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국민의 시선] 경제형벌 민사책임 합리화...기업 경제활동의 마중물 되나?
당정이 경제 형벌 민사책임 합리화에 시동을 걸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30일 형벌 만능주의에서 벗어나 규제를 합리화하고, 민사 책임을 강화해 피해자가 실질적으로 보상받도록 하는 법안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날 당정은 경제 형벌 민사책임 합리화 TF를 열고 시급하게 개선이 필요한 경제 형벌 110여 개를 우선 정해 개선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이목이 집중된 배임죄가 폐지되고 증거개시 제도와 집단소송제 등이 도입 내지 확대될 전망이다.
당정이 경제 형벌 민사책임 합리화에 나선 이유는 기존 경제 형벌이 처벌에 급급해 경제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배임죄가 문제로 지적돼 왔다. 배임죄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재산상 이익을 취하거나 제3자에게 취득하게 해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최대 징역 10년 내지 벌금 3000만 원에 처벌하도록 규정한 법률이다.
그런데 문제는 임무 위반 행위가 너무 추상적이라는 데 있다. 그렇기에 배임죄를 폭넓게 적용해 경제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지적이 있었다. 최근 법무부 자료를 보면 지난 5년간 배임죄 1심 판결 3,300여 건 중 배임죄로 처벌받는 사례가 기업에서 공공과 민사 영역까지 폭넓게 적용된 것으로 조사됐다. 가령, 기업 임직원이 회사 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한 경우부터 계주가 곗돈을 안 준 경우, 종중 대표가 종중 토지를 무단으로 매도한 경우까지 배임죄로 처벌된 것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경영계는 기업 활동 개선 정책안으로 배임죄 개선 내지 폐지를 강하게 주장해 왔다. 배임죄가 기업인의 정상적인 경영 활동조차 범죄로 몰아 처벌할 여지가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경영계는 배임죄 폐지를 경제 형벌 합리화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런데 이번 당정 협의로 배임죄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한편, 경제 형벌 민사책임 합리화와 함께 민사 책임이 강화된 게 눈에 띈다.
대표적으로 증거 개시 제도가 도입된다. 증거 개시 제도란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걸 경우 법원이 기업의 자료 내지 문서와 정보 등을 제출하도록 명령하는 제도다.
현재 기업을 상대로 하는 민사소송에서는 피해자가 기업 내부 자료를 스스로 확보해 피해 사실을 입증해야 했다. 현실적으로 기업의 자료를 획득하기 어려운 사정 때문에 증거 개시 제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런데 이번 당정 협의로 증거 개시 제도가 도입될 전망이다.
이와 함께 집단 소송제 도입이 확대될 전망이다.
집단 소송제란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한 사건에서 소수의 피해자가 대표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면, 다른 피해자도 동일한 판결의 효력을 얻는 제도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는 증권 분야만 한정돼 집단 소송제가 시행돼 왔다. 그런데 폭넓게 집단 소송제를 적용해 실질적인 피해자 보호가 이뤄질 전망이다.
이번 당정의 경제 형벌 민사책임 합리화 TF 협의 결과로 경제 형벌은 더 합리화되고 기업의 민사책임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민주당이 주도해 시행하기로 협의한 경제 형벌 민사책임 합리화에 우호적인 목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국민의힘은 경제 형벌 합리화의 대표적 조치인 배임죄 폐지를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국민의힘은 배임죄 폐지는 기업 살리기가 아닌 이재명 살리기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렇게 국민의힘이 배임죄 폐지에 거세게 반대하는 이유는, 이재명 대통령이 대장동과 백현동 등 사건으로 배임죄 위반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 26일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배임죄가 폐지된다면 이재명 대통령이 면소되는 혜택을 받는다고 날을 세운 적이 있다. 비슷하게 김도읍 국민의힘 정책위의장도 배임죄 폐지는 기업 활동 개선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이재명 대통령을 위한 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함께 이들은 배임죄가 폐지되면 기업 활동에 피해를 준 경영자를 처벌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이런 우려에 더불어민주당은 근거 없다는 입장이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배임죄 폐지는 이미 윤석열 정부 당시 이복현 금감원장도 주장했고, 경제계에서도 지속적으로 요구한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리고 배임죄 폐지에 따른 입법 공백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배임죄 폐지에 따른 입법과 집행 공백이 없도록 대체 법안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런 정치권의 공방에도 불구하고 경영계는 일제히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대한상공회의소, 대한상의,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경제인협회, 한국무역협회 등이 환영의 입장문을 낸 것이다. 특히 경영계는 배임죄가 폐지되기로 확정되기 전 상법이 개정돼 우려가 있었다. 이사의 충실 의무가 주주로 확대되면서 혹시라도 주가가 하락해 배임죄로 책임을 물을까 우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배임죄 폐지로 이런 기우는 사라지게 됐다.
경영계는 이번 경제 형벌 민사책임 합리화를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다. 과도한 형벌로 기업 활동이 위축될 우려가 있었는데 이번 조치로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형벌보다는 행정조치나 민사조치로 전환돼 예측 할 수 있는 사업 환경이 조정됐다는 이유다.
앞으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경청해 기업 활동의 마중물이 되는 조치가 실행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