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김영욱 시사컬럼니스트] #단상 하나. “왜 쏘았지 왜 찔렀지 트럭에 싣고 어디 갔지. 망월동에 부릅뜬 눈 수천의 핏발 서려있네.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우리가슴에 붉은 피 솟네…”라는 가사의 5·18광주민중항쟁 민중가요 중 ‘오월의 노래’가 있다.

이 노래는 5월의 비극을 매우 직설적으로 고발하고 그런 비극을 넘어서 투쟁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나가자고 호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오월의 노래는 많은 이들에게 친숙한 ‘할리데이’(Holiday)의 프랑스 가수 미셸 폴나레프(Michel Polnareff)의 번안곡이다. 1971년 작사·작곡한 ‘누가 내 할머니를 죽였나’(Qui a tue grand maman)가 원곡으로, 자신이 정성들여 가꾼 정원이 도시계획으로 망가지는 것에 반대하다 죽고 만 루시엥 모리스를 추모하는 곡이다.

번안된 오월의 노래는 지극히 격정적이다. 끓어오르는 분노, 입술이 터져라 깨무는 다짐, 그리고 마침내 자주적인 새 역사를 이루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를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또 오월의 노래는 민중들이 광주에서 자행된 학살을 기억하기 위해 ‘민중이 만들어 민중이 부른 노래’다. 이 노래의 가사는 직설적이고 잔혹하다. 오월의 노래는 광주의 슬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필자도 1980년대 대학시절, 오월이면 ‘대동단결 독재타도’를 외쳤던 시위 현장이나 대학 귀퉁이 선술집에서 막걸리와 함께 젓가락 반주로 이 노래를 목청껏 부르며 울분을 삼켰다.

▲ 5.18, 우리 국민이 절대 잊어버려서는 안될 우리의 치욕이자 아픈 역사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이들의 아픔을 꺼내 다시금 치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데에서 영화는 출발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상하리만치 같은 시간대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자서전 '전두환 회고록'을 펴냈다. 법원은 1권에 대해 판매 금지명령을 내렸다. 사진 중 전두환 부부는 광주MBC 영상, 영화 택시운전사 중에서 그리고 배경에는 광주민주화기념사업회의 사진이 활용됐다.<그래픽_진우현 기자>

#단상 둘. 5·18광주민중항쟁의 실화를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감독 장훈)가 누적관객 700만 명을 돌파하면서 1000만 관객을 향해 흥행 질주를 계속하며 장안의 화제를 모으고 있다.

배급사 쇼박스에 따르면, 택시운전사는 개봉 11일째인 12일 오후 3시 누적관객 700만 명을 넘어서면서 올 개봉영화 중 최단기간 700만 돌파 기록을 세웠다.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서울 택시기사 만섭(송강호 분)이 밀린 월세를 갚을 수 있는 10만원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독일 기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분)를 태우고 광주로 가서 5·18민중항쟁을 기록하는 내용의 영화다.

독일 제1공영방송의 일본 특파원으로 근무하다가 광주 민주화운동을 목숨 걸고 취재해 전 세계에 광주 실상을 보도한 실존인물 고(故) 위르겐 힌츠페터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영화를 본 관객들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는 데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날조 발언, 정치인들의 단체관람 등 영화 외적으로도 많은 화제와 논란거리를 낳으며 흥행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13일 서울 용산 CGV에서 우리나라를 찾은 힌츠페터 기자의 부인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씨와 택시운전사를 관람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아직까지 광주의 진실이 다 규명되지 못했는데 이것은 우리에게 남은 과제다. 택시운전사가 그 과제를 푸는 데 큰 힘을 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광주에서 민주화 운동이 벌어지던 당시 다른 지역 사람들은 그 진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 사실을 보도한 기자들은 모두 해직당하거나 처벌을 받아야 했다”며 “광주 민주화 운동이 늘 광주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는(이 영화를 통해) 국민 속으로 확산되는 것 같다”고 브람슈테트씨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1995년 은퇴한 힌츠페터는 ‘죽음의 공포를 무릅쓴 치열한 기자정신으로 한국인의 양심을 깨워 민주화를 앞당겼다’는 공로로 2003년 11월 제2회 송건호언론상을 수상했다. 힌츠페터는 2016년 1월 독일 북부의 라체부르크에서 투병 끝에 7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힌츠페터의 손톱과 머리카락 등 유품은 2016년 5월 15일 광주 망월동 5·18 옛 묘역에 안치됐다. 그는 생전에 “내가 죽거든 광주에 묻어 달라”고 주변에 말해왔다.

