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벤츠 중국 벗어나 공급망 다각화...LG전자·삼성SDI 도약판 마련될까

최근 벤츠 회장 방한해 LG 최고경영진,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 만나기도

2025-11-14     천인규 기자

테슬라와 메르세데스-벤츠 등 해외 자동차 기업이 배터리와 핵심 부품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망을 다각화하면서 한국 기업들이 새로운 수혜처로 부상했다. 특정 국가와 업체에만 공급망을 묶어 두면 관세나 수출 규제, 정치 갈등이 발생했을 때 한꺼번에 흔들릴 수 있다는 인식이 커졌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이 북미 시장을 타깃으로 선보인 ESS 제품인 프라임 플러스(Prime+) [사진=LG에너지솔루션]

과거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ESS)는 중국 대형 배터리 업체에 물량을 몰아주며 가격과 규모의 경제를 누리는 구조였다. 업계는 미·중 갈등이 격화하고 미국과 유럽이 중국산 전기차, 배터리에 높은 관세를 매기고 보조금을 제한하면서, 중국 중심 공급망은 비용 절감 수단이 아닌 안보 리스크로 다가왔음을 실감했다.

러시아산 가스에 의존하던 유럽이 전쟁 이후 겪은 에너지 위기가 배터리·핵심 광물 분야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완성차 업계의 공급망 분산을 자극했다. 

테슬라는 이런 변화의 최전선에 있다. 7월 말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미시간 공장에서 생산하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2027년 8월부터 2030년 7월까지 공급하는 계약을 공시했다. 계약에는 공급 기간을 최대 7년 연장하고 물량을 늘릴 수 있는 옵션까지 포함돼, 미국 내 ESS와 향후 전기차용 배터리까지 염두에 둔 중국 외 공급망을 노린 포석으로 해석됐다. 

또 테슬라는 삼성SDI와도 ESS 배터리 도입을 협의하면서 중국 리스크를 한 단계 더 분산시키려 하고 있다. 삼성SDI는 11월 초 테슬라와 에너지저장장치용 배터리 공급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계약 규모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3조원(약 21억 달러) 이상, 연간 10기가와트시(GWh) 수준 물량이 거론됐다. 성사될 경우 테슬라의 미국·유럽 ESS는 중국 닝더스다이(CATL) 중심 구조에서 한국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비중을 크게 늘리는 방향으로 수급 구조를 바꾸게 된다. 

RE+ 2025 행사에서 삼성SDI 임직원이 신규 SBB 제품을 소개하는 모습 [사진=삼성SDI]

에너지 분야 전문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5년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에서 한국 3사의 점유율은 중국에 비해 낮지만, 북미·유럽을 중심으로 한 중·고가 물량 비중은 오히려 높아지는 추세다. 테슬라·벤츠 같은 글로벌 완성차가 미국·유럽 판매용 차량에 중국산 비중을 줄이고 한국산 배터리를 늘릴수록, 국내 업체로서는 물량과 단가를 동시에 방어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진다. 

칩(반도체) 부문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뚜렷하다. 7월 말 테슬라는 삼성전자와 165억 달러(약 23조원) 규모의 시스템 반도체 공급 계약을 맺어, 2033년까지 미국 텍사스 공장에서 자율주행 칩을 공급받기로 했다. 이번 계약은 테슬라가 차량·인공지능(AI)용 칩의 상당 부분을 미국 내 생산 기반을 갖춘 삼성전자에 맡기고, 중국과 대만의 비중을 줄이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평가된다. 

벤츠도 배터리·전자부품 조달에서 한국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9월 벤츠와 전기차 배터리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한 LG에너지솔루션은 2028년 8월부터 2035년 말까지 32GWh, 2029년 7월부터 2037년 말까지 75GWh를 순차 공급할 계획이다. 총 계약 규모는 약 15조원 안팎으로 추산되며, 유럽·미국 공장에서 생산되는 벤츠 전기차의 핵심 물량을 한국산 배터리로 묶어 두는 효과를 낸다.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올라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벤츠 회장과 회동을 가지는 모습 [사진=LG]

벤츠는 배터리뿐 아니라 차량용 디스플레이, 인포테인먼트, 카메라 모듈에서도 한국 그룹과 연계를 강화하는 모습이다. 이달 13일 올라 칼레니우스 벤츠 회장은 방한 뒤 첫 일정으로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LG전자·LG디스플레이·LG에너지솔루션·LG이노텍 최고경영진과 만나 차량용 OLED 화면, 인포테인먼트, 자율주행 센서, 배터리를 한꺼번에 묶은 원 LG 솔루션(One LG Solution) 협력 확대를 논의했다.

EQS 등 벤츠 전기차에 이미 LG디스플레이 패널과 LG전자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적용된 만큼, 개별 부품이 아니라 패키지로 파는 방향으로 협력이 한 단계 올라섰다는 평가가 나왔다. 

LG전자 조주완 CEO는 해당 협의에서 “사용자 경험 중심의 가치 제안, 통합 SDV 솔루션 포트폴리오, 세계 시장에서 입증된 기술력과 신뢰도 등 전장 사업 핵심 경쟁력을 바탕으로 메르세데스-벤츠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더욱 공고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저녁 칼레니우스 회장은 서울 한남동 승지원으로 이동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만찬을 갖고 삼성SDI·하만·삼성디스플레이 경영진과 함께 배터리와 반도체, 차량 내 디스플레이·오디오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삼성전자의 자회사 하만은 이미 벤츠에 디지털 계기판과 프리미엄 오디오, 디지털키를 공급해 왔다. 여기에 삼성전자의 메모리·시스템반도체, 삼성디스플레이의 OLED까지 더해지면 벤츠는 중국 비중이 높은 품목을 한국산으로 대체할 수 있는 선택지를 확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