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책임 없이 공사하겠다’는 삼성물산… 누가 조합의 안전망을 부쉈는가
브랜드 신화에 가린 계약의 민낯
“삼성물산이라면 믿고 맡겨도 되지 않겠나?” 재건축·재개발 조합원들이 흔히 던지는 말이다. 삼성물산의 이름값은 화려하다. AA+ 신용등급, 래미안 브랜드, 안정적인 자금 조달 능력. 하지만 이 신화 뒤에 숨은 진실을 마주할 때, 조합원들은 깨닫는다. 공사 현장만큼 중요한 전장이 따로 있다는 것을. 바로 계약서다.
계약서에서 빠진 ‘책임준공확약’
재건축 사업은 단순한 공사가 아니다. 수천억, 때로는 수조 원의 사업비와 수십 년의 기다림, 수백 수천명 조합원의 삶이 얽힌 공동 운명체다. 이 운명을 결정짓는 첫걸음이 시공사와의 계약이다. 그런데 이 계약서에서 가장 중요한 안전장치, 즉 “어떤 일이 있어도 공사를 끝까지 완수하겠다”는 책임준공확약서가 빠져 있다면? 삼성물산은 이 약속을 거부한다.
책임준공확약서는 시공사가 공사비 인상, 인건비 상승, 외부 소송 등 어떤 변수에도 불구하고 공사를 약정된 기간 내 완료하겠다는 법적 약속이다. 현대건설이나 포스코이앤씨 같은 대형 건설사들은 이 확약서를 제출하며 조합의 신뢰를 얻는다. 반면 삼성물산은 “우리 신용도를 믿어달라”며 확약서를 생략한다. 2025년 압구정2구역 재건축 입찰에서 삼성물산은 조합의 조건(대안설계 제한, 이주비 LTV 100% 이상 불가 등)을 이유로 입찰을 포기했는데, 책임준공확약서 요구가 주요 걸림돌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합원이 떠안는 리스크
확약서가 없는 계약은 조합원에게 무엇을 의미할까? 간단하다. 모든 리스크가 조합원에게 전가된다.
▲추가분담금 부담: 공사비가 예상보다 늘어나면 조합원이 추가 분담금을 내야 한다. 2025년 개포우성7차 재건축에서 삼성물산은 책임준공확약서를 제출하지 않았고, 조합원들은 공사비 인상 가능성에 불안해하고 있다.
▲공사 지연: 불가항력을 이유로 공사가 늦어져도 시공사는 책임을 면한다. 이 경우 금융비용(이자)과 입주 지연의 부담은 고스란히 조합원의 몫이다.
▲PF 대출의 어려움: 책임준공확약서가 없으면 금융기관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승인이 까다로워진다. 사업 지연은 물론, 최악의 경우 사업 자체가 표류할 수 있다.
▲법적 보호의 부재: 확약서가 없으면 조합은 시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도 실익을 얻기 어렵다. 계약서에 명시된 책임이 없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은 “브랜드와 신용도를 믿어달라”고 말하지만, 조합원이 믿어야 할 것은 브랜드가 아니라 계약서의 조항이다. 한남4구역 재건축(2024~2025년)에서 삼성물산은 확약서 없이도 수주에 성공했지만, 이는 조합이 입찰지침서를 수정해 삼성물산의 참여를 유도한 결과였다. 모든 조합이 이런 협상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조합원의 분노와 후회
“브랜드만 믿고 계약했다가 뒤늦게 후회했다.” 개포동의 한 재건축 조합원(2025년 3월)의 하소연이다. 이 조합은 삼성물산의 입찰 포기를 비판하며 “클린 수주를 방해한다”고 주장했지만, 삼성물산은 오히려 명예훼손이라며 경고장을 보냈다. 조합원들은 분노했다. “우리의 삶이 걸린 사업에서 왜 시공사가 책임을 회피하나?”
압구정2구역에서도 비슷한 갈등이 벌어졌다. 삼성물산은 조합의 입찰 조건이 과도하다며 철수했고, 조합원들은 사업 지연과 불확실성에 시달렸다. 이들은 “삼성물산의 이름값만 믿었다가 계약의 함정을 알게 됐다”고 토로했다. 조합원들은 이제 깨닫는다. 화려한 견본주택이나 프리미엄 설계가 아니라, 단단한 계약 조항이 자신들의 재산과 미래를 지킨다는 것을.
계약서로 싸워야 할 때
건설 현장은 기술로 싸우지만, 계약은 글자 한 줄로 승부가 갈린다. 삼성물산은 2015년 이후 ‘클린 수주’와 ‘선별 수주’를 명분으로 불리한 조건을 피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조합원에게는 “책임지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들린다. 조합은 이제 멋진 브랜드가 아니라 실효성 있는 계약서를 요구해야 한다.
국토교통부는 2024년 말 발표한 ‘부동산 PF 사업구조 개편 방안’에서 책임준공확약서의 중요성을 언급했지만,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부족하다. 조합이 스스로 계약서를 검토하고, 법률 전문가와 협력해 시공사의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조합원의 주권을 되찾자
삼성물산에게 묻고 싶다. “왜 책임준공확약서를 쓰지 않는가? 정말 자신 있다면, 왜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피하나?” 조합원의 주거 안정과 재산은 브랜드 신화가 아니라 계약서에서 시작된다. 이제 조합은 깨어나야 한다. 계약서에 우리의 권익을 명확히 새겨야 한다. 그래야 누가 책임져야 할지, 단 한 줄로도 분명해진다.
삼성물산은 조합원의 신뢰를 얻고 싶다면, 화려한 마케팅보다는 단단한 약속을 내놓아야 한다. 조합원의 주권은 계약서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