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사고] ‘7명 사상’ 청도 열차 사고 수사 본격화… 안전 매뉴얼 준수여부 등 파헤친다
‘청도 열차 사고’ 합동감식반 수사 진행 계약에는 없던 철도 주변 사면 점검 21일 한문희 한국철도공사장 사의 표명
지난 19일 오전 10시 53분께 청도군 화양읍 삼신리 청도 소싸움 경기장 인근 경부선 철로에서 동대구역을 출발해 경남 진주로 향하던 무궁화호 열차(제1903호)가 선로 근처에서 작업을 위해 이동 중이던 근로자 7명을 치었다.
이 사고로 2명이 사망하고, 5명은 중경상을 입었다.
사고를 당한 근로자 7명 가운데 1명은 원청인 코레일 소속이고, 나머지 6명은 구조물 안전 점검을 전문으로 하는 하청업체 직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사망자 2명은 모두 하청 업체 직원인 것으로 파악됐으며, 나머지 부상자 5명은 경주와 경산, 안동 등에 있는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 중이다.
사고 원인 규명 위해 합동감식 진행
열차 사고와 관련하여 20일 오후 관계 기관 합동감식이 진행됐다. 감식에는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주도로 대구지검과 경북경찰청, 고용노동부, 안전관리공단 관계자 20여 명이 참여했다.
합동감식반은 안전 매뉴얼 준수 여부, 사고 현장 주변 여건, 풀숲이 우거진 커브 구간을 지나는 기관사가 근로자들을 발견하지 못했을 가능성 등을 조사했다.
또한 하청업체로부터 넘겨받은 용역계약 서류와 시설 안전 점검 계획서 등을 분석해 철도 근로자들이 사고 당시 진행한 작업이 계약에 따라 적법하게 이행됐는지도 확인했다.
경북경찰청은 관련 브리핑에서 “사고 철로 공간이 넉넉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였다. 비탈진 면이 있고 풀이 자라나 있었지만 추락할 정도의 경사는 아니었다. 열차가 온다고 예측하면 피해자들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며 “근로자들에게 열차가 다가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는 경보기 4개가 지급됐는데 당시 정상적이로 작동된 것으로 예측된다”고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무궁화호 열차 본체의 폭이 280cm인데 레일 폭은 155cm다. 레일 밖으로 튀어나온 열차 본체에 근로자들이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곡선코스가 많았고 육안으로 보기에 용이하지 않았다”면서 “사고 열차 블랙박스를 입수해 분석하고 있으며 사고 기관사를 조사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중상자의 상태와 관련해서는 “(중상자 4명 모두)생명에는 지장이 없고, (부상자 5명 중)1명을 조사했으며 나머지는 호전되는 대로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계약에는 없었던 특별안전점검
코레일은 지난 5월 13일부터 오는 12월 3일까지 열차 사고 피해자들이 소속된 안전 점검 업체와 철도 주변 교량•옹벽•사면•터널 등 구조물 안전 정밀점검 용역 계약을 맺었다.
최근 내린 폭우로 인해 전국에서 피해가 속출하자 국통교통부가 수해 피해 지역에 대해 특별안전점검을 요청하는 공문을 코레일에 보냈다. 코레일은 하청 업체와 추후 정산하기로 한 뒤 철로 특별안전점검을 실시했다.
이러한 이유로 당초 계약에는 없던 철도 주변 사면 점검을 실시하게 되었으며, 하청 업체는 현장 안전 관리를 담당할 인원들을 급하게 섭외하고, 다른 지역에서 터널•교량 점검 업무를 하던 직원들을 불러 현장에 투입한 것으로 파악됐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청도 열차 사고와 관련해서 원인 조사에 적극 협력하고 책임자를 엄중 조치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김 장관은 2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해당 사고 개요를 보고한 뒤 경찰, 고용노동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와 적극 협력해 사고 원인을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또 철도안전법령 위반 여부 등을 검사해 조사 결과에 따라 엄중히 조치하겠다고 덧붙였다.
한문희 한국철도공사(코레일)사장 사의 표명
한문희 한국철도공사(코레일)사장은 사고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21일 코레일 등에 따르면 한문희 사장은 사고 현장에서 “철도 작업자 사고 발생에 대해 유가족과 국민께 깊이 사과드리고,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며 국토교통부에 사의를 전했다. 사표는 아직 수리되기 전이다.
한 사장의 임기는 내년 7월 23일까지로, 윤석열 정부 때인 2023년 7월에 코레일 사장으로 취임했다.
철도노조 ‘인재’ 피하기 위한 정책 마련 촉구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이 이번 사고와 관련해 상례 작업 전면 중단과 야간작업 전환을 촉구했다.
철도노조는 20일 성명에서 “이번 청도역 열차 사고의 근본 원인은 열차 운행 선상에서 이뤄지는 상례 작업에 있다”며 “열차 운행 선상에서 이뤄지는 각종 작업, 점검 등은 근본적으로 사고를 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철도노조는 “위험지역(폭 약 5.4m) 내에서 이뤄지는 작업은 차단 작업으로 시행하지만 19일 사고와 같이 위험지역 밖에서 이뤄지는 각종 점검 등은 여전히 상례 작업으로 진행 중”이라며 “가장 안전하고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대책은 열차가 없는 야간에 작업하는 것”이라고 맗했다.
이들은 “야간작업 전환은 철도 노사가 모두 공감하고 있는 방안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통상일근 근무를 교대 근무로 전환해야 하고 인력이 증원돼야 한다”면서 “인력 증원은 국토와 기재부 승인이 필요하다”며 정부의 결단을 호소했다.
열차 접근 경보 앱에 관해서는 “휴대용 경보 앱은 보조수단일뿐 작업자의 목숨을 담보할 수 없고 특히 수도권 구간에서는 오류가 많아 신뢰성이 매우 떨어져 노사 협의를 통해 개선하기로 했으나 여전히 미비한 상태”라며 “이번 사고의 핵심 원인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되풀이된 6년 전 밀양 사건
이번 사고는 6년 전 경남 밀양에서 발생한 열차 선로 안전사고와 판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19년 10월 22일, 경남 밀양역 근처에서 선로 수평 작업을 하던 작업자 3명이 열차 진입을 인지하지 못해 치여 1명이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었다.
사고 현장 앞에서 신호원이 열차가 온다는 신호를 주고 무전을 했으나 현장에 있던 근로자들은 소음으로 무전과 신호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두 사건 모두 철도 작업자들이 현장에서 열차가 오는 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사고를 당했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전문가나 철도 관계자들은 이번 사고가 안전 관리 시스템 미비와 안전 관리•감독 소홀 등에 따른 ‘인재’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노동•시민단체는 땜질식 처방보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코레일은 “유가족과 부상자에 대한 지원에 총력을 다하고 사고 원인을 철저히 규명할 수 있도록 관계 기관에 적극 협력해 다시는 유사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