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스포츠] 클린스만 악몽 떨쳐낸 홍명보의 진짜 인생 역전은 멕시코전, 11년 전 복수 가능할까?
멕시코에 16년 만에 0-4 대패한 1기 시절 추억, 골드컵 우승국 향한 진정한 시험대
FIFA 랭킹 23위. 7일 진행된 미국과의 평가전에서 2-0으로 승리하며 대한민국은 정말 오랜만에 이 랭킹에 걸맞은 경기를 선보였다. 홍명보 감독은 손흥민을 원톱으로 내세운 변형 스리백 전술(3-4-2-1)을 들고 나왔다. 주장다운 손흥민의 선제골, 이동경의 추가골, 조현우의 미친 듯한 선방, 그리고 옌스 카스트로프의 성공적인 대표팀 데뷔까지... 비슷한 스케줄을 잡은 일본은 멕시코에 0-0으로 비기며 침묵했다.
경기 후 곧바로 다음 경기장인 네슈빌행 전세기에서 미국전을 정밀 분석하는 홍 감독의 모습을 ‘워커홀릭’이라며 대서특필하는 기사도 나왔다. 홍 감독은 11년 전에도 비슷한 루트의 경기를 치른 적이 있었지만, 실패했다. 그때의 한을 지금 와서 풀어가고 있는 것인가? 이것으로 과거의 평가를 뒤집고 인생 역전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홍명보호의 첫 비아시아 원정 승, 손흥민 효과와 교민들의 환호, 외교적 자존심까지 이득?
이날 경기에는 뉴욕과 뉴저지 지역에서 온 수많은 교민이 미국 팬들보다 많이 보였다. 손흥민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여기가 한국인지 뉴욕인지 모르겠더라’고 하면서 응원 온 교민들을 환영했다. 세계적인 스타인 손흥민이 LAFC에서 뛰며 미국 팬들을 열광시키고 있는데, 그의 활약이 교민들의 자부심도 채워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날 경기는 국가 대항전의 효과를 확인시켜 주기도 했다. 미국 이민 당국의 한국 배터리 공장 현장 단속과 한국인 300여명이 구금된 사건으로 양국 외교 및 국민감정이 별로 좋지 못하다. 미국전 승리는 이 감정을 해소하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한 팬은 ‘구금당하고 미국 이긴 건 솔직히 통쾌했다’며 솔직한 감정을 드러냈다. 또 한 팬은 ‘한국이 이런 거라도 이겨야지 미국은 관세 펀치 날리면서...’라며 최근 미국의 행보와 연관 짓기도 했다.
전술적으로는 지난 동아시안컵에서 실험했던 스리백이 미국을 상대로도 먹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경기였다. 평가전이라고 하더라도 2006년 이후 쭉 4백 전술을 베이스로 유지하고 있는 대표팀이 플랜 B에서 성과를 보였다는 점은 긍정적인 부분이다.
통한의 홍명보 1기, 11년 전 동일한 대회 루트에서 클린스만에 참패, 얽히고 얽힌 감독들
이번 미국 원정에는 3명의 감독이 얽혀있다. 미국 대표팀을 이끄는 포체티노 감독은 2014년부터 토트넘을 이끌면서 손흥민을 발굴하고 키워낸 스승으로 꼽힌다. 자신이 키워낸 선수로 인해 국가 대항전에서 패배한 아픈 경기였다. 일주일 동안 대비 훈련을 했는데도 결국 골은 애자제의 발에서 나왔다. 포체티노 감독은 경기 후 엄청난 비난에 휩싸였다.
클린스만은 이날 경기장을 찾아 관람석에서 웃는 모습을 보였지만, 과연 웃을 수 있는 자리였는지는 의문이다. 그는 골키퍼 후보로 있는 아들 조너선 클린스만의 경기를 관람차 경기장에 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그는 2011년부터 2016까지 5년간 미국 대표팀을 이끌었던 전임 미국 감독이기도 했다. 그러나 후반으로 갈수록 팀이 망가지며 결국 경질당했다. 그리고 이후 다시 맡은 국가 대표팀이 대한민국이었고, 클린스만은 역대 최악의 감독으로 평가당하며 경질됐다.
