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은 북새통, 항공사는 적자…부산–괌 ‘텅 빈 비행기’가 보여준 항공업계의 민낯
항공업계, 공정위 시정조치·고환율·과당 경쟁·노사갈등으로 고심
공항은 연일 북새통인데 항공사 실적표는 빨간 줄이 굵다. 여행 성수기였던 3분기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4곳이 합산 2000억원대 영업손실을 기록한 데 이어 대한항공까지 영업이익이 1년 전보다 40% 가까이 줄었다. 수요는 정상화됐지만 운임과 비용, 규제와 노사 갈등이 뒤엉키면서 기초체력이 약한 항공사부터 휘청이는 모양새다.
국내 상장 LCC 4곳(제주항공, 티웨이항공, 진에어, 에어부산)의 올해 3분기 합산 영업손실은 2015억원이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인 2022년 1분기 이후 가장 큰 분기 적자다. 제주항공은 매출 3883억원, 영업손실 550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400억원대 흑자에서 적자로 돌아섰다.
티웨이항공도 매출 4498억원에 영업손실 955억원을 내며 적자 폭이 1년 새 16배가량 불어났다. 진에어와 에어부산도 각각 3000억원대와 1700억원대 매출을 올렸지만, 200억원 안팎의 영업손실을 피하진 못했다.
대형 국적항공사도 사정은 비슷하다. 대한항공의 올해 3분기 별도 기준 매출은 4조85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6% 줄었고, 영업이익은 3763억원으로 39% 감소했다. 여객 수요는 팬데믹 이전 수준을 이미 회복했고 일부 구간에서는 이를 웃돌았지만, 화물 운임 약세와 고환율·유가 부담, 여객 운임 인하 경쟁이 겹치며 수익성이 빠르게 떨어졌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설명이다.
부산 김해공항의 부산-괌 노선은 이 같은 구조적 문제를 극단적으로 보여줬다. 국토교통부 항공통계에 따르면 이달 7일 괌발 부산행 대한항공 KE2260편에는 180석 중 승객이 단 3명 탑승했다. 해당 편에는 기장, 부기장과 객실 승무원까지 6명의 직원이 탑승해 승객보다 직원이 많았다. 이달 들어 부산-괌 노선 탑승률은 10~20%에 머물러 이 노선을 두고 ‘눕코노미의 대표 노선’이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왔다.
이 노선을 계속 운항하는 이유는 대한항공·아시아나 기업결합 과정에서 생긴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조치다. 공정위는 양사 합병으로 경쟁이 크게 줄어든 일부 국제선에 대해 2019년 공급 좌석 수의 90% 이상을 10년간 의무적으로 유지하게 했다.
부산-괌, 부산-세부, 부산-다낭, 부산-칭다오, 부산-베이징 등 김해공항 출발 노선 상당수가 여기에 포함된다. 항공사 입장에선 수요가 회복되지 않은 노선을 울며 겨자 먹기로 운항해야 하고, 김해공항 슬롯(이착륙 시간대)이 이미 포화 상태라 그만큼 신규 노선 취항 여지도 줄어든다.
공정위는 이 조치가 독과점으로 인한 운임 인상과 공급 축소를 막기 위한 소비자 보호 장치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텅 빈 비행기가 슬롯을 점유하면서 지역 공항의 노선 다변화를 막고, LCC들까지 부산발 괌, 세부 노선 공급을 유지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됐다. 수요 변동과 노선별 수익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일률적 공급 기준이 항공사 재무 악화와 지방 공항 경쟁력 약화를 동시에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적 악화의 또 다른 이유는 고환율과 과당 경쟁이다. LCC 4사는 3분기 공급 좌석을 전보다 3.7% 늘렸지만, 여객 증가는 2%대에 그쳤다. 탑승률을 맞추기 위해 특가 항공권 경쟁을 반복하면서 운임은 내려갔고, 1400원 안팎까지 오른 원·달러 환율 속에서 항공기 리스료와 유류비 같은 달러 결제 비용은 늘어났다. 외형은 키웠지만 출혈 경쟁을 통해 번 매출이 환율 비용으로 빠져나가는 ‘체력 싸움’ 국면에 들어간 셈이다.
노사 현장에서는 인력과 안전 갈등도 커지고 있다. 에어부산캐빈(객실)승무원노동조합은 이달 초 하루 네 번 이상 이착륙하는 4레그 근무가 일상화됐다며 과도한 스케줄에 문제를 제기했다. 인건비 절감을 위해 최소 인원으로 과도한 스케줄을 운영하는 구조가 장기적으로 항공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노조는 주장했다.
또 노조는 6월 8일 승객 안전 보장을 위한 양질의 휴식을 요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 민원을 냈다. 국내 LCC 객실 승무원 다수가 해외 체류 시 2인 1실 숙소를 배정받지만, 대한항공, 아시아나와 다수 해외 항공사는 1인 1실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고강도 교대 근무와 시차, 야간 비행이 겹치는 직종 특성상 개인 휴식 공간을 보장하지 않으면 피로 누적과 건강 악화에 이어 결국 안전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는 논리다. 이후 에어부산·에어서울·진에어는 6월 말부터 객실 승무원에게 1인 1실 숙소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고환율과 유가 변동성 등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업계 전반의 수익성 관리가 어려워진 측면이 있다"며 "시장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노선 효율화와 비용 절감 노력을 통해 실적 개선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