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분석] 중국 텐센트, 국내기업 재무적 투자인가 경영권 탈환인가…K-콘텐츠 산업, ‘Soft M&A’의 덫에 걸리나

-게임에서 엔터까지 산업 전반 포진…지분 투자 통한 실질 지배력 강화 시나리오 본격화

2025-08-06     기업분석4팀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도 텐센트의 포지셔닝은 점점 더 견고해지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9.6%), YG엔터테인먼트(4.3%), 카카오엔터테인먼트(4.6%) 등 K-콘텐츠 대표주자 ‘빅5’(하이브·SM·YG·JYP·카카오엔터) 중 SM, YG, 카카오엔터 3곳에 직접 지분 투자한 유일한 해외 자본으로 자리잡았다. 이로써 한국 콘텐츠 산업 내 사실상 유일한 ‘외국계 플레이어’로...[본문 중에서]

중국 최대 IT·콘텐츠 기업 텐센트가 한국 문화콘텐츠 산업에 대해 ‘지분 기반의 조용한 영향력 확대’ 전략을 체계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텐센트는 적대적 인수나 경영권 분쟁 없이, 주요 콘텐츠 기업들의 2대주주 지위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정치적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산업 전반의 구조적 주도권을 확보하는 흐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를 단순한 재무적 투자로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텐센트의 이 같은 방식은 ‘Soft M&A’로 해석된다. 외형상으로는 지분 투자에 불과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콘텐츠 유통권과 전략적 의사결정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확보하는 우회적 지배 시도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게임·엔터테인먼트 등 IP 기반 산업에 대한 투자가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한국 콘텐츠 생태계의 정책적 사각지대와 지배구조 취약성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2대주주로만 남는가? 텐센트의 ‘조용한 지배력’


텐센트는 2025년 5월, 하이브가 보유하던 SM엔터테인먼트 지분 9.6%를 인수하면서, 카카오(20.1%)에 이어 2대주주로 등극했다. 외견상 단순한 블록딜 성격의 주식 거래였지만, K-POP 산업을 상징하는 기업에 대한 중국계 자본의 영향력 확보라는 점에서 업계의 촉각을 곤두세우게 했다.

이러한 전략은 일회성이 아니다. 텐센트는 이미 국내 게임업계를 중심으로 시가총액 상위 게임사들에 깊숙이 포진해 있다. 크래프톤(13.6%, 2대주주), 넷마블(17.5%, 2대주주), 시프트업(18.2%), 카카오게임즈(3.8%)에 지분 투자를 진행했다. 이들 기업은 각각 ‘배틀그라운드’, ‘세븐나이츠’, ‘데스티니 차일드’ 등 대표적인 글로벌 IP를 보유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중국 유통권은 텐센트가 보유한 플랫폼을 통해 운영되고 있다. 즉, 단순한 투자 이상의 실질적 공급망 통제권이 이미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출처: 각종 언론사 자료 조사 정리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도 텐센트의 포지셔닝은 점점 더 견고해지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9.6%), YG엔터테인먼트(4.3%), 카카오엔터테인먼트(4.6%) 등 K-콘텐츠 대표주자 ‘빅5’(하이브·SM·YG·JYP·카카오엔터) 중 SM, YG, 카카오엔터 3곳에 직접 지분 투자한 유일한 해외 자본으로 자리잡았다. 이로써 한국 콘텐츠 산업 내 사실상 유일한 ‘외국계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했다.

표면적으로는 소수 지분에 불과하지만, 대부분의 콘텐츠 기업들이 오너십 약화와 기관 중심의 분산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텐센트의 2대주주 지위는 의결권 행사 뿐만 아니라 전략적 의사결정에서도 중요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구조로 작용한다. 업계에서는 이를 “경영권은 요구하지 않지만, 콘텐츠 유통 방향을 주도하는 방식”, 즉 지분을 통한 플랫폼 지배 전략으로 해석하고 있다.