홍명보 감독은 클린스만과 여러 가지로 얽혀있는데, 바로 직전 정식 감독이 클린스만이었기 때문에 여러모로 비교당하는 처지이다. 황선홍과 김도훈이 있었지만, 이 둘은 임시 감독이었다. 축구협회장 정몽규, 클린스만 그리고 홍 감독도 선임 과정에서 잡음이 많았기에 홍명보 입장에서는 최대한 그와 비교당하는 것을 피하고 싶을 것이다.
홍 감독과 클린스만의 인연은 1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의 미주 원정과 비슷한 스케줄이 그 당시에도 있었는데, 홍명보 1기 시절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미주 원정 평가전을 가졌고 그때도 상대는 미국과 멕시코였다. 물론 순서는 멕시코가 먼저였다. 홍명보호는 당시 클린스만호를 만나 심각한 졸전을 펼치며 0-2로 완패, 오만가지 욕을 먹었다. 그리고 그해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실패는 이후 다시 감독이 될 때 심각한 걸림돌이 되었다. 그러니 11년이 지난 이날의 승리는 경기장에 찾아온 클린스만에 보란 듯이 복수를, 또 한편으로는 11년 전의 실패를 극복해 나가며 인생 역전을 꾀하는 경기였는지도 모른다.
멕시코전, ‘설날의 비극’, ‘16년 만의 패배’, ‘34년 만에 3점 차 이상 패배’ 모두 기록한 오명 벗을까?
미국전은 우리와 홍명보 본인에게 나름 의미가 있는 경기였지만, 여기서 만족할 수는 없다. 지난 7월에 막을 내린 2025 골드컵에서 미국은 멕시코와 결승에서 패하며 우승을 놓쳤다. 포체티노 감독은 유럽파보다는 MLS 소속 선수들을 주축으로 선수를 꾸렸고 이는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파벌 문제도 상당하다. 정작 27일 나온 미국 엔트리는 신인급 선수들이 많아 1군이라고 평가하기 힘든 전력이었다. 그리고 상대 전적도 12전 6승 3패 3무로 우리가 승률에서는 우위에 있다.
그러나 멕시코는 좀 다르다. 총 14전 4승 8패 2무로 열세다. FIFA 랭킹 13위, 골드컵 13회 최다 우승국, 23년 25년 골드컵 우승 국가. 그리고 98 프랑스 월드컵 차범근호에서 하석주의 백태클과 함께 충격의 패배를 안겨준 국가.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에서의 통한의 패배.
대한민국은 멕시코와 상성이 별로 좋지 못하다. 이번 일본과의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했다고는 하나, 미국과는 다르게 전력이 정예급이다. 라울 히메네스, 에드손 알바레즈, 로사노, 피네다 등 주요 스타와 검증된 유럽파 + 세대 균형의 실전 스쿼드로 구성하고 있다. 스스로 못하기를 기대하기 쉽지 않다.
2014 미주 원정 멕시코전 당시 한국은 설 연휴였다. 결과는 0-4 참패. 이는 98년 차범근호 이후 16년 만에 멕시코에 패배한 것이며, 81년 친선전 이후 34년 만에 3점 차를 내준 것이다. 이 경기는 두고두고 기억될 ‘설날의 비극’이었다.
그러니 1군 전력에도 못 미치는 미국전 승리에 만족할 수 없다. 언론에 실린 것처럼 비행기 타자마자 전력 분석하는 모습, 그리고 본인의 과거 실패를 극복하는 성과의 진정한 시험대는 10일 있을 멕시코전이 될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이날 경기장을 찾아 환하게 웃은 클린스만의 악몽이 계속 따라다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