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스포츠] 중국의 좌절, ‘또 한국이야?’ 배드민턴 안세영이 회상시킨 ‘新 공한증’과 ‘싸가지 세대론’

-요즘 선수들은 덜 절박하다? 인구 대국 이기는 법, 애국심보다는 자신감

2025-10-29     권용진
중국은 체급이 큰 나라다. 넓은 땅덩어리에 넘치는 인구수, 확률적으로 뛰어난 선수가 많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국토 면적 95배, 인구수 27배 차이만큼 올림픽 메달도 많이 따갔냐고 하면, 그렇지만은 않다. 계산해 보면 1억 명당 메달 수는 우리가 10배나 위에...[본문 중에서]

지난 26, 프랑스 파리. 세계랭킹 2위 왕즈이는 또다시 안세영에게 트로피를 헌납했다. 5-21, 7-21. 결승 스코어는 참담했다. 중국 웨이보에는 또 한국이야?’, ‘왜 매번 안세영인가라는 탄식이 쏟아졌다. 급기야 현지에서는 자국 선수에 대한 조롱까지 이어졌다. 올해만 여섯 번째 패배다. 왕즈이는 결승에 오를 때마다 안세영을 만났고, 매번 무릎을 꿇었다.


1978년부터 반복되는 악몽, 잊을 만하면 재발하는 공한증


공한증(恐韓症). 중국이 한국을 두려워하는 증상. 이 단어가 처음 등장한 건 축구였다. 1978년 첫 A매치 이후 30년간 중국은 한국에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50년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 한국이 중국에 진 경기는 2010년 동아시안컵, 2010년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단 두 번이 전부다. 축구 굴기로 엄청난 양적 성장을 달성한 2020년대에 와서도 중국 언론은 매번 또 한국에 졌다라며 자조한다.

예상치 못한 뒤통수를 맞는 일도 있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유승민은 중국 탁구의 철옹성을 무너뜨렸다. 당시 세계 4위였던 왕하오. 이에 비하면 모든 기술에서 뒤진다는 평가를 받던 상대였다. 그러나 올림픽 결승이라는 단 한 경기에서 유승민은 왕하오를 압도했다. 이후 중국은 탁구에서 메달을 독식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한국에 무릎을 꿇었다.

그 밖에도 쇼트트랙, 양궁, 야구 등의 종목에서도 중국은 쉽사리 한국을 이기지 못한다. 전통 종목을 벗어나 e스포츠에서도 절대 우위를 보인다. 매년 이맘때쯤 열리는 롤드컵에서는 총 14번의 대회 중 중국팀이 우승한 횟수는 고작 3. 나머지 대부분은 한국팀의 승리였다.


체급 수십 배 차이인데... 1인당 실력은 한국에 밀렸다! 수치가 보여주는 공한증


현대 스포츠는 어느 날 갑자기 잘하는 선수가 등장하는 구조가 아니다. 우리가 부족한 탁구 등의 종목에서 귀화를 받는 것처럼, 중국도 그렇다. 육성으로는 단기간에 메달권 도달이 어렵기 때문이다. 2018 평창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린샤오쥔(한국명 임효준)이 중국으로 귀화했다. 그러나 그 한 명이 귀화했다고 해서 한국의 쇼트트랙 아성은 무너지지 않았다. 최근 린샤오쥔은 좀처럼 기량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

한국 vs 중국 – 체급 및 파리올림픽 메달 비교국제올림픽위원회/정리_뉴스워커

중국은 체급이 큰 나라다. 넓은 땅덩어리에 넘치는 인구수, 확률적으로 뛰어난 선수가 많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국토 면적 95, 인구수 27배 차이만큼 올림픽 메달도 많이 따갔냐고 하면, 그렇지만은 않다. 계산해 보면 1억 명당 메달 수는 우리가 10배나 위에 있다. 더 효율적이고 평균 실력이 좋다는 의미이다. 세대교체가 될 때마다 흔들리는 종목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한국의 올림픽 메달 획득은 조금씩 우상향 중이다.


요새 애들, 버릇없어어른들이 만든 '싸가지 세대론'


2002년생인 안세영. 더 어린 연령대를 필요로 하는 종목이 많음을 고려하면, 이제 대한민국 엘리트 스포츠의 중심은 2000년대생이다. 그러나 이들을 곱게 보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인사논란이 단적인 예시다. 파리올림픽 직후 안세영의 폭로로 국감에 불려 나온 대한배드민턴협회 김택규 회장은 증인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안세영이 덴마크 가서도 선배들이나 코치들에게 인사 안 했다고 연락이 왔다.” 비교적 자유분방하게 자라온 신세대들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무례하다고, 권위에 도전하면 버릇없다고 말한다. ‘싸가지 세대론’, 구세대가 신세대를 재단하는 낡은 프레임이다.

1년 뒤, 현실은 정반대였다. 이번 프랑스오픈 1라운드에서 만난 세계 39위 안몰 카르(인도)는 경기 후 같이 경기한 것도 영광이었다. 경기 전 안세영이 따뜻한 말을 많이 건네줘 좋았다라고 했다. 천위페이와 왕즈이를 격려하는 SNS 글은 박수받았고, BWF 선수 위원으로 활동하며 선수들의 목소리도 대변한다. 전 세계가 인성도 월클이라 극찬하는 선수를, 같은 나라 어른들만 모함했다.


공한증과 공한증, 절박함 vs 자신감, 개인적 성취에서 나오는 강력한 의지


대국을 이기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과거와 지금은 좀 다르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가난한 나라’, ‘식민 지배를 당했던 약소국’, ‘가진 것은 사람뿐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스포츠는 열등감을 채워줄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다. 민주화 이전의 한국은 개인보다는 국가나 조직이 더 중요한 사회였다. 나라를 위해 자신을 불살라서라도 이겨야 한다라는 절박함이 모범이었다. 부상을 각오하고 불굴의 의지로 승리를 쟁취하는 장면들은 온 국민의 자존심이 되었다.

요새 선수들은 절박함이 없다라고 오해하지만, 그 양상이 다를 뿐이다. 자유로운 국가와 사회에서 자란 이들 세대에게는 개인이 가장 중요하다. 누가 시켜서가 아닌,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라는 주체가 세계 최고가 되기를 원한다. 태극기의 승리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게 된 결과는 노력을 통한 자신감이다. ‘내가 당신보다 더 잘하고 강하다믿음이다. 개인의 성취감이 곧 절박함이다.

왕즈이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크기나 파워보다는 안세영세글자 이름이 뿜어내는 압도적인 자신감에 무릎 꿇은 것이다. 어마어마한 체급 차이에도 이토록 유능한 인재들이 탄생한다는 것, 그들이 한편에 달고 있는 태극기에서 느껴지는 공한증. 이러니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