#단상 셋. 5·18광주민중항쟁을 북한군의 폭동이라고 주장한 세 권짜리 <전두환 회고록>의 출판과 판매가 금지됐다. 광주지법 민사21부는 8월 4일 5·18기념재단 등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상대로 낸 회고록 출판·배포 금지 가처분신청에 대해 인용 결정을 내렸다.

전 전 대통령은 지난 4월 초 발간한 회고록 서문에서 “나는 광주사태 치유를 위한 씻김굿의 제물”이라고 서술해 논란이 일었다. 전 전 대통령은 또 “시대적 상황이 12·12와 5·17을 불렀다”고 적었다.

전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시종일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라 표현하며 “광주사태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이 원죄가 됨으로써 그 십자가는 내가 지게 됐다”고 주장했다.

회고록 가운데 1권 혼돈의 시대 26∼27쪽에 등장하는 이 문장들은 올해 4월 출간 당시 5·18 유공자와 유가족, 관련 단체의 분노를 샀다.

서문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은 또 “광주에서 양민에 대한 국군의 의도적이고 무차별적인 살상 행위는 일어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발포명령’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서술했다.

한편 검찰이 전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을 회수하기 위해 법원에 회고록 인세 압류를 신청했다.

서울중앙지검은 10일 전 전 대통령 회고록과 관련해 발간 출판사에 대해 가지는 인세 채권에 대해 법원압류 및 추심명령 신청을 접수시켰다. 미납 추징금 회수를 위한 조치다.

법원이 검찰 측 신청을 받아들이면 전 전 대통령이 받게 될 인세는 추징금으로 국고에 환수된다.

대법원은 불법 비자금 조성 등의 책임을 물어 1997년 전 전 대통령에 대해 2205억원 추징을 명했다. 하지만 전 전 대통령이 “재산이 29만원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등 추징금 납부를 회피했다.

이에 국회는 추징금 집행 시효를 2020년까지 연장하는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을 만들었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2013년에 특별환수팀을 구성해 추징금 환수에 나섰고, 전 전 대통령은 자진 납부를 약속했다. 지금까지 그가 납부한 추징금은 약 1151억 원으로 전체 추징금의 절반(52.22%) 수준이다.

회고록 권당 가격은 2만3000원이다. 출판업계에서는 11일까지 2만 권 이상 팔렸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저자 인세가 10%로 책정돼 있을 경우 2만권에 해당하는 인세 수입은 4600만원이다.

이 책을 펴낸 출판사 ‘자작나무숲’은 전 전 대통령의 아들인 전재국 시공사 대표가 소유한 또 다른 출판사인 ‘음악세계’의 자회사다.

내란죄의 수괴이자 학살의 책임자가 쓴 자기변명에 가까운 장황한 2000여쪽의 책. 그것도 아들 소유의 계열 출판사를 통해 내놓은 뻔뻔함 자체에 우선 기가 막힌다.

20년 전 ‘국민대통합’ 명분으로 행해졌던 특별사면이 전 전 대통령에게 ‘면죄부’만 줬다는 비판은 ‘택시운전자 효과’에 힘입어 다시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그가 이런 황당한 주장을 하는 데는 구체적 발포명령자가 밝혀지지 않은 탓도 있다.

‘오월의 노래’와 <택시운전사> 그리고 <전두환 회고록>은 제대로 된 적폐청산만이 역사의 퇴행을 막을 수 있고 5·18광주민중항쟁의 진상규명이 더 철저히 진행되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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