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올해만 세 번째 인명사고…종이 위 ‘안전혁신’ 약속, 현장에선 공허한 메아리
9월에는 안전 전문 자회사 포스코세이프티솔루션까지 설립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만 올해 들어 세 번째 인명사고가 발생했다. 포스코그룹이 회장 직속 안전 태스크포스(TF)와 안전 전문 자회사까지 내세우며 ‘안전혁신’을 약속한 지 불과 몇 달만에 같은 제철소에서 중대 사고가 반복되면서, 그룹 안전 거버넌스의 실효성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이달 20일 오후 1시 20~30분 포항시 남구 포항제철소 STS 4제강공장 야외에서 슬러지 청소 작업을 하던 협력업체 직원과 포스코 소속 방재 인력 등 6명이 갑자기 쓰러졌다. 이 가운데 하청 노동자 2명은 심정지, 방재 인력 1명은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고 현재 중태로 알려졌다.
나머지 3명도 어지럼증과 두통 등을 호소하며 치료를 받고 있다. 소방당국은 코크스오븐가스(COG)에 포함된 일산화탄소 흡입을 원인으로 추정하고, 경찰 및 고용노동부와 함께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불과 보름 전이던 11월 5일, 같은 포항제철소 스테인리스 압연부 소둔산세공장에서도 불산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포스코DX 하도급업체 전기공사 근로자 4명이 제어 케이블 설치 작업 도중 배관을 밟아 파손하면서 유해 화학물질이 새어 나왔고, 50대 노동자 1명이 숨지고 3명이 화상을 입었다. 화학사고 발생 사실이 당국에 약 1시간 가까이 늦게 신고된 정황까지 드러나면서, 사고 예방뿐 아니라 사고 대응 체계에도 허점이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올해 3월에도 포항제철소 스테인리스 1냉연공장에서 설비를 수리하던 포스코 정비 자회사 포스코PR테크 소속 40대 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소방청 집계에 따르면 3월 기준으로 포항제철소에서는 최근 6년 사이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가 이미 4명에 이르며, 대부분이 협력사나 자회사 소속으로 파악됐다.
세 건의 포항제철소 인명사고라는 공통점 뒤에는 ‘위험의 외주화’라는 구조적 문제가 놓여 있다. 3월 설비 끼임 사망자는 정비 자회사 소속, 11월 가스 누출 사망자는 포스코DX 하도급업체 소속, 11월 20일 가스 흡입 사고 피해자들도 청소업체 직원과 협력업체 방재 인력 등이 중심이었다.
제철소 설비 유지보수, 화학물질이 흐르는 배관 주변 작업, 가스가 고이기 쉬운 공간 청소처럼 위험도가 높은 업무가 여전히 하청·재하청 구조에 집중돼 있다는 점에서, 안전 규정이 설계·발주 단계부터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포스코는 올여름부터 그룹 차원의 안전 거버넌스 개편을 잇달아 내놓았다. 7월 31일 장인화 회장 명의로 ‘안전관리 혁신계획’을 발표하며 계열사별로 흩어져 있던 안전관리 권환을 회장 직속 그룹안전특별진단TF팀으로 모으겠다고 밝혔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과 하도급 구조를 전수 조사하고 ▲안전 예산을 한도 없이 집행하며 ▲산재 유가족 지원 재단 설립도 추진하겠다는 내용이다.
9월에는 그룹 안전 전문 자회사까지 차렸다. 포스코홀딩스는 9월 17일 사업장 안전보건 관리 자문과 컨설팅을 전담하는 포스코세이프티솔루션을 설립하고, 발행 주식 92만6000 주 전량을 현금으로 출자해 100% 자회사로 편입했다. 포스코이앤씨, 포스코DX 등 19개 계열사의 안전 시스템을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설비 위험 예측 기술 등을 통한 기술을 고도화해 그룹 차원의 안전 솔루션으로 확산하는 것이 목표다.
글로벌 안전 컨설팅사와 협력도 병행 중이다. 포스코그룹은 9월 초 스위스 제네바에서 건설·플랜트 안전 진단에 특화된 글로벌 컨설팅사 SGS와 업무협약을 맺고, 우선 포스코이앤씨를 대상으로 건설 현장 안전 시스템을 면밀히 점검하기로 했다.
같은 날 듀폰의 안전 노하우를 기반으로 한 컨설팅 회사 dss+와도 만나 그룹 안전 솔루션을 논의하며, 향후 안전 전문 회사의 설립과 운영에도 글로벌 파트너들의 자문을 받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장인화 회장은 이 자리에서 “제도·문화·기술 전 분야를 과감히 혁신해 모든 근로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안전관리 혁신의 청사진을 그린 것과 달리, 일선 현장을 중심으로 중대재해가 끊이지 않으면서 정부의 시선은 점점 냉랭해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7월 말 국무회의에서 포스코이앤씨의 반복된 산재 사망사고를 거론하며 “반복된 산재 사망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에 가깝다”고 지적했고, 같은 달 말과 8월 초에는 “건설면허 취소, 공공입찰 금지, 징벌적 손해배상 등 가능한 제재 수단을 모두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포스코이앤씨를 겨냥한 발언이긴 하지만, 포스코그룹 전체에 산업재해를 비용 절감 수단으로 취급하지 말라는 경고로 읽히면서, 향후 사고 반복 시 면허 취소, 입찰 제한 같은 최고 수위 제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