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김영욱 시사칼럼니스트] 1993년 대중작가 김진명씨의 등단작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전 3권·해냄 출간)라는 장편소설이 있다. 이 소설은 당시 북한 핵 개발과 남북관계, 미국과의 갈등 등 민감하면서도 흥미로운 소재를 현실감 있게 그려내 단박에 베스트셀러에 등극해 장안의 화제가 됐다. 지금까지 650만부 정도가 팔려나간 것으로 알려진다.

이 소설은 1995년 5월 영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감독 정진우) 동명으로 개봉돼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 소설의 이야기는 철저하게 허구다. 하지만 핵물리학자 이휘소 박사의 죽음과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을 교묘하게 결합하여 한국의 핵개발을 둘러싼 국제적인 갈등을 서사의 중심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 소설에서 박 대통령이 추진한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 이름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이다.

▲ 그래픽_진우현 기자

줄거리는 이렇다. 한국이 낳은 천재 물리학자 이용후(실제인물 이휘소 박사)는 미국에서 자신의 연구 업적을 통해 노벨상에 근접할 정도로 명성을 얻는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명예와 보장된 영화를 버리고 한국으로 귀국하여 대통령의 명에 따라 핵 개발에 착수한다.

한국의 군사력과 국가적 위상을 뒤바꿀 수 있는 지하 핵실험이 계획되고, 한반도의 핵개발을 결코 용인할 수 없었던 미국은 최후의 수단을 준비한다.

결국 성공을 눈앞에 둔 순간 이용후는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더구나 막강한 권력을 잡고 독자적인 군사력을 구축하기 위해 핵개발의 의욕을 키웠던 대통령마저 수하의 정보부장 손에 죽음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이 소설의 기본적인 줄거리는 허구가 아니라 사실에 가깝다. 1970년대 우리나라의 핵무장 시도와 좌절은 자주국방을 향한 미완의 역사였다.

박 대통령은 1960년대 후반 닉슨 독트린으로 주한미군 철수가 가시화되자 엄청난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당시 북한의 군사력이 남한을 압도했기 때문에 최고의 비대칭 전력인 핵무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1970년대 초반부터 핵무기 개발을 위한 프로젝트를 가동했는데, 박 대통령이 직접 손 편지를 써 미국 등 해외에 있던 과학자들을 불러 모은 것은 널리 알려진 일화다.

실제 인물인 핵물리학자 이휘소(미국명 벤자민. W) 박사는 소설과 다르게 1977년 6월 16일 미국 시카고 인근에서 의문의 교통사고로 죽었다. 박 대통령은 두 달 뒤인 8월 24일 이 박사 영정에 ‘조국을 빛내고 후세에게 길이 빛낼 한국인의 정신을 높이 치하 한다’며 보국훈장을 수훈했다.

지난 3일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한반도의 ‘핵봉인 해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한반도에 전술핵 재배치를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과 더 나아가 우리 군의 자체적인 핵무장론(論)까지 등장하는 상황이다.

특히 국민 10명중 6명이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가 나왔다.

한국갤럽이 지난 8일 발표한 여론조사결과, ‘핵무장’ 물음에 국민 60%가 찬성, 반대 35%를 월등히 앞섰다.

아직까지 정부의 공식입장은 전술핵 재배치나 자체적인 핵무기 개발에 대해 부정적이다. 하지만 논란은 쉽사리 수그러들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이 전술핵 배치 등 한국의 핵무장을 허용할 것이라는 미국 언론의 보도가 불을 지폈기 때문이다.

이는 대북제재에 미적거리는 중국을 자극하기 위한 의도된 발언이라는 해석이 뒤따른다. 다시 말해서 중국을 움직이기 위한 전략적 발언이지 현실화될 가능성은 없다는 인식이다.

현실은 소설과 다르다. 소설이기 때문에 용인될 수 있는 부분이 현실로 돌아온다고 해서 허용될 수가 없다.

냉정하게 돌이켜 볼 때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을 겨냥한 전략이다. 북한 정권을 보장받고 북미 평화협정체결을 맺기 위한 일환이다.

북한이 잇달아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해 알래스카나 괌, 캘리포니아 등 본토 일부에 까지 직접 위협을 받는 일이 벌어지자 미국도 당황했다. 미국을 상대로 한 ‘핵도박’에 올인 하는 모양새다.

그러면서 한국을 철저히 외면하고 대놓고 무시한다.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을 더욱 노골화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씨알도 안 먹히는’ 평화 제의만 하면서 북한 눈치만 보고 있는 형국이다. 더욱 답답하고 불안한 것은 앞으로도 북핵에 대응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다.

과연 미국의 현실 판단에 따라 한반도의 핵봉인이 해제될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겠다고 밝힌 핵추진 잠수함 도입만 해도 만만치 않은 현실의 벽이 존재한다. 현재 핵잠수함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인도 등 6개 국가에 불과하다. 인도를 제외하면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이다.

상임이사국은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들이다. 이들 승전국들이 과연 핵 헤게모니를 포기하고 한국과 일본에게 핵봉인을 풀어줄까.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우려되는 점은 핵무장론이 자칫 군국주의를 자극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일본 아베 정부의 군국주의 부활 의도를 성토해왔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소설이 공전의 히트를 친 배경에도 사실은 일본을 핵무기로 패망시켰다는 통쾌함이 작용했을 것이다.

자위적 핵무장을 공론화할 때가 됐다. 더 이상 핵무장론을 극우파나 민족주의자의 순진한 로망으로만 여길 게 아니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통틀어 자국 안보를 다른 나라에 의탁해 온전히 존속한 사례는 없다. 이제 진지하게 자문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으로 스스로를 지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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