정책 사각지대에 놓인 K-콘텐츠… ‘중국 진출’이라는 필연의 딜레마


텐센트의 영향력 확대 배경에는 중국 시장의 폐쇄성과 제도적 특수성이 한 몫을 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 콘텐츠 소비국 중 하나로, 한국 콘텐츠에 대한 수요도 꾸준히 높은 상황이다. 그러나 2016년 사드 배치 이후 지속된 중국내 한국 콘텐츠 금지령 일명 ‘한한령’ 기조는 아직까지 실질적인 해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그 결과 한국 기업이 독자적으로 중국 시장에 진출하거나 콘텐츠를 유통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가 되었다.

게임 산업의 경우, 중국 정부의 게임 심사 기구인 NPPA로부터 ‘판호’라는 유통 허가를 받아야만 게임을 출시할 수 있다.

출처: 각종 언론사 자료 조사 및 뉴스워커 인사이트 분석

하지만 외국 게임사가 단독으로 판호를 받는 사례는 극히 드물며, 대부분의 게임은 중국 로컬 퍼블리셔와의 공동 퍼블리싱 형태로만 승인을 받는다. 이때 텐센트와 넷이즈가 시장 점유율 기준으로 약 70%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중국 진출을 위한 협력 파트너로 텐센트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제약이 작동한다.

엔터테인먼트 산업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음악, 드라마, 영화 등 콘텐츠의 경우, 중국 내 주요 플랫폼(텐센트뮤직, 아이치이, 유쿠 등)과의 유통 계약과 검열 및 심의 통과를 위해 현지 자본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콘텐츠 유통을 위해서는 IP 공유 계약과 사전 조율이 필요하고, 이로 인해 한국 콘텐츠 기업들은 지분 일부를 넘기면서라도 중국 파트너와의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업계 관계자는 “텐센트와의 협력은 단순한 전략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시장 접근권 확보’의 수단에 가깝다”며, “단순히 퍼블리셔 이상의 역할을 하며, 중국 내 콘텐츠의 유통권과 방향성을 주도하는 형태가 되고 있다는 점에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M&A 없이 경영 통제… ‘Soft Control’ 시나리오 현실화 경고


텐센트는 공격적인 인수합병(M&A) 방식을 지양하고, 지분 참여를 통한 점진적 영향력 확대 전략을 일관되게 구사해왔다. 이러한 접근은 특히 미국 게임사 ‘라이엇게임즈(Riot Games)’의 사례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2011년: 지분 22.3% 투자, 전략적 파트너십 시작

2015년: ‘리그 오브 레전드(LoL)’ 글로벌 흥행 이후, 지분 전량 인수 및 경영권 확보

이후: 라이엇게임즈는 텐센트의 완전 자회사로 전환되며, 글로벌 게임 유통망 핵심으로 자리잡음

이와 같은 파트너십 투자에서 경영권 확보로의 전환 방식은 한국 기업들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의 불안감을 증대시키고 있다. 특히 K-콘텐츠 기업들은 오너 지분율이 낮고, 방어 장치가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의결권만으로도 실질적인 경영 개입이 가능하다는 점이 위험 요소로 작용한다.


재무 여력이 뒷받침하는 ‘실행 가능성’


2025년 기준, 텐센트는 글로벌 Big Tech 수준의 막대한 재무 여력을 갖춘 상태다. 연매출은 약 142조원으로 추정되며, 영업이익도 39조원에 다다른다.

이는 SM엔터테인먼트(시가총액 약 3조원)와 넥슨(시가총액 약 22조원) 등 국내 대표 기업들과 비교할 때, 격차가 매우 크다. 텐센트는 국내 콘텐츠 대장주들까지도 단독 인수 가능한 자금력과 실행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지분 확대가 단순 투자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우려에 신빙성을 더한다.

