 카페 등 더 다양한 선택지를 가진다. 특히 스크린 골프장은 20205,365개에서 20248,902개로 4년 새 66% 증가하며 빠르게 대체 시장을 형성했다. MZ세대에게 당구는 아버지 세대의 스포츠라는 이미지가 강해졌고, 자연스럽게 당구장을 찾는 발길도 줄어든 것이다.

또한, 당구장의 운영비 증가와 업주의 고령화도 큰 문제다. 당구장 업주들은 임대료 상승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과거에는 한 명의 종업원이 여러 테이블을 관리할 수 있었지만, 요즘은 무인 시스템 도입이 어려운 소규모 당구장이 많아 운영이 더욱 힘들다. 여기에 당구장 운영자의 연령대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현재 당구장 사업주의 평균 연령은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으로, 젊은 창업자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새로운 투자자가 들어오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기존 업주들이 폐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당구대 유지·보수 비용도 적지 않아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 결국, 이런 복합적인 요인이 맞물리면서 생활 당구의 근간이 되는 동네 당구장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인기는 여전한데 당구장은 줄고 선수는 늘어프로화의 결과인가?


생활 당구와 다르게 프로는 성장 중이다. 과거에는 대학 당구부나 실업팀을 거쳐 프로로 진출하는 흐름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전통적인 당구장에서 성장하는 선수들이 줄어든 대신, 프로로 직행하는 선수들이 증가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대한체육회의 선수등록 통계를 보면, 2024년 기준 18세 이하(유소년) 등록 선수 수가 2019년 대비 약 120% 증가했다. 반면, 일반부 선수 등록 증가율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대한당구연맹(KBF) 및 프로당구협회(PBA) 등록 선수 수는 20192,500명에서 20244,800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특히 2019년 프로당구리그(PBA)가 출범하면서, 생활체육을 넘어 전문 스포츠로서의 당구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국내에서 정식 프로 리그가 없었기에, 선수들이 실업팀이나 해외 대회를 전전해야 했지만, 이제는 PBA를 통해 안정적인 무대가 제공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전통적인 생활체육 당구장에서 성장하는 선수보다, 프로 시스템 내에서 바로 육성되는 선수들이 증가하는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

국가통계포털(KOSIS) / 정리_뉴스워커

또한, 당구를 접하는 방식 자체도 변화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전통적인 당구장보다 스크린 당구, 온라인 당구 게임, 유튜브·SNS 콘텐츠 시청을 통해 당구를 접하는 경향이 커졌다. ‘손으로 직접 큐를 잡고 공을 치는 경험보다, 디지털 환경에서 당구를 즐기는 흐름이 커진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전통적인 당구장들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다.


당구장,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작은 변화, 큰 효과


당구장의 감소 속도를 늦추고 생활 당구를 활성화할 방법은 없을까? 다양한 대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실행하기 어려운 것과 비교적 실현 가능한 대안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출처: 대한체육회 / 정리_뉴스워커

먼저, 기술 도입을 통한 당구장 현대화는 이상적인 대안으로 보이지만 현실적인 장벽이 높다. AI 분석이나 VR·AR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당구장의 도입은 최신 트렌드와 맞물려 있지만, 문제는 비용이다.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당구장의 평균 연매출은 5,135만 원으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첨단 시스템을 도입하기엔 부담이 크다. 프랜차이즈화 역시 대안으로 언급되지만, 개별 당구장이 브랜드화된 체인으로 전환되기에는 인테리어 표준화, 운영 방식 통합 등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이 따른다. 프로 리그를 더욱 활성화해 생활 당구와 연결하려는 시도도 있겠지만, PBALPBA가 이미 독립적인 프로 시스템을 구축한 상황에서 생활체육 단계의 리그를 전국적으로 확대하기란 쉽지 않다.

정리_뉴스워커

이와 반대로, 적은 비용으로도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들도 있다. 예를 들어, 태블릿 기반의 자동 점수판을 도입하거나 모바일 예약 시스템을 활용하는 등 소규모 업그레이드만으로도 이용객 편의를 높일 수 있다. 또한, MZ세대를 공략하는 방식도 중요한데, 이미 유튜브와 SNS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당구 크리에이터들과 협업해 이벤트를 진행하거나, 젊은 층을 겨냥한 할인 프로모션을 운영하는 것도 당구장의 매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책을 적극 활용하는 방법도 현실적이다. 생활체육 시설 개선 지원 사업을 기대하거나, 지역 당구 협회와 협력해 아마추어 리그를 활성화하는 방안이 가능하다.

결국, 생활 당구가 다시 활력을 찾기 위해서는 비용이 많이 드는 대규모 변화보다는 적은 투자로도 이용객의 경험을 개선할 수 있는 실질적인 해결책이 중요하다. 변화하는 트렌드에 맞춰 적절한 방식으로 대응한다면, 프로당구 성장의 파도를 같이 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