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뉴스워커DB>_그래픽1팀 일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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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후퇴하는 현실, 한 분이라도 저희의 호소를 들어 주길 바란다”

‘택배대란’에서 ‘주거침입죄’까지 번졌다. 택배대란으로 몸살을 앓았던 서울 강동구 고덕동 소재의 대단지 A아파트, 더 큰 몸살로 옮겨 간 듯싶다.

이 단지는 지난 1일부터 지상으로 택배차량이 출입하는 것을 막고, 지하 통행만 허용했다. 2016년 시공된 A아파트는 당시 규정대로 2.3m 높이의 지하주차장을 지었다. 하지만 2019년 이후로는 2.7m까지 허용된 부분. A아파트 지하주차장 출입로 수치보다 큰 차량에 많은 물량을 싣고 배송을 하는 택배기사들과 입주민 간 충돌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후 다수의 택배기사들이 손수레를 끌고 배송하는 응급조처를 했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래 버틸 수는 없었다. 지난 8일에는 전국택배노동조합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A아파트 각 세대 배송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A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지난해 9월부터 택배기사들이 대비할 시간을 충분히 줬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상 큰 의미 없는 유예기간일 수 있다. 한 번에 최대한 많은 물량을 실어야 하니 차량 크기를 줄일 수도 없고, 대비시간을 준다고 해서 차량을 단박에 바꿀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택배기사들과 A아파트 간 협의를 도출할 수 없는 상황. 축나는 몸을 더 버틸 수도 없고, 달리 대화할 방법도 없으니, 아파트 복도를 걸어 각 집 현관문에 대안 마련을 위한 호소문을 붙인 택배기사 2명이 지난 28일 주거침입 혐의로 조사 중에 있다고 알려졌다.

택배기사가 주거침입죄로 고발 당한 상황이 차갑고도 낯설게 다가온다. 직업 특성상 여러 세대를 오가는 택배기사에 주거침입 혐의라니 낯설고, 어쩌면 최후의 인간적인 대화 시도 방법인 호소문에 돌아온 답변이 주거침입죄라니 차갑게 느껴진다.

법으로 가고자 하면 법전이 필요할 것이고, 법적 해석이 따라올 테지만, 택배기사들에 씌인 주거침입죄라는 단어가 가슴을 때린다. 통상 주거침입은 안에 있는 살림살이나 거주자 자체가 범죄 표적이 돼 발생하지 않는가.

관리사무소가 아닌, 각 집 현관문에 호소문을 붙인 것은 입주민과 소통하기를 원해서였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물론 주거침입죄의 대전제는 침입자가 고의성을 가지고 있었고, 그로 인해 거주자의 주거 평온이 깨진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때 그 고의성이라는 것이 거주자를 해하기 위한 것, 거주자에 고통을 안기는 자체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었어도 재고의 여지가 없을까?

한 법전문가는 신체 일부가 타인의 집에 들어가지 않아도, 공용 계단이나 복도의 경우에도 주거침입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아파트 단지는 사유지이고, 건물 내 복도도 입주민 한 명 한 명에 권리가 있는 공동 공간이지만, 입주민 전체가 택배기사에 대한 주거침입 고발을 동의하는 것은 아닐 텐데 끝내 죄가 성립이 될까?

모 팟캐스트에 출연한 신유진 변호사는 이에 대해 아파트가 공동 주거지라는 이유를 들어 모든 입주민이 지금의 방향을 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서로 간 대화를 시도해 무죄를 이끌어 낼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을 보였다.

협의가 안 되니 감정싸움으로 치닫는 형국이다. 해결책 마련에 택배회사의 책임도 일부 있을 것이다. 노동자들은 노동권을 위해 항시 투쟁한다. 그들은 노동권이 존중 받는 환경에서 일할 수 있기를 원한다. 이를 위한 폭넓은 법리적 해석이 가능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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