실제 최근 불거졌던 넥슨 인수설과 카카오엔터 매각설에서 텐센트는 유력 인수 후보로 반복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이는 텐센트가 이미 산업 내 입지를 확고히 한 주요 플레이어이자, 자본 시장에서 실행 가능한 구매자로 인식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산업주권 vs. 글로벌 협업…정책 공백이 만든 전략 취약성


텐센트의 지분 참여는 겉보기에는 우호적 투자이며, 적대적 M&A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 실질은 다르다. 텐센트는 콘텐츠 유통망, 플랫폼 입점, 해외 판권 등 핵심 유통 채널의 통제권을 확보하면서도, 산업 전반의 방향성을 좌우하는 구조를 이미 형성하고 있다.

문제는 이에 대응할 국내 제도적 장치가 사실상 부재하다는 점이다. 한국 콘텐츠 산업은 그동안 글로벌 진출을 장려하는 기조를 유지해왔지만, 산업 주권 방어를 위한 대응 체계는 미비한 실정이다. ‘산업 개방’과 ‘글로벌 확장’이 중요한 기치로 내세워진 결과, 외국 자본의 전략적 진입에 대한 대응체계가 구체적으로 마련되지 않았다.

대표적인 취약성은 지배구조상 방어력의 약화다. 국내 주요 콘텐츠 기업들인 넥슨, 크래프톤, SM엔터테인먼트 등은 대부분 기관투자자 중심의 분산된 소유구조를 갖고 있으며, 오너 지분율이 낮고 방어 장치가 취약하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로 인해, 외국 자본이 일정 수준의 지분만 확보하더라도 이사회 선임, 전략 결정, M&A 거부권 행사 등에서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로 노출된다.

예를 들어, 텐센트가 2대주주(15~20%) 지위를 확보하고, 우호적인 기관투자자 블록을 구성하거나 이사회 구성에 개입할 경우, 경영권 인수 없이도 기업 의사결정에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 경우, 명시적인 경영권 변화 없이도 텐센트가 사실상 전략적 결정권을 쥐게 되는 구조가 된다.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은 결국 K-콘텐츠 기업이 글로벌 성장을 도모하면서도, 산업 내 주도권이 외국계 자본으로 이양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처럼 디커플링 리스크는 단순히 ‘경영권’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주권 자체가 외부 자본에 의존하게 되는 위험을 내포한다.

텐센트의 행보는 단순한 포트폴리오 지분 투자가 아니다. 그것은 콘텐츠 산업 내 플랫폼 주도권, 유통권, 글로벌 IP 생태계 통제권을 확보하려는 장기적 자본 전략이다. 텐센트는 게임, 음악, 드라마, 영화 등 K-콘텐츠의 글로벌화를 주도하며, 전 세계에서 브랜드 파워와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는 산업을 자기 통제 하에 두려는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

한국 콘텐츠 기업들은 글로벌 성장 잠재력을 지니고 있지만, 산업 내 규제 미비와 지배구조 취약성으로 인해 ‘정책 리스크’가 아닌, ‘정책 부재 리스크’에 직면하고 있다. 콘텐츠 산업에 대한 명확한 산업 주권 보호 정책이 없으면, 글로벌 시장에서 승기를 잡은 K-콘텐츠가 외국 자본의 수익 기반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우려는 더 이상 과장이 아니다.


콘텐츠 산업의 ‘주권’ 고민이 필요한 시점


K-콘텐츠가 세계 무대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는 지금, 그 성과가 산업 외부의 수익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우려는 과장된 비전이 아니다. 콘텐츠는 단순한 문화 상품을 넘어 국가 이미지와 경제적 파급력이 직결된 ‘전략 자산’으로 떠오르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산업 진흥과 개방을 외치던 지난 10년을 넘어서, 콘텐츠 산업의 ‘주권’을 고민해야 할 시점에 다다랐다.

이제 한국 콘텐츠 산업의 주권을 보호하고, 정책적 대응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단순히 산업 보호를 넘어, 국가 경제적 차원에서도 필수적인